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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뚱거리는 오리에게 총을 쏘지 마라' 오리 사냥꾼들의 오래된 묵계다. 너무 빨리 찾아 온 레임덕은 사냥꾼의 총이 필요 없다. 무늬만 집권당인 한나라당은 자중지란이고 야권은 돌아오는 겨울의 결투를 위해 전열을 가다듬느라 정신이 없다. 교수 사회가 지난해를 돌이켜 '엄이도종(掩耳盜鐘)'이라는 사자성어로 지도자를 꾸짖고 새해는 '파사현정(破邪顯正)'으로 나아갈 길을 제시했다. 소통과 바른정치를 이야기한 셈이지만 여전히 우리 정치는 엄이도종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강부자' '고소영'으로 시작된 이명박 정부는 '나르시시즘' 수준에서 허덕인 셈이다. 다자간 무역이나 수출 확대, G20 참여 등 화려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국민들이 알아주질 않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그 답답함이 무리수를 낳아 인위적 소통으로 포장되는 순간, 오리의 성한 한쪽 발조차 뒤뚱거리게 하는지도 모른다.

 최근 박근혜로 포장한 한나라당 비대위를 보면 위태롭다. 이명박 정부를 반면교사로 삼겠다는 의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연일 터져 나오는 말이 강펀치 수준이다. 강하면 부러지는 법, 아무리 '사실은 부드러운 사람'이라고 웃어봐도 그간의 행적과 역사가 부드러움으로 다가오질 않는다. 노자는 태풍이 불면 소나무는 부러져도 버드나무는 멀쩡하다고 했다.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기는 이유극강(以柔克剛)이다. 강한 것은 눈에 띈다. 눈에 띄는 것은 일면 보기에 그럴듯하지만 보는 이의 눈을 쉽게 피로하게 한다. 이명박 정부에 너무나 빨리 찾아 온 레임덕도 어쩌면 강한 것에 길들여진 리더십이 부른 결과일지 모르나, 지금 한나라당 역시 그 강한 것의 매력에 빠져 있는 듯하다.

 그런 한나라당에서 어제 '보수'와의 결별을 선언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살생부나 인적쇄신 이야기보다 더 강하게 들리는 이 소식은 압권이다. 강한 것의 무한 변신처럼 느껴진다는 이야기다. 보수를 정체성으로 하는 집권당이 정강정책에 '보수'라는 용어를 빼겠다는 발상이 그저 놀랍다. 보수가 뭔가. 물론 사전적으로야 새로운 것이나 변화를 반대하고 전통적인 것을 옹호하며 유지하려 하는 것을 보수라 하지만 정치에서의 보수는 다른 의미가 있다. 시민사회의 등장 이후 정치에서 보수는 언제나 기득권을 옹호하는 부르조아적 지배논리가 됐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정치적 성향이 다양화되면서 보수도 다른 개념으로 자리잡아가는 추세다. 진보만 새롭고 보수는 구식이 아니라 보수 역시, 급격한 개혁은 피하지만 현재의 상황에서 새로움을 모색하려는 전제를 깔고 있다. 그런데 어설픈 보수들은 여전히 19세기식 보수에 집착해 권력을 안방의 금고처럼 이중 삼중의 보안장치로 움켜쥐고 있다.

 지구상의 모든 정치집단은 보수와 진보로 싸운다. 연일 상대에 대한 비판의 수위를 높이고 때로는 거친 말로 때로는 주먹다짐으로 서로를 향해 으르렁대는 것이 오늘의 정치다. 문제는 싸움의 기술이다. 말로 하는 싸움, 정책과 절차로 주고받는 싸움은 건강하다. 그런 건강함이 사라진 곳은 폭력이 난무하고 총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부드러운 사람이 거친 말을 할 줄 몰라서 안하는 것은 아니다. 거친 말의 결과가 무엇인지를 알기에 턱까지 차오르는 거친 말을 누를 뿐이다. 진보가 고함을 지르기보다 원색의 깃발과 촛불을 앞세우고 '착한'이라는 부드러운 용어를 동원하는 것도 부드러움의 속성을 알기 때문이다.

 보수가 보수답지 못하기에 '중도보수'를 들고 나오다 심지어는 '진보적 보수'라는 불편한 용어까지 등장시키는 것은 안쓰럽다. 그래도 그 정도쯤은 자구책으로 봐줄만했는데 이제는 아예 보수퇴출 이야기가 나오니 어이가 없다. 군색하게 보수를 때려부수고 '중도보수'로 새로운 정강정책을 세울 셈인지, 아니면 아예 '진보적보수'라는 출처없는 사생아를 얼굴마담으로 내세울지 자못 궁금해진다. 무엇을 어떻게 하든 보수가 보수를 버리고 다른 옷을 입는 것은 비겁하다. 차라리 '나는 보수다'를 외치고 21세기식 새로운 보수의 개념을 만들어가는 노력이 건강해보일지도 모른다. '고소영'과 '강부자'로 들끓었을 때, 그래 우리가 생각하는 엘리트 집단이 이 나라를 한번 이끌어 보겠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했더라면 '아니고, 우연이다'는 생떼보다 오히려 나았을지 모른다.

 골통보수 처칠이 그랬다. 전시의 지도자로서 가장 탁월했던 인물로 현대사에 기록된 처칠은 정치적으로는 야생마 수준이었다. 하지만 직선으로 일관한 그의 정치노선과는 달리 그는 부드러운 대화와 화법으로 정치적 경쟁자들을 대했다. 그러면서 그는 언제나 스스로를 보수골통으로 당당히 밝혔다. 위기의 영국을 구하기 위해서는 보수가 나라를 책임져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그런 그가 전쟁이 끝나자 진보에게 참패했다. 전쟁의 영웅이 하루아침에 정치적 패자가 된 이 역설이 바로 국민의 눈이다. 영국의 유권자들은 전쟁의 한 가운데에서는 처칠의 정책을 전폭 지지했지만 전쟁이후에는 굶주린 배가 더 중요했다. 문제는 꼬르륵 거리는 배 때문에 진보가 제시하는 장밋빛 미래에 표를 던진 영국인들이지만 당당한 보수, 부드러운 리더였던 처칠에 대한 존경심은 잃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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