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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 새해는 용(龍)의 해다. 용은 한국, 중국,일본, 동남아 등지의 아시아 지역의 오랜 상징성을 지닌 성스러운 동물이다. 서양에서도 용이 있지만 동양만큼 상징의 동물로 숭앙 받지는 않고 있다.

동양의 용은 서양의 드래곤과는 달리 무(武) 보다는 문(文)을 상징 하는 상서로운 존재이다. 사람들은 용의 출현을 길조로 여겨 기뻐한다. 용은 물속에 살고 있는데 바람,구름,비, 번개를 부르고 하늘을 나는등 광대한 신통력을 갖고 있어 예부터 수신(水神)으로 숭배 되어왔다. 또 하천과 호수에는 물을 관리 하는 용신(龍神)이 있다고 믿어왔다.

이러한 믿음은 수천년이 지난 오늘 날까지 이어져 우리네 이웃 곳곳에서 행해 지는 용신제(龍神祭)를 지금도 볼 수 있다.
 

 

   
▲ 8,000년전 농경생활을 시작한 홍산인들이 풍년을 기원하며 물을 다스리는 용을 숭배하던 의식에서 탄생한 용. 강상류 낮은 구릉지대에 자리한 중국 요녕성 사해 유적에서 확인된 석룡. 주거지와 주사이에서 발견 됐는데 홍산문화가 용 신앙의 시원임을 증명하고 있다.


# 중원보다 1,000년 앞선 용문화 진원지
동양인이 신성시 하는 용은 언제, 어디서 출현한 것일까,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은 중국 요녕성 사해(査海)의 8,000년 전 용 유적이 가장 오래돼 그 시원지로 보고있다.

중국 요녕성 부신(阜新)에서 동북으로 20km 떨어진 사해(査海)유적지는 동이족의 활동 무대였는데 서쪽은 대릉하(大凌河), 동쪽은 요하(遼河)로 이어져 발해만으로 연결되고 북쪽은 내몽고 초원 지대와 접해 있다. 지금과는 달리, 당시는 물이 풍부해 사람 살기 좋은 자연 환경이었을 것으로 보고있다. 이 곳에는 이미 8,000여년 전부터 신석기인들이 거주한 집단촌이 형성 되어있는데, 중국에서는 흥륭와(요하문명에 속하는 8,000여년 전의 신석기 문화)와 함께 이 곳을 가장 오래된 마을이라고 해서 중화제일촌(中華第一村)이라 명하고 요하문명을 이룬 근거지로 보고 있다.
 
이 집단 거주지가 발견되어 사해 문화(査海文化)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다. 이 유적지에는 100여 가구가 집단을 이루어 온 것으로 확인 되었는데 마을 가운데 용 모양의 조형물이 발견 되어 중국 학계를 떠들썩 하게했다. 이른바 석룡(石龍)으로 지금의 용 모양과 흡사 하다.

주먹 보다 조금 큰 돌을 쌓아서 용의 형상을 만들었는데 길이가 19.7m, 폭이 넓은 곳은 2m, 좁은 곳은 1m이다. 중국 학자들은 이것을 두고 '중화제일촌(中華第一村),중화제일용(中華第一龍)'이라 호칭 하고있다. 이 곳 사해가 중국 용의 시원지라는 것이다. 사해 용 유적이 발견 되기 전까지는, 호북성(湖北省) 진촌(陳村)의 7,000년 전 석룡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보고 '장강 유역 제일용'이라 칭하면서 중국 용의 발상지로 여겼다. 또 6,000년 전의  신석기 무덤인 하남성(河南省) 서수파(西水坡) 45호 무덤의 시신 옆에서 발견된 조개 껍데기를 쌓아 만든 용 형상으로 미루어, 중원(中原)을 수천년 이어온 용 문화의 고향으로 인식 했다. 

 

   
▲ 요령 사해 유적. 1만 여평에 달하는 8,000여년전의 이 유적은 동북아 최초의 농업지구 유적이기도 하다.

 


# 정신세계 지배한 신앙의 대상
그런데 사해해 용 유적이 발견됨으로써 용의 역사가 1,000년이나 앞당겨 지면서 용의 시원지가 중원(中原)이 아닌 동북지역으로 밝혀지자 중국 학자들은 심히 당황했다. 요서(遼西) 지역인 사해는 동이족의 활동 무대요, 동북 문화의 근원지이다. 중국인들은 흥분된 마음을 진정 하고, 용 문화의 고향을 중국 동북 지역, 넓은 의미로서의 홍산 문화(紅山文化)쪽으로 보고 있다. 중국에서 이곳을 용 문화의 시원으로 보는 또 하나의 이유는 석룡 뿐만 아니라 사해유적에서 토기에 부조로 장식된 용 문양이 덩달아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 용문양 토기편은 빗살무늬 토기의 파편이다.

현재 요령성 박물관에 전시 되어있는 이 토기편에는 용 형상에 벌집처럼 무늬를 그렸는데 용의 비늘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제사 의식과 관계된 것으로 보이며, 용이 당시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한 뿌리 깊은 신앙의 대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 뿐만이 아니다. 1986년 오한기(敖漢旗) 소산(小山)에서 출토된 7,000년 전의 의식용 술잔 모양 토기에서도 용 형상의 문양이 나타나 있다. 용의 몸체에 사슴, 돼지, 새등의 머리를 새겼는데 이를, 녹수룡(鹿首龍), 저수룡(猪首龍), 조수룡(鳥首龍)으로 부르고 있다.

이들 문양을 새긴 것은 그 시대 사람들의 주요 토템 동물로 여겨지며 신앙 숭배로 창조된 신령도상(神靈圖像)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이 토기의 이름도 '신수도안(神首圖案) 토기'이다. 여기에서 용이 몸체로 표현된 것을 보면 여느 동물 보다도 용의 비중을 중요시 한 것으로 보인다.

 

# 홍산문화의 상징 'C자형 옥룡'

   
▲ 1971년 내몽고 자치구 옹우특기 삼성타랍에서 출토된 'C'자형 옥룡. 홍산 문화를 대표 하는 유물로 알려졌다. 높이 26cm인 이 옥룡은 몸체는 용 모양, 머리는 돼지 모양, 목덜미엔 물고기 지느러미 모양이 날렵 하게 부착 되어 있어, 현대의 기기로도 다듬기 어려운 조형미를 보여준다.


홍산 문화의 용은 옥기(玉器)에서 절정을 이룬다. 요하문명의 중심에 홍산 문화가 있다. 홍산 문화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옥기류는 요하문명을 이룬 대표적 유물이다. 수많은 유형의 옥제품 가운데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용 형상을 나타낸 것인다. 8,000년 전부터 이어져 온 용 숭배 사상은 홍산 문화의 절정기인 5.000~6.000년 전에 옥으로 용을 표출해 예술품으로 승화시켰다. 옥을 소재로 홍산인의 정신 세계에 깊숙히 내재한 용신 사상을, 세련된 예술적 감각으로 다듬어 놓았다.

1971년 내몽고 자치구 옹우특기(翁牛特旗) 삼성타랍(三星他拉)에서 출토된 'C'자형 옥룡은 홍산 문화를 대표 하는 유물이다. 높이 26cm인 이 옥룡은 몸체는 용 모양이고, 머리는 돼지 모양에, 목덜미엔 물고기 지느러미 모양이 날렵 하게 부착 되어 있는 것이 흡사 날개처럼 보인다. 다듬어 놓은 옥룡은 보면 볼수록 세련미에 감탄한다. 당시 가공의 도구로는 석기류가 전부 였을텐데 현재의 도구로도 다듬기 힘든 옥제품을 이처럼 가공 했다는 것은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현지의 학자들이 옥장인(玉匠人)에게 의뢰해 당시의 제작 과정을 실험한 결과 6개월이 소요 된다는 얘기를 듣고는 홍산인들의 노력과 정성, 인내심에 또 한번 감탄했다. 왜 그들은 긴 시간과 정성을 쏟아 옥룡을 만들었을까, 그 바탕엔 그들만의 깊디 깊은 용신 숭배사상이 내재 되어 있었을 것이다. 홍산문화 시기에 이미 농경이 융숭했다. 농경생활은 순조로운 일기로 적당한 비가 내려야 풍요를 가져 온다. 홍산인들은 그때 부터 용이 물을 다스린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 믿음으로 옥룡을 다듬어 지니면서 성스러운 의식을 베풀었을 것이다.

옥으로 용형상을 표현한 것은 여럿 있다. 홍산문화 유적인 적석총을 발굴할 때 마다 옥룡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용의 몸체에 머리부분은 곰 모양으로 표현한 소형의 옥웅룡(玉熊龍)이 곳곳에서 출토되었다. 용의 몸체에 곰 형상의 머리를 조각한 이유는 무었일까? 홍산문화 유적에서 곰뼈가 나오는 것을 보면 홍산인들이 용과 함께 곰도 신앙적 요소와 관련 시킨 것으로 보인다.
 곰 숭배 사상을, 훗날 고조선과 연계 시킨다면 홍산 문화와 관련 지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 울산까지 전해진 용신사상 '처용설화'
용신 숭배사상은 시대적으로 보아 중국 동북 지방에서 나타나 중국 중원과 동남아, 그리고 한국, 일본 열도로 퍼져 나갔을 것이다. 한반도, 그것도 울산지역에 용신 숭배의 흔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도 거슬러 오르면 홍산문화의 영향이라 할 수 있다.

강, 바다, 내륙 깊숙한 산골까지 울산에는 별나게 용과 관련된 지명과 설화가 많다. 그 가운데 주목 되는 곳은 처용설화가 깃든 처용리이다. 온산면 처용리에서 신석기 시대 중기의 매장 유구에서 홍산문화에서나 볼 수 있는 옥귀걸이가 발견되었다. 시차(時差)는 있지만 어떤 형태든 두 지역간의 교류 내지는 이주의 형식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처용설화가 시대적으로는 수 천년 뒤지지만 용신 숭배의 사상은 신석기 시대부터 전래 되었을 것이다.

수천년 누적된 용신의 터전에, 처용의 설화가 신라에 와서야 기록으로 노출된 것이 아닐까, 어쨌든 용신 숭배 사상은 울산 전역에 스며, 오늘날 까지 우리 곁에서 행운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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