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상가를 갤러리로 변신
대구 방천시장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에는 못다한 김광석 씨의 청춘이 빛나고 있다. |
이 곳, 방천시장은 여느 시장과는 조금 달랐다. 한 발짝 뗄 때마다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간판이 눈에 띈다. 평범한 간판들 사이로 '김광석 손 칼국수'라고 적힌 어머니 손 맛 칼국수 집, 어린아이 장난감 같은 노랗고 커다란 음료자판기가 이색적이다. 1960~70대 분위기를 풍기는 빈 상가안에서는 어린이들이 제 색대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고, 또 다른 빈 가게는 젊은 세대가 꾸며 놓은 빈티지 아트갤러리로 변해 있었다. 예술이 스며든 시장엔 사람들이 오고 가기 시작했다.
#아이들 예술 놀이터도 운영
방천시장은 대구 도심을 남북으로 통과하는 신천에 놓은 12개의 다리 중 하나인 '수성교' 옆에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신천 제방을 따라 개설된 시장이라 해 방천시장으로 불렀다.
1945년 해방 후 일본 만주 등지에서 돌아온 전재민들이 호구지책으로 이곳에서 장사를 시작한 것이 방천시장의 시초가 됐다고 한다.
'별의 별별 시장 프로젝트'는 방천시장의 빈 상가를 예술창작공간으로 제공해 침체 돼가는 재래시장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관심을 유도하고 유동인구를 증가시켜 상권을 활성화하기 위한 프로젝트다. 빈 상가 공간 12개와 골목을 이용해 주민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미술의 동향과 공공예술을 선보이는 것. 방천시장의 '별의 별별 프로젝트'는 문화관광부의 눈에 띄어 문화를 통한 전통시장 활성화 시범사업인 '문전성시'로 발전했다.
2009년 3월부터 11팀의 선정 작가들이 빈 상가에 입주해 자신의 작업실을 일반인들에게 공개하며 시민들과 조화를 이루는 방천시장을 꾸리고 있다. 2009년 5월과 6월에는 이 곳에서 이뤄낸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회를 가지기도 했다.
고 김광석 씨를 추모하는 의미의 벽화. 김광석 씨의 노래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의 가사가 담겨있다. |
그리고 일반인들도 자신들이 만든 공예, 조각, 회화 도자기, 수제비누 등과 같은 품목들만 있으면 누구나 참가가 가능한 '깨비시장'을 마련하기도 했다.
#김광석 고향다운 추모
방천시장을 지나 골목길로 접어들면 하나 둘 벽화가 보이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디즈니사의 대표 캐릭터 '톰과제리'의 귀여운 모습이다. 문으로 들어가려는 제리를 제압하는 톰과 겁에 질린 제리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절로 난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제리가 들어가려는 문은 진짜 이 건물의 문이었다. 낡고 헐은 문이었지만 아기자기한 벽화를 만나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재탄생 했다.
길을 따라 그려진 벽화에는 공통점이 담겨있다. 대구 출신 가수 고(故) 김광석 씨의 주옥같은 가사와 얼굴이 담긴 것. 특별히 김광석 씨를 주제로 벽화가 그려진 이유는 그가 태어나고 5살때까지 이 곳에서 살았기 때문에 그를 추모하는 의미에서다.
기자는 김광석 씨가 얼마나 아름다운 음악을 선사했는지는 잘 모르지만, 적어도 이 노래 '이등병의 편지'만큼은 알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들이라면 멜로디를 흥얼거릴 수 있을 정도니, 이러한 음악을 했던 가수라면 '국민가수'라고 칭해도 과하지 않다.
이 날은 가족단위의 나들이객과 커플 등도 여럿 보였다. 그 중 군복을 차려입은 건장한 청년과 아리따운 아가씨가 눈에 띈다. 군인청년의 등에는 커다란 기타가 메달려 있다. 마침 벽에는 콘서트장을 연상케하는 무대그림이 마련돼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덩그라니 놓여있는 나무의자. 이 곳에 앉아 연주만 한다면 여기가 바로 개인 콘서트장이 될 수 있다. 군인은 자리에 앉아 기타를 다리위에 얹고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무대 뒤의 김광석 씨는 연주자를 향해 인자한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 벽화가 그려진 골목을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이라고 부른다. 아직 이 골목의 벽화는 미완성인 상태인데, 시민들의 공모를 받아 차츰차츰 채워나갈 거란다. 공모로 이뤄진 예술작품이기에 개성이 넘치는 다양한 작품과 시민들의 모습을 이 곳에서 한 눈에 볼 수 있다.'문전성시'와 '방천시장'으로 4행시를 지어 벽화에 남기는 프로그램과 '소원자물쇠 채우기' 등은 시민들의 생활상과 생각을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시민들도 예술인이 될 수 있음과 동시에 방천시장을 부흥케 하는데 참여할 수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리는 것이다.
기자도 동행한 친구와 함께 벽화 앞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 사진을 찍었다. 좀 더 잘 나오려나 싶어 몇 번을 찍고 있는데 뽀글뽀글 파마를 하신 할머니 두 분이 자꾸만 쳐다보신다. 살짝 눈치가 보여 일어났더니 얼른 그 자리에 앉아 수다의 장을 여신다. 뒤돌아 생각해 보니, 이곳은 단순히 관광객이 다녀와 사진을 찍고 즐기는 곳뿐만 아니라 방천시장 상인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쉼터가 되기도 했다.
#'지역민-예술가' 합심 제2의 도약
신화마을 공공미술프로젝트의 주체인 아트팩토리 신화(대표 곽영화)는 마을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지난해 봄에는 마을에서 3일간 축제를 열기도 했다. 특히 마을 주민들과 예술가들이 힘을 합쳐 신화마을의 상징이기도 한 '고래'를 주제로 한 관광상품을 내 놓으며 적극 노력한 것은, 주민들이 마을 발전에 직접 참여했다는 의미에서 의의가 크다.
얼마 전에는 신화마을의 변화상을 한 눈에 들여다 볼 수 있는 '아카이브 전'이 개막했다. 모색과 재생, 창조 등 3부로 나눠진 이 전시는 오는 3월까지 열리는데, 3부가 열리는 3월에는 마을잔치, 의료봉사활동, 마을정비공사 등 마을 주민도 즐길 수 있는 축제의 장이 열린다.
대구의 방천시장과 울산의 신화마을은 장소가 다르고 규모도 다르지만 같은 곳을 바라보며 걷고 있다. 바로 문화로 한 장소의 발전을 모색한다는 것이다. 두 곳은 한 때 전성기를 이뤘었고, 한 때는 쇄락해져 흥망성쇠의 길을 함께 걸어왔다. 그리고 이제는 주민과 예술가들이 조화를 이루며 '제2의 전성기'를 누리려 한다. 발전을 위한 노력이 있다면 언젠가 그 빛은 발하게 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의 역할이다.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애정을 주는가에 따라 울산의 신화마을과 대구 방천시장은 희망의 길로 내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