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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가 시끌하다. 세계 7대 경관 지정 의혹부터 구럼비 폭파까지 천혜의 섬 제주가 최근 들어 어수선하다. 섬 전체가 세계 자연유산급인 제주는 가만히 있는데 사람들이 제멋대로 치장을 하고 머리띠를 매고 고함을 지른다. 때가 때이다 보니 정치인들의 발걸음까지 잦아졌다. 골프나 치고 횟감이나 고르던 사람들이 머리띠를 두르고 나타나니 풍경이 낯설다. 제주가 요즘처럼 뉴스의 초점이 된 일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하루도 빠짐없이 강정마을이 유명세를 타고 있다. 문제는 정치다. 총선정국에 대선을 바라보는 시기다 보니 제주 강정마을이 먹잇감이 된 셈이다.

 바다는 미래의 자원이 아니라 바로 오늘의 생존과 관련된 인류의 자산이다. 이 때문에 세계 열강은 하나같이 바다에 목숨을 걸고 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일본이 그토록 독도를 넘보는 일이나 중국이 잊을만하면 이어도를 건드리는 것도 바다가 곧 자신들의 미래라는 인식 때문이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의 경우 그동안 바다에 대한 관심을 상대적으로 소홀히 했다. 정부부처에 해양수산부를 폐지한 것이 단적인 예다.
 바다가 생존의 문제라는 인식은 사실 오래된 일이다. 신라장군 이사부가 울릉도 원정길에 나선 것이 벌써 1,000년 전이다. 신라를 두고 해양대국이라 일컫는 것도 이사부로부터 장보고로 이어지는 바닷길의 장악에 근거한 이야기다. 흔히 신라의 가장 왕성했던 시기를 8세기 이후로 본다. 바로 그 시기가 38대 원성왕부터 42대 흥덕왕까지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원성왕이나 흥덕왕은 경주 외동과 안강에 릉을 두고 있다. 묘하게도 두 왕릉 모두가 무장한 서역인을 무인상으로 배치해 신라의 광대했던 시대상을 상징하고 있다. 바다를 지배했던 왕이 세계를 품고 백성을 살찌게 했다는 이야기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시작한 제주해군기지 건설은 바로 이같은 바닷길 안정이라는 기본틀에서 출발한 사업이다. 강정마을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는 사업은 지난 2007년 5월 확정됐다.  노무현 정부 시절이다. 당시 노 전대통령은 "평화는 굳건한 안보가 바탕이 되어야 가능하다"며 이 사업을 결정했다. 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 노무현 정부를 계승한다는 민주당은 제주 해군기지가 미군기지가 된다며 극렬한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다.
 제주 해군기지 반대투쟁에는 말 바꾸기의 달인급인 한명숙 대표가 선봉에 섰다. 노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낸 그는 불과 5년 전 국회에서 "제주 해군기지는 군사전략상 필요한 사업"이라고 발언했다. 5년 전엔 국가 안보를 위해 반드시 해야 한다던 사업이 이제 와서 국익에 반하고 제주를 망치는 사업이 됐는지 논리적 근거는 없다.

 문제의 핵심은 해상권의 전초기지를 확보하고 주변 국가들로부터 우리 바다를 보호하는 것인데도 지금의 상황은 본질은 어디론가 실종됐다. 본질을 버리고 자극적인 내용물을 채워야 관심을 끈다. 바로 그 현장이 강정마을이다. 문제가 되고 있는 '구럼비'는 '까마귀쪽나무'를 뜻하는 제주방언이다. 까마귀쪽나무는 제주도, 울릉도, 남해안 섬에서 자생하는 늘 푸른작은키나무를 말한다. 제주 바다를 거닐어 본 사람이라면 고개를 끄덕이겠지만 제주 해안은 검은 바위가 즐비하다. 바로 그 대부분의 바위 인근에는 구럼비나무가 자생하고 있다. 결국 '구럼비 바위'는 특정지역의 희귀한 바위가 아니며, 제주전역에 흔하게 보이는 까마귀쪽나무가 자생하는 일반 해안 노출암을 뜻하는 보통명사이다. 강정마을 주민들도 까마귀쪽나무가 해안가에 많이 서식했다하여 일반적으로 구럼비 해안으로 불렀다. 제주도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자연유산이자 생물권보전지역이긴 하지만, 강정마을과 구럼비 바위는 유산으로 지정된 곳이 아니다. 물론 지정된 유산이 아니니 보호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왜곡과 말바꾸기의 달인들이 펼치는 선동의 논리는 본질과 무관하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야당의 머리인 한 대표는 "우리의 남방항로를 보호하기 위해 제주기지 건설이 불가피하다"고 총리시절 발언했다. 국가주권을 지키는 문제는 정부의 최우선 의무로 여야나 좌우가 따로 있을 수 없다. 해군기지를 해적기지로 부르고 미군기지에 정부가 앞장선다는 이상한 선동을 일삼는 세력은 한 대표의 야당이 집권한다해도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게 된다. 문제는 지금 당장 표를 얻기 위해 그들의 주장이 왜곡임을 알면서도 같은 옷을 입고 같은 구호를 외치는데 있다. 알면서 묻혀가는 것은 가는 길은 편할지 모르지만 끝난 자리에서 만나는 것은 얼굴과 뺨과 이마에 남은 얼룩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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