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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순이 넘으신 일본 모 무역회사 부사장께서 지난 해에 우리 회사를 방문하여 많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사업과 무역 관련 이야기를 넘어 서로가 세상을 보는 생각들도 재미있게 나누었다. 그 분이 일본으로 돌아가시면서 새삼스럽게 "조 사장은 한마디로 '본질주의자'라고 표현하고 싶다"는 한마디의 말씀을 남기고 떠나셨다. 들어본 적이 있는 것도 같고 처음으로 들어보는 용어인 것도 같았으나 어찌하던 그리 나쁘지 않은 표현이라 생각하였다. 오늘까지 살아오면서 한 번도 나 자신이 어떤 주의자라고 생각해 보지 못했던 나는 그 이후로 괜히 나 자신을 '본질주의자'로 여기고 싶게 되었고, 또 그러다 보니 스스로가 만나게 되는 사람과 일에 대하여 그'본질'이라는 전제를 달고 생각하는 습관이 생겼다. 오늘은 한 중소벤처 기업인으로서 '대학의 본질'이라는 주제로 한마디의 글을 쓰고 싶다.

 우리의 아이들을 대학에 보내는 이유는 아이들 각자가 평생의 업으로 삼을 길을 스스로 찾도록 도와주는 곳이 대학일 것이라고 믿고 싶기에 보낸다는 것이다. 이것에 부응하는 것이 대학의 본질이다. 그러나 현실의 대학을 보면 묵은 전공지식 몇 가지를 팔아 강의료를 벌고, 수많은 교수와 교직원들의 생활 안정을 위하여 많은 학생을 받아들여 때가 되면 졸업시켜버리는 학원이 되어버리지 않았나하는 의구심과 실망감이 쌓여간다. 필자가 경험했던 대학과 교수님들에 비하면 점점 그 괴리감이 커져만 간다. 이것이 단지 필자가 나이 들어가는 이유만으로 느끼게 되는 오해이기를 바란다.

 취업이 어렵다고 세상이 난리를 치고 있지만 벤처기업을 경영하는 한사람으로서는 작은 일에라도 쓸만한 사람을 하나 구하기 힘든 이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이공대학을 나오고 언어 연수를 열심히 하였다는 졸업생들을 면담해 보면 '취업을 하여 기술자로서 평생의 업을 삼고자하는 뚜렷한 목표를 가진 사람'을 얻기에는 거의 불가능하다. 월급은 많이 받고 싶고, 일은 적게 하고 싶고, 삶은 풍성하게 살고 싶으면서 취업자리가 없다고 스스로 세상을 원망하는 저 아이들. 이것이 누구의 원죄에서 비롯되었는가?

 어느 교수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은 일은 많고 월급이 적어서 그런 것'이라고. 그러나 대학은 알아야한다. 대학에서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대가를 중소기업에서 치르고 있다는 것을. 사람을 채용하여 2년 이상 투자하고 가르쳐서 키워야 겨우 쓸 수 있다는 것을. 이러한 비용들이 대학 등록금보다 더 많고, 많은 중소기업, 벤처회사 직원들이 피땀 흘려 번 돈을 투자하여 사람키워 쓴다는 것을.

 대학은 오늘날 대한민국이 몇몇 대기업들과 좋은 기술력의 중소기업들에 의해 겨우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고, 그로인해 많은 중소기업들이 새로운 일과 일자리를 만들어 사람을 채용하여 키워서 쓰고 있는 것을 참으로 다행이라 생각한다면, 무한 기술경쟁이라는 전투와 전쟁 속에서도 일을 만들고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가는 중소기업인들의 어려움 앞에서 '어떻게하면 양질의 학생을 받아서 가르쳐 공급할까?'를 좀 더 깊게 고민해야하지 않을까?
 물론 많은 교수들이 이러한 고민을 하고 계신 줄은 알지만, 오늘날 급변하는 산업사회에서는 대학이 더 빨리 변해야 하고, 교수들이 더 그 좋은 머리들을 자주 맞대어야 한다.
 때 되면 졸업시켜버리려 하지 말고 정확히 평가해주고, 함부로 졸업시켜 학생 당사자나 가르친 교수도 욕먹는 일은 피하고, 졸업만 하여도 믿고 쓸 수 있는 인력으로 키워주고, 교수가 추천만 하여도 마음놓고 채용할 수 있는 그런 대학은 이제 사라져 버렸나?

 일자리가 많아질 수 있는 이 좋은 기회를 놓치고 나면, 인력 공급이 어려워 중소기업은 힘들어지고, 일자리 없으니 대학 갈 필요 없고, 대학에 학생이 없으니 교수도 교직원도 줄이고, 재정 운영이 어려우니 대학도 줄이고 통폐합하고…
 오기있는 대학이여, 오기있는 교수들이여! 이 중소기업인의 쓴 말 한마디에 분노하고 일어나 학교로 가서 좋은 인재를 키우는 데 목숨을 버릴 이는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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