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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잡은 살 꽉찬 놈들만 손님상으로

"사장님 멀리가지 말고 여기로 오이소"
 "아가씨들 많이 달아줄게. 여기로 와요"


 손님을 부르는 상인들의 목소리가 우렁차다. 새벽 3시에 하루를 시작하는 이들이지만, 피곤한 기색 하나 없다. 그들의 목소리만큼이나 커다란 대게도 집게손을 꿈틀거리며 미식가들을 유혹한다.


 대게직판장 직원들이 남들보다 하루를 좀 더 빨리 시작하는 이유는 바로 '조업'을 하기 때문이다. 새벽 3시에 배를 타고 울산 앞바다로 나가 5시간 동안 대게 잡이에 집중한다. 보통 대게는 통발이나 그물로 포획하는데, 정자대게는 그물을 이용해 잡는단다. 수심이 깊은 곳에서 자라는 대게일수록 살이 많아 무겁고 깊은 맛이 느껴져서다.


 눈앞에 나열된 음식 중 무얼 먼저 먹을지 고민하는 건 언제나 행복한 일이다. 그러나 여기에선 또 다른 고민을 하게 되는데, 일렬로 쭉 나열된 대게센터 중 어디를 가야할지가 문제다. 정자항을 찾은 사람들은 각자 내키는 대로, 손짓하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겨본다.


 수족관 앞에서 고심하고 있는 손님 앞에 상인이 다가섰다. 혼자 고민할 필요가 없단다. 알아서 좋은 놈만 골라주는 건 물론이고 대부분 게의 품질이 고급이기 때문이라는데, 수족관을 들여다보니 어느 하나 튼튼한 집게다리를 자랑하는 대게들뿐이었다.


 북구 정자항의 대게직판장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촌계에 속해있는 주민들이다.


 직접 대게잡이에 나서고 가게를 운영하는 어촌계 주민들은 깊은 마을사랑 만큼이나 인심도 넉넉하다.


    정자대게의 가격은 1kg(2마리 정도)당 3만원~5만원이다. 저울로 무게를 재다보면 가격을 초과할 때가 많지만, 추가로 가격을 올릴 것 없이 바로 처음 불렀던 가격에 낙찰이다. 후하게 베푸는 인심 덕분에 매출은 더욱 올라간다. 한 마리 더 얹혀주면 적자가 나지 않을까 싶지만, 그만큼 미식가들이 추가로 구입하기 때문에 그런 일은 없다.
 
#울산관광 필수 코스
주말이 되면 정자항 대게센터 앞은 수많은 인파들로 가득찬다. 마치 고속도로 안의 정체되는 차 행렬을 보듯 센터 앞 도로에도 주차를 하려는 차량들로 가득하단다. 평일만해도 500~800여명이 방문을 하는데 주말은 3,000여명이 넘는 관광객들이 이 곳을 찾는다.


 기자는 평일 정자를 방문했다. 아침 일찍 조업을 마치고 돌아와 대게를 분류하는 활기찬 모습도 수첩에 담고 싶었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 이날 울산 앞바다에 풍랑주의보가 내려졌단다. 다음날도 배가 뜰 수 없는지 알아봤지만 당분간 파도가 높아 배는 나갈 수 없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조금은 이른 점심시간에 대게센터를 찾았다. 평일이라 대체로 한산한 분위기였지만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금새 북적북적 해졌다. 팔짱 낀 젊은이 한 쌍, 옹기종기 모여 함박웃음 가득한 가족, 중후한 분위기를 풍기는 50대 어머니들까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한 자리에 모였다. 주차장에는 승용차 뿐만 아니라 관광버스도 여러 대 주차 돼 있었다. 울산관광을 하고 점심식사를 하러 온 것이다.  버스에서 하나 둘 내리는 주인공들은 바로 검은 중절모 사이로 흰머리가 희끗희끗 보이는 멋진 노신사분들이었다. 짭조름한 대게 맛을 보며 '어 좋다~'하고 감탄을 해대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과거 임금이 대게를 맛보는 양 근엄하고 정겹다.
 
#영덕대게 보다 단 맛 강한 것이 특징

대게센터로 들어가 맛을 보기로 했다. 정자에서 울산대게직판장을 운영하고 있는 박성희 사장이 커다란 대게 몇 마리를 골라준다. 정자대게와 영덕대게의 차이가 뭔지 물어보니, 영덕에서 나온 배가 잡으면 영덕대게고, 정자에서 나온 배가 잡으면 정자 대게란다. 차가운 물이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울산 앞바다에서도 대게를 많이 잡을 수 있게 됐는데 물이 차다보니 대게 맛도 일품이라고 연신 자랑을 해댄다.


 똑같은 동해안에서 잡은 대게 맛이 별 차이가 있을까 싶지만, 정자대게는 단 맛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보통 대게를 먹다보면 짠 맛 때문에 질리기 쉽다. 그러나 정자대게는 먹을수록 입 안에서 단 맛을 자아낸다. 쌀을 오래 씹었을 때 단 맛이 나는 느낌이랄까. 정자 대게가 꿀맛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대게 다리만 깔끔하게 쏙 빼먹을 수 있는 방법은 뭘까. 대게를 먹다보면 시원스레 살이 나오지 않아 껍질에 붙은 살을 떼어먹기 마련이다. 아 생각만 해도 정말 답답하다. 깔끔하게 게 다리를 빼먹는 노하우는 손의 힘을 얼마나 잘 조절 하느냐에 달려있다. '강약 조절'이 관건이라는 것이다. 게 다리를 가위로 잘라 양 끝을 살짝 가위질 한 뒤 손으로 살살 빼다보면 붉은 게살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기자도 한 번에 다리 살 빼내기(?)에 도전 해 봤다. 다리 양 끝을 살짝 잘라 살살 빼낸다. 아, 그러나 조금씩 나오는 게살에 흥분해 그만 중간에 끊어져 버렸다. 역시 '강약조절'을 끝까지 잘 해야하나보다.
 
#박달대게 1㎏ 6∼10만원·홑게 10만원
정자항에서 주로 파는 대게의 종류는 정자대게, 박달대게, 홑게 등이다.
 크기가 큰 순으로 나열하면 박달대게, 정자대게, 홑게 순인데 이는 또 껍질을 벗는 과정인 '탈피'를 했느냐에 따라 구분하기도 한다.


 탈피를 1번이라도 거친 게는 정자대게이고, 탈피를 모두 끝낸 게는 박달대게라고 한다. 그리고 단 한 번도 탈피를 하지 않은 게가 홑게다.


 물론 맛은 모두 다 좋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박달대게는 찐 상태에서 껍질을 벗겨냈을 때 살이 잘 찢어진 다는 것. 하지만 입으로 들어갔을 때 느끼는 식감은 별 차이가 없다.


 큰 덩치를 가진 박달 대게는 입 안 가득 포만감을 느낄 수 있어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보통 두 사람이 오면 박달 대게 1마리에 정자대게 2마리 정도를 먹는데, 박달대게의 집게다리는 킹크랩 마냥 살이 가득 차 있어 보기만 해도 배가 불러온다. 가격은 1kg에 6만원~10만원.


 대게 매니아들 사이에서 인기를 누리는 게는 '홑게'다. 영양식 중 영계가 부드러운 살을 가지고 있어 많은 사랑을 받듯, 어린 대게도 인기 만점이다. 그러나 그만큼 귀하신 몸이란다. 1,000마리의 정자대게가 잡힐 때 한 두 마리 정도 잡히는 게 홑게다. 그나마 한 마리라도 잡아와서 수족관에 보관해두면 또 그곳에서 탈피를 하는 경우도 있다. 한 마디로 홑게를 맛보려면 '타이밍'이 잘 맞아야 하는 거다. 그래서 마니아 층은 더욱 홑게에 관심을 두게 된다. 먹고싶어도 쉽게 먹을 수 없는 게 홑게이기 때문에 홑게 가격은 정자대게의 2배나 된다. 1kg에 10만원. 감히 도전하기에 부담스러운 가격이지만 영양가도 가격만큼이나 높기에 그 가치가 있다.


 아직 정자대게는 제 전성기의 고지대에 다다르지 못했다. 추운 겨울 12월부터 시작해 5월까지가 대게의 제철이다. 지금이 1월이니까 이제 막 알을 가득 채우고 있는 중일게다. 지금도 한창 사랑 받고 있는 정자대게가 받을 애정은 아직 듬뿍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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