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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가운데 설날만큼 고난의 역사를 가진 날도 드물다. 민족 최대의 명절이자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설날은 삼국시대부터 국가의 기복을 비는 의식으로 시작된 의미 있는 날이었다. 하지만 근대화의 과정 속에서 농경민족이 기준으로 삼던 음력이 사라지자 설날의 고난도 시작됐다. 우리가 그레고리력인 양력을 사용한 것은 1895년 11월 17일이다. 고종은 당시 국제정세와 서양제국들과의 교류 등을 통해 양력사용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그해 겨울, 한달 이상 시간을 당겨 11월17일을 1월1일로 공표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우리가 음력만을 고집한 것은 아니다. 음력이 달을 기준으로 시간을 갈랐기에 계절과의 엇박자는 피할 수 없었다. 태양의 주기를 24 등분한 '24 절기'가 양력을 기준으로 한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지금도 일반적으로 오해하는 부분이 양력이 일제에 의한 강제시행이라는 설이다. 고종이 양력 사용을 공표할 당시 내각의 핵심이 친일 세력이었기에 이같은 추론이 가능할 수 있지만 실제로 일제강점기 시절, 양력 사용을 강제했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 다만 일제가 메이지 유신 이후 구습을 버리고 오로지 서구열강의 풍습을 쫓으며 받아들인 '신정(양력 1월1일)'을 우리 민족에게 강제한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수천년 내려온 설날 풍속이 일본 제국주의자들에 의해 사라질 정도는 아니었다. 결국 총독부는 관제언론인 조선 동아 등을 동원해 '구정을 버리고 신정을 쇠자'는 선전에 열을 올렸지만 여전히 민초들의 설날은 음력 정월 초하루였다. 설날의 역사는 대한민국 탄생 이후에도 순탄하지 않았다. '이중과세' 논란으로 시끌하던 역사를 거쳐 지금의 설날로 정착된 것은 불과 몇 년 전이다.

 우리 것이 소중한 것이라는 명제는 우리 속에 흐르는 유전인자가 우리만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정초가 되면 길흉화복을 점치고 한해의 평안을 위해 발원과 기복을 하는 행위들이 우리와 함께하는 태양과 달, 산과 강으로 연결돼 있기에 양력을 기준으로 한 왜국의 '신정'은 무의미해 질 수밖에 없었다. 그 대표적인 문화 가운데 하나가 12간지로 구분한 띠 문화다. 올해 초 요란했던 '60년 만에 찾아온 흑룡의 해'는 사실, 지금 이 시점부터 시작되어야 할 이야기지만 띠 문화가 상술과 결합하면서 음력의 띠 문화는 사라지고 양력의 띠 문화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흔히 용을 제왕의 상징으로 여기고 인간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영물로 치부한다. 그래서 흑룡의 해인 올해, 득남을 하면 길하다는 출산 마케팅부터 흑룡과 궁합이 맞는 의류와 장식, 심지어 가구까지 마케팅에 동원되고 있다. 유난히 용을 숭상하는 문화는 사실 중국 한족 문화에 뿌리를 둔다. '중화'를 세계의 중심으로 삼는 중국은 일찍이 용을 만물의 으뜸으로 쳤다. 중국 황실이 스스로를 '황제국'으로 칭한 뒤, 황실 브랜드로 용을 삼았다. 물론 자신들이 오랑캐라 칭하던 주변국들은 용을 국가브랜드로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이 때문에 주변국은 황실을 왕실로, 용은 봉황으로 대체 했다. 하지만 거슬러 올라가 보면 용은 하늘을 지향하는 이무기가 출발이었고 봉황은 천손의 후예들이 지녔던 태양의 표상이었다. 중국이 봉황을 주변국 브랜드로 사용하게 한 것은 결국 조상 대대로 전해지는 봉황에 대한 콤플렉스의 산물이라는 이야기다. 봉황의 후예이자 천손의 나라였던 고구려가 멸망한 이래 태양신의 상징인 봉황은 중원문화에 밀린 감이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대통령 휘장을 봉황으로 두른 채 오래된 민족의 흔적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띠 문화는 남방문화에 뿌리를 둔 불교의 영향을 받았다. 이 때문에 북방문화의 정점에 있던 상상의 새, 봉황은 12간지에 없다. 아마도 북방문화가 중원을 삼켰다면 십이지(十二支) 중에서 다섯 번째인 용은 봉황이 되었을 법하다. 어쨌든 흑룡의 해인 올해 상징은 용이다. 용은 진(辰)으로 음력 3월과 봄을 상징한다. 또한 비를 관장해 부귀와 풍요를 의미하는 길조의 수호신으로 숭배됐다. 이런 연유로 용이 다른 동물보다 우리나라 지명에 상대적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용이 동양 문화권에서는 선행과 풍요를 상징하고 숭배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북방문화가 이어진 서양의 경우 상반된 이미지로 그려지는 사례도 많다. 이는 용을 뱀과 동일시한 북방문화의 경우, 간교하고 사악한 이미지로 여겼다는 이야기다.
 우리 문화 속에서 띠동물에 대한 담론의 으뜸은 역시 연말연시에 새해를 맞으며 한 해의 운수를 점치는 데 있다. 한 해의 운수를 그 해 수호동물과 연관한 생각 때문에 흑룡의 해를 맞아 수많은 잠룡들이 승천을 준비하는 모양이다. 문제는 뱀이 땅을 비비고 1,000년을 이겨 이무기가 됐고, 그 이무기가 다시 1,000년을 살아 선행과 발복을 통해 여의주를 얻었다는 사실이다. 잠룡이 꿈꾸는 세상이 승천에 있다한들 탄탄한 준비가 없다면 결국 '잡룡'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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