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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는 겨울의 중심에까지 이르렀다는 말이며, 낮의 시간보다 밤의 시간이 길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지가 지나면 서서히 낮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봄기운이 살아난다. 음력에서는 동지가 한 해의 시작이다. 동지를 애동지, 중동지, 노동지라고 부르는데 이는 밤의 시간이 가장 길때를 중심으로 초순, 중순, 하순을 기준으로 부르는 말이다.
 동지에 팥죽을 먹는다. 반드시 먹어야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전통적 절식으로 먹고 있다. 동짓날 팥죽을 반드시 먹는 사람의 풍속인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는 따질 필요없이 전통이니까. 다른 하나는 붉은 색은 삿된 것을 물리치는 벽사력이 있다는 민속심리를 팥의 붉은 색깔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팥은 오래전부터 재배되어 온 작물로 알려져 있으며, 중국이 원산지인 것으로 보고 있다. 팥은 섞어 밥을 지어먹거나, 팥죽을 쑤어먹으며, 과자나 빵 등의 속 또는 고물로 많이 쓰인다. 팥죽은 팥을 주 재료로 한 음식이다. 딱딱한 팥을 약한 불로 오랜 시간 삶아 물러지면 짓이겨서 눈이 세밀한 체에 걸러 껍질을 제거한다. 그 물에다 멥쌀을 넣어 죽을 쑨다.
 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각 가정에서 팥죽을 쑤었는데 이제는 죽 전문 가게나 재래시장에서 연중 팔고 있다보니 가정에서 팥죽을 쑤는 것을 쉽게 볼 수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찰에서는 전통적으로 팥죽을 쑤고 있다.

 팥은 영양적 요소와 붉은 빛깔을 활용한 쓰임이 풍속으로 나타난다. 음식으로서의 기능은 단백질, 아연, 칼륨, 비타민 등이 풍부하게 들어 있어 치매, 변비, 피로, 각기병, 멀미 등을 예방하며, 기억력을 향상시키는 효능이 있다고 한다. 빛깔로서의 기능은 붉은 색은 삿된 것을 물리치며, 쫓아내는 벽사와 축귀의 인식이다. 어릴 때 방의 구석마다 팥죽을 뿌리면서 '훗세'하는 어머니의 주문 소리가 생각난다.
 팥죽은 팥물에 멥쌀로 죽을 쑤는 것과 하얀 경단(瓊團)을 첨가하는 두 가지가 있다. 하얀 경단은 마치 새의 알같이 동글동글하다 하여 민속에서는 이를 '새알심'이라 부른다.
 새알심은 나이를 나타내는 숫자이기도하다. 동짓날 새알심을 자기 나이 숫자대로 먹어야 한다고해서 먹기 싫어도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팥죽에 새알심을 언제부터 넣어 먹었는지 알 수 없다. 또한 왜 넣었는지도 알 수 없다.
 정말 새알심은 그 말대로 새의 알 같은 모양대로 생긴 것을 말하는 것일까? 한국 불교의 세시의례 중에는 통알(通謁)과 세알(歲謁)이라는 의식이 있다. 한국 불교 세시 의식으로 팥죽 속의 새알심을 마중물해본다.

 새해 첫 날에 사찰에서는 특별한 의례가 있다. 아침에 일상적인 예불을 마치고 모든 대중이 모여 다시 세존전(世尊前), 불보전(佛寶前), 법보전(法寶前), 승보전(僧寶前), 시왕전(十王前), 신지전(神祗前), 제위전(諸位前), 각위전(各位前), 백관전(百官前), 단월전(檀越前), 친척전(親戚前), 고혼전(孤魂前), 대중전(大衆前)에 새해 인사를 하는 의례인데 세알삼배라 한다. 세알은 축상작법(祝上作法)이라 하는 순서에 따라 행해지는데 이러한 전체를 통알(通謁)이라 한다.
 사찰에서는 매일 불보살 전에 사시마지(巳時摩旨)를 올린다. 사시는 시간을 말하며, 마지는 밥을 말한다. 사시마지를 올릴 때는 항상 하루하루가 곧 좋은 날(日日好是日)이라고 하는 마음과 하루하루가 늘 새해에 어른께 인사하는, 세알 하는 마음 즉 세알심(歲謁心)을 담아 지극한 정성으로 올린다. 세알심과 같은 용례는 불교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부처님께 올리는 차의 게송 다게(茶偈)의 경우, 깨끗한 물 한 잔이 바로 감로수로 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제가 지금 깨끗한 물 한 잔은 감로의 차로 바뀌어져 삼보 전에 올리나이다. 원하옵건데 받아주시옵소서(我今淸淨水 變爲甘露茶 奉獻三寶前 願垂哀納受)'.

 민속에는 불교 의례와 의식에서 작법되던 것이 알게 모르게 옮겨져 세월 속에 변천, 변개되어 전통으로 이어져갔으리라 생각된다. 실천인의 자세는 부처님께 팥죽 한 그릇일지라도 항상 통알(通謁)하는 마음과 세알(歲謁)하는 마음으로 올린다. 이러한 의미 있는 세알이 발음이 비슷한 새알〔鳥卵〕로 와전되어 죽에 찹쌀 등의 곡식 가루를 잘게 뭉쳐 넣은 덩이 즉, 팥죽에 넣는 새알심으로 고정되지 않았을까?
 팥죽에 넣는 경단이 비록 새의 알 같은 심일지라도 존경하는 인물을 년초에 찾아 뵙는 세알심으로 인식을 증진시킬 때 팥죽을 먹는 마음의 자세는 경건해진다. 일상으로 먹는 팥죽일지라도 세알심을 생각한다면 동지에만 먹는 절식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새롭게하는 일상식이 될 것이다. 작은 것 하나라도 우리것은 우리 스스로 격을 높이고 의미를 담아야 한다. 선조들의 지혜를 볼 때, 먹으면 그만일 한 조각 떡에도 여러 가지 모양의 떡살을 찍는 미덕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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