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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존재하는가, 그렇지 아니한가.
 수많은 세월 과학과 종교는 이 명제를 가지고 끊임없이 논쟁해왔다. 예컨대 과학적인 지식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과거에는 말할 것도 없이 종교는 우월했던 반면 과학은 열세했다. 하지만 중세 이후 계몽주의와 산업혁명의 물결 아래에서 과학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진보를 거듭해왔다. 현대 사회에서 과학은 고도로 발달했으며, 이젠 과학이 종교의 존재 이유인 신을 부정하고 나섰다.

 지난 9월 9일, 무신론을 주장하는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Grand Design (위대한 설계)라는 책을 출판함으로써 무신론의 주장을 한 층 더 심화시켰다. 이 책에서 스티븐 호킹 박사는 우주는 신이 창조한 것이 아니라 우연히 발생한 것이라고 주로 주장하고 있다. 이를 화근으로 현재 지구는 무신론자와 유신론자간의 뜨거운 논쟁을 낳았다.

 스티븐 호킹 박사를 비롯한 무신론자들의 주장은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바로 신은 어떻게 생겨났는가에 대한 의문이 바로 논쟁의 시발점이다. 그리고 그들은 세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진화론의 근거를 내세우며 다윈을 부정하는 창조론자들을 꼬집기 시작했다. 학계에서는 물리학을 가지고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으며, 유신론이란 불안한 인간 심리를 잠재워주는 일종의 아편으로 신자들을 매혹시키고, 달래주고, 허약함의 고통을 잠재워 준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대하는 유신론자들의 가장 첫 명제는 '과학이 종교를 걸고넘어지는 것 자체가 오류이다.' 라고 반박하고 있다. 교황 베네딕트 16세는 과학이 인간의 존재를 설명할 수 없다고 역설하고 있으며, 수많은 대주교와 종교적 지도자는 물리학에 근거한 과학의 주장은 오류로 가득 찼다고 한다. 설명에 대한 과학은 해석에 대한 종교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 무신론과 유신론 중 진리는 어디에 있을까.

 필자는 강력한 유신론자이다. 여타 유신론자들의 주장과 다르지 않게 유신론을 '믿음'이라는 것에 기초해 출발하려고 한다. 종교는 자신의 주변에 대해 불확실성을 감지하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에서 출발한다. 이 본능 속에서 인간은 신을 창조했고, 인간은 신적 존재에의 영적 구원과 내세적 안정을 갈구하고 있다. 무신론자들은 이러한 종교의 뿌리라고 볼 수 있는 믿음을 제외한 사고로 접근하고자 하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하물며 믿음이 있다 하더라도 필자는 종교를 과학 법칙으로써 접근하려는 그들의 접근 방식 자체가 잘못되었고 생각한다.

 인간은 자신의 주변 상황에 대한 무지 '덕'분에 불확실성이라는 원초적인 본능을 가지고 있고 그러한 본능이 신을 찾게 만들었다. 무신론 선언에서 발견할 수 있는 오류는 무교가 될 자유와 믿음이 없을 자유를 양도할 수 없는 권리에서 찾는, 다시 말해 인간의 본능을 부정해버리는 명제에 있다. 따라서 그 가치로 말미암아 무신론이 되는 천부적 권리를 타고났다는 그들의 이론은 잘못됐다.

 무신론자들이 유신론에 대해서 옳게 지적하고자 한다면 신을 인정하고 이해하려는 믿음과 마음가짐에서 출발해야 한다. 신이 누가 창조하였는지 묻는 것은 유신론자인 필자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는 원천 봉쇄의 오류로밖에 볼 수 없다. 신 자체에 대해서 창조의 여부는 따질 필요가 없다. 신은 우리 마음속에 존재하는 것이며, 타인에 의해 창조되었는지를 따질 수 없는 초월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유신론과 무신론은 양립할 수 없는 명제의 충돌이기 때문에 무신론만을 강조한다거나 유신론만을 강조하여 서로를 무시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본인이 유신론자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며 필자는 무신론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유신론에 대한 잘못된 패러다임과 편견을 개선할 필요가 있음을 촉구하며, 서로 간 바람직한 이해가 공존했으면 좋겠다.  ※청운고 시사칼럼동아리 '필담' 투고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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