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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은 세월이 쌓이는 공간이다. 좁은 책방 안에 먼지가 수북이 앉듯이, 책들이 쌓이듯이, 세월마저 켜켜이 쌓이는 곳.
 그래서인지 우리가 늘 떠올리는 헌책방은 동글베기 안경을 쓴 할아버지가 어지럽게 쌓인 책들 사이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옛 헌책방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주위에서 이런 헌책방이 사라졌다. 최근 한 인터넷 서점이 신개념 중고서점들을 속속 세우는 등 세월에 밀려났던 헌책방들은  이제 퀴퀴한 옛 옷을 벗고 산뜻한 새 옷을 입은 채 부활하고 있다.
 반갑게도 지난 10일 울산에도 이런 곳이 생겼다. 남구 삼산동 농수산물시장 맞은 편 울산행복신협점에 문을 연 '아름다운가게 헌책방' 이란 곳이다.

 농수산물시장 맞은 편에 위치한 행복신협 3층에 오르면 통 유리문을 통해 서점 내부가 보이는데 새로 문을 연 가게답게 깔끔한 내부와 각종 인테리어 소품들이 우선 눈길을 끈다. 헌책방이라기보다는 아담한 서점이나 까페 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부산 보수동, 국제시장 헌책방골목이 전해주는 빈티지함은 느낄 수 없었지만 누군가의 손때 묻은 헌책이 주는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은 고스란히 전해진다. 원목 소재의 아늑한 서가에 가지런히 꽂힌 헌책들은 저마다 들려줄 사연들을 감추고 있는 듯했다.

▲ 지난 10일 남구 삼산동 농수산물시장 맞은 편 울산행복신협점에 '아름다운가게 헌책방'이 문을 열었다. 사진제공=이재훈 헌책방 홍보팀

# 아늑한 실내공간에 최대 50% 할인까지
문을 연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사러 모여든 시민들은 넘쳐났다. 신발을 벗고 자유롭게 서점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은 놀이방에 온 듯 신나보였다. 더 좋은 책을 골라주고 싶은 부모는 장바구니 가득 동화책을 담고, 아이도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 바구니에 담았다.

 앞부분엔 신간도서, 뒤쪽에는 종류별로 분류가 돼있는데 장르에 따라 또 나뉘어 있다. 책은 다양하다. 만화책/화보/인물/지리/영어원서 등 구미에 맞는 책들을 고를 수 있다. 지금은 비어있는 공간도 많지만 앞으로 이 곳이 기부된 책들로 채워진다면 울산에서는 독보적인 헌책방의 역할을 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서점 한 켠에는 아이들이 편하게 책을 볼 수 있도록 꾸며진 공간도 있는데 이곳에서는 특히 아동용 영어원서 등이 눈에 띄었다. <Treasure> 같이 신간을 사기엔 아주 비싼 책들도 모두 50% 넘게 할인된다니 영어교육에 관심이 많은 부모들이 꽤 몰릴 듯하다.
 이 곳을 실질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권순선 매니저에 따르면 이 헌책방에서 취급하는 대부분의 신간은 소비자가에서 20~30% 할인된 가격에 살 수 있고 구간은 50%가 넘게 할인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고 한다.

 책의 수익금은 울산지역 내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쓰이거나 제3세계에 도서관을 건립하는 데 쓰일 예정이라고 했다.
 또 그 옆에는 차를 마시거나 책을 자유로이 읽을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도 있는데 필요에 따라 아마추어 개인 및 단체들이 전시회 등을 열 때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한다고 했다.
 이외에도 출입구 근처에 공정무역거래로 파는 초콜릿이라던지 디자인 제품, 장애우들이 만든 쿠키 등을 파는 공간이 마련돼 있어 아름다운 가게 특유의 나눔의 가치를 표방하고 있다.
 
# 개국공신 대학생 자원봉사팀의 손길
헌책방 곳곳을 둘러보다 보니 젊은 대학생 친구들도 눈에 띄었는데 봉사천사로 불리는 이 자원봉사자들이 이 공간을 있게 한 주역이었다.
 일반인 자원봉사만 50여명에 이르는 이 곳 자원봉사자들은 오전 오후반을 나눠 활동하고 있었는데 주부, 직장인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이들이 함께 힘을 보탰다.

 특히 8명에 달하는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의 경우 갖가지 톡톡 튀는 아이디어의 메모판, 방명록 등 중 다수가 이들의 머릿속에서 나왔다고 하니 책방 구석구석에 이들의 손길이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권순선 매니저에 따르면 이들이야말로 이 헌책방이 문을 여는 데 큰 도움을 준 '개국공신'들로 대학생들이 한 가게를 열기 위해 기획을 하고 홍보를 하는 과정에서 일을 통한 자부심이나 성취감 등을 스스로 쟁취해 적극성을 기르는데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 집안 구석 구석 잠자는 책의 재발견
여기서 중요한 것은 헌책방이든, 서점이든, '책'이 아이들에게 친근한 존재로 다가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기존 딱딱한 분위기의 서점 문화가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이 친근함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아기자기하고 소박한 인테리어도 한 요인이겠지만, 여기저기서 나서고 있는 많은 이들의 '기부'가 한 몫을 했다.

 아름다운가게 헌책방 울산행복신협점의 당초 기부 목표권수는 1만 5,000권이었다. 그러나 울산지역의 기부천사들은 이들의 기대치를 넘어섰다. 개인기부자, 출판사 등 이들은 헌책방에 2만권을 기부했다. 개인당 약 100권을 기부한 셈이다.
 아름다운가게 헌책방 입구에 보이는 작은 메모 하나가 떠오른다. 메모에 적힌 글은 간단했다. '기부하는 당신!' 한 마디였다.

 그러나 그 메모는 아름다운가게 헌책방에 적혀 있기에 의미가 깊어진다. 한 고전 동화에서 착한 사람들에게만 보였던 옷이 있듯, 기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메모가 '아름다운 당신!'으로 보이지 않을까. 책을 기부하는 것은 아직 우리에게 어색한 일이다. 그러나 오늘도 책을 기부하는 사람이 있어 세상은 따뜻하다. 집에서 잠자는 책을 누군가가 읽고 새로운 삶의 꿈을 꿀 수 있다면! 손쉬운 일이지만 참 해볼 만한 일 아닌가.

 

 [행복신협 아름다운 가게 헌책방 이용을 위한 Tip]

띀 평소 읽고 싶었던 책의 목록을 작성해보거나 머릿속으로 제목이라도 떠올려 보시라! (막상 헌책방에 갔을 때 읽고 싶었던 책들이 갑자기 떠오르진 않는다)
띁 집에서 기부할 책 한 권 정도는 챙겨가자. (실제 이 곳에 가보면 책을 기부하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머릿속에 집에서 잠자고 있는 책이 막 떠오를 정도!)
띂 싼 가격에 혹하지는 말자. (헌책방에서 싼 가격에 혹해 책을 한껏 샀던 경험. 많이들 있을 것이다. 사고 나면 막상 읽어지지는 않는 그런 책들! 한번 더 생각해보고 정말 필요한 책만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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