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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곧 또다시 취업 시험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유럽에서도 높은 실업율이 뉴스가 되고 있고 취업은 정말 글로벌 이슈가 되고 있다. 남보다 더 뛰어나야 그 좁은 취업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으니 경쟁은 더 치열해진다.
 경쟁이라면 지금보다야 덜 했지만 필자의 젊은 시절에도 예외는 아니었고, 일등에서 꼴찌까지 성적표가 나와 그 성적에 따라 자기가 원하는 과에 지원하게 되어있던 기억이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 당시에는 정신과는 경쟁이 적은 과였고 그래서 좋아하는 과를 지원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그렇다 해도 이후에도 끊임없이 경쟁에 시달렸고 그곳에는 실패하는 사람도 있었던 것이니, 필자도 어느 정도는 승자였기 때문에 정신과 의사가 되었고 직장도 있으며 성공한 사람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과연 누구와 경쟁하였던 것인가. 조금 더 근본적으로 생각하면 그냥 자신 안에 있었던 가능성을 이끌었던 것이며 지금 성취한 것은 경쟁에서 얻어진 것이기보다는 오히려 이후 관심을 갖고 계속 추구해온 것에서의 열매라는 생각을 한다. 만약 정신과 의사가 아니라도 이와 비슷한 그 어떤 일을 하게 되었을 것이고 그곳에서 의미를 발견하게 되지 않았을까 상상해보는 것이다.

 필자가 수련하고 있는 융 심리학에서는 꿈에서 할 수 있는 것은 현실에서도 할 수 있다는 요지의 말을 한다. 꿈에서 일어나는 일차적 의미를 중요시 하는 것이다. 예전 월드컵이 우리나라에서 열릴 때 '꿈★은 이루어진다'는 표어가 있었는데 그것이 자신의 진정한 의미의 바람이라면 정말 후생(後生)에서라도 이루어 지지 않겠나.
 사실 우리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지 남을 이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자기 인생에서 보면 경쟁 상대라는 것도 없다. 자기와의 싸움일 뿐이다. 필자는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예술을 가지고 경쟁하다니.
 경쟁이 일종의 버릇이 되어버린 것인가. 남보다 더 큰 집에서 살아야 하고 더 높은 지위에 올라야 하고…. 카이스트의 학생이나 일류 기업 이사가 무엇이 부족하다고 생을 마감하는 것인가. 모두가 경쟁의 노예가 되었다는 느낌이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하여 직장에도 들어갔고 열심히 일했던 것인데 자기 꿈은 안 보이고 상대 가치인 돈이나 지위 같은 것만 눈에 보이는 건가.

 경쟁한다는 마음이 든다는 것은 심리학적으로는 '투사'하는 것이라고 한다. 어떤 꿈을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건데도 그것을 바깥으로 투영시키는 것이며 그렇게 바깥에만 신경 쓰는 한 자기 꿈을 이루는 일은 어렵다고 한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빅톨 프랭클이란 정신과 의사가 있다. 그가 그 포로수용소에서 목도한 것은 미래에 살아남아 야 한다고 생각하는 어떤 의미 있는 과업을 가진 사람은 대개는 살아남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의미치료사(logotherapist)가 되었다.
 그는 인간이 어떤 상황도 초월한 영적 존재라는 것을 믿는다. 그러면서도 행동주의 심리학을 펼치는데 그 심리학의 중심이 되는 것이 역설기법이다.
 그 역설기법이 경쟁의 대표적인 것인 스포츠 심리학에서도 이용되고 있는데 요컨대 이기려하면 진다는 것이다. 선수가 다른 레인의 선수를 의식하고 그를 이기려하는 경우 자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없어 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포츠 경쟁에서도 자기 자신과만 경쟁한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과의 경쟁이란 자신은 극복되어야 하는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통스러운 것들을 참으며 실패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도 직면해야 하리라. 하지만 잠재된 가능성을 살려내는 것은 또 다른 측면의 것이 필요하다.
 박지성 선수는 발톱이 빠져나가는 고강도의 훈련을 받으면서도 자기발전을 위해서는 축구가 재미있어야 한다는 식의 말을 했다. 이런 순수 놀이적 기쁨이 있어야 온전한 자신의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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