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왕릉과 소나무 숲
▲ 대릉원을 둘러싸고 있는 울창한 소나무 숲. 사람의 발길은 때에 따라 들락날락하지만 지난 천년을 사시사철 푸르름으로 왕릉 곁에서 이 자리를 지켜왔다. 봉긋한 왕릉의 곡선이 주는 편안함과 소나무의 푸르름을 보다보면 어느 덧 눈과 머리가 시원해진다. |
그는 등이 굽고 키가 크지 않은 경주의 소나무를 보다보면 삶의 그윽함과 역사의 깊이를 느끼게 된다고 했다.
대릉원이나 오릉의 소나무들은 경주 남산의 삼릉을 시작으로 펼쳐진 소나무 숲처럼 빼곡하고 깊진 않다. 하지만 입구 길을 따라 펼쳐진 솔 향이 짙은 이 길 역시 그 이름이 높다.
능원에 들어서자 코끝을 스치는 솔 향과 얼굴에 와 닿는 상쾌한 찬바람 덕에 어느 덧 머리가 맑아진다.
한껏 맑아진 기분으로 숲 길을 걷다보면 멀찍이서도 보이는 고분들의 능선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사실 신라는 옛날 '고분의 나라'로 이름을 떨쳤듯이 지금도 경주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것 가운데 하나가 거대한 고분들이다. 이 고분들은 천 년 가까운 세월을 사람들과 함께 터전을 이루며 지내왔기에 시공간을 초월한 신비스러운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고분군들은 남산의 북쪽에서부터 경주박물관 자리와 반월성을 거쳐 황오동, 황남동, 노동동, 노서동으로 이어지는 평지에 집중적으로 모여 있다.
그 가운데 대릉원은 경주에서 가장 클 뿐 아니라 시내 한가운데에 있어 찾기도 무척 쉽다. 더구나 가까이에 첨성대, 계림, 반월성, 향교, 경주 최 부잣집 등이 있다 보니 언제나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대릉원 무덤들은 잔디로 잘 입혀져 있어 마치 동산같이 보이기도 한다. 1970년대에 공원화하기 전엔 멀리서도 황남대총의 우람하고 아름다운 능선이 한눈에 들어왔다고 하나 지금은 담장을 둘러치고 무덤 앞까지 주차시설을 만들어 아쉽게도 옛 정취가 조금은 사라졌다.
#천마총, 황남대총 등 다양한 유적지 많은 대릉원
▲ 곧은 소나무, 등이 굽은 소나무 등 제각각인 그 모습이 사람의 인생을 꼭 닮았다. |
천마총은 5~6세기경에 만들어진 돌무지덧널무덤으로 수학여행, 가족여행 등 우리가 수없이 많이 찾게 되는 곳이다.
예전에 찾은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안쪽에 마련된 전시관을 찾아 설명을 본다.
쌓은 방식에 대한 설명이 상세하다. 먼저 평지에 놓인 나무로 만든 곽 안에 시체를 넣은 다음, 곽의 뚜껑을 덮은 후 냇돌을 밖에 쌓아올렸다. 그 다음 냇돌 위에 흙을 두텁게 덮어 봉분을 마련했다. 이처럼 곽을 평지에 놓고 쌓은 신라 돌무지덧널무덤은 천마총의 출토로 처음 밝혀진 일이라고 하니 소중한 유산이긴 한가보다.
이외에도 대릉원에는 이 곳을 대릉원이라 이름 짓게 한 사연이 있는 미추왕릉, 그리고 경주에 있는 고분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는 황남대총 등이 있다.
대릉원을 만들기 전 이곳엔 고분 말고도 무덤 자리들이 수없이 많았다고 하나 봉분이 있는 무덤들만 남겨두고 모두 지워버렸다고 한다. 실제 이곳에 있었을 무덤들은 다 누구의 것이었을까.
#덕수궁 돌담길 부럽지 않은 대릉원 돌담길
처마 끝에 달 기울어 물속처럼 밤이 깊다
이따금 물방울 튀기듯 풀벌레 우니
석류 익는 담장 너머로 파문이 청량하다
(중략)
밤은 애틋하게 익어가고
연정은 어스름 달빛에 녹아
사위가 몽롱하다
- 허영둘의 <월하정인도(月下情人圖)에 들어가 보니> 중
대릉원을 둘러보고 나니 어느 덧 밤이 깊었다. 한 밤중, 이 곳 돌담길을 걸어 본 사람들은 안다. 이곳이 절대 덕수궁 돌담길에 뒤지지 않는 곳임을. 낮은 담장으로 훤히 들여다보이는 대릉원 내부의 장대한 소나무들은 야심한 밤 무서울 때도 있지만 이들이 뿜어내는 성스러운 기운은 덕수궁 돌담길과 견줄 수 없는 또 다른 매력이다.
▲ 대릉원 들어가는 길 입구. 평일 한 낮 흐린 날씨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
인근주점에서 막걸리라도 한 잔 걸치면 이게 술에 취한 건지 달빛에 취하고 있는 건지 가늠하기 힘들 정도다.
꼭 밤이 아니더라도 따뜻한 봄날 대낮의 대릉원 골목길이 자아내는 정취 역시 만족스럽긴 매한가지다. 사시사철 언제라도 찾았을 때 너른 품으로 사람들을 반겨주는 곳이 바로 신라의 왕릉과 능원이다.
지금도 이 왕릉의 후손들은 매번 음력 초하루 제를 올린다. 과거 우리 조상들은 산 자가 죽은 자를 정성스레 기억해 제를 올렸을 뿐 아니라 자연의 녹지인 숲으로 키워냈다.
한 시대를 호령했던 이들의 무덤에 이처럼 새로운 생명의 기운이 더해져 이제는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몸과 마음의 휴식을 준다.
죽은 자의 무덤에 생명의 기운이 태동한다는 것이 조금은 역설적일지도 모르지만 이 생명의 기운 덕분에 곧 봄이 찾아와 이 곳을 찾았을 때 한 해를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신라의 왕릉이 아닐까 싶다.
경상도 토속음식 전문점 도솔마을
천마총을 끼고 있는 대릉원 돌담길을 걷다보면 황남동의 도솔마을이란 식당을 가기 위한 표지판이 나온다.
빡빡장, 장아찌, 도토리묵 등 경상도 토속음식 전문점으로 하루 200~300명 주말이면 500명이 찾는 유명한 곳이다. 인원이 4명이상이라면 미리 예약하고 가는 것이 좋다. 편한 아버지 같은 강형욱 사장이 직접 140년 된 한옥폐가를 식당으로 고쳤다는 이 집은 한옥의 정취가 그대로 묻어난다. 주변 다른 식당들도 크게 화려하지 않아 마치 시골 골목길을 걷는 듯한 편안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