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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를, 늙은 부모를 먹여살린다하여 반포지효(反哺之孝)하는 새라 한다. 그러나 까마귀 새끼가 성조가 되어 어미새를 먹여살리는 생물학적 사례가 검증된바는 없다. 조류 특성상 이소(離巢)하여 일정기간 어미새가 건네주는 먹이를 받아먹다가 독립한다. 아마 어미새가 건네주는 먹이를 받아먹는 새끼 새를 어미 새로 착각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속설의 중심은 효(孝)를 가르치는 방편에서 사용한 문학적 표현으로 생각된다.

 까마귀는 세계적으로 100여종이 있다고 하며 문헌자료에서 다양하게 등장한다. 삼국사기에는 고구려 제3대 대무신왕(大武神王) 즉위 3년 10월에 부여의 왕 대소(帶素)가 머리 하나에 몸통이 둘인 붉은 까마귀(赤烏)를 보낸 기사를 찾을 수 있다. 삼국유사에는 신라 제21대 소지마립간 대 사금갑(射琴匣) 조에 까마귀가 등장한다.
 이직(李稷, 1362~1431)의 시조<까마귀 검다하고 백로야 웃지마라〉는 우리나라 국민이면 한번쯤 들어본 고시조일 것이다. 까마귀는 실제로 깃털이 검지만 속살은 닭살과 비슷한 색깔을 띤다. 반대로 백로는 깃이 희지만 속살은 오골계같이 검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까마귀는 몸집의 크기 순서로 갈까마귀, 떼까마귀, 큰부리까마귀 등이다. 이 가운데 갈까마귀와 떼가마귀는 겨울 철새이며, 큰부리까마귀는 텃새이다.

 울산에 10년째 찾아오는 떼까마귀에 대한 문제도 있다. 떼까마귀와 함께 살아가야하는 지역 주민의 경우는 많은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남구 무거동일대, 중구의 태화동일대의 주민들은 떼까마귀가 더 없이 귀찮은 존재로 여길것이다. 지저귐이야 아침과 저녁으로 일정한 시간 참을 수도 있지만, 시도 때도없이 배설하는 배설물로 주거환경이 온통 지저분해지는 것에 대한 짜증스러움은 아마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막말을 못할 것이다.
 까마귀로 인해 정신적, 물질적으로 피해를 보는 정주인의 입장에서는 "왜 하필 떼까마귀며, 왜 하필 우리 동네냐"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달리 말하면 떼까마귀이기 때문에 부가가치가 있을 수 있으며, 우리 동네이기 때문에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역설도 된다. 하지만 타지방에서 체험할 수 없는 군무체험도 있다.
 이제 어차피 함께해야 한다면 한시적으로 떼가마귀 중심 문화의 거리 조성 및 상품 판매 등 재화가 창출되는 생산적 활용 방향으로 발전시켜야한다. 겨울철새학교 운영과 떼까마귀 군무체험도 아주 기초적인것 중 하나일 것이다.

 보다 객관적으로 이제는 떼까마귀를 보는 우리의 한쪽으로 취우친 오해에 따른 잘못된 인식 퇴보에서 벗어나 증진시킬 필요도 있다.
 오합지졸(烏合之卒)에 대한 바른 접근도 그 중 하나이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경우 질서를 지키지 않고, 지도자의 지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중심적으로 아무렇게 함부로 꺼리낌없이 행동하는 것을 마치 떼가마귀가 떼지어 날아드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에 빗대어 오합지졸(烏合之卒), 오합지중(烏合之衆), 오합지도(烏合之徒) 등으로 지금까지 자연스럽게 말과 글로 표현된다.

 과연 오합지졸의 해석이 앞에서 말한 표현일까. 졸(卒)이 '중(衆)'과 '도(徒)' 등과 같이 '무리'로 접근하지 않고 '졸병(卒兵)'에 한정되다 보니 교육받지 않은 질서없는 군대의 졸병으로 편중 해석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다. 인간의 눈으로, 현상만으로만 보면 질서없이 마구 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본질로 보면 탁월한 항도자가 없어도 대를 이어 날개짓할때부터 아주 질서정연하게 서로에게 방해되지 않게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이러한 역설은 월동기간 중 매일 새벽 떼까마귀의 이소현장을 조사하는 과정에서도 한번도 서로의 날개깃이 부딪쳐 떨어진 떼까마귀가 관찰된 적이 없다.
 이러한 점을 생각한다면 오합지졸의 접근은 '떼까마귀가 질서정연하게 무리지어 나는 현상을 지칭하는 말'로 개념정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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