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백화점 물건값은 비싸다'는 선입감 때문에 연중행사 정도로 들리는 편인데 짜투리 시간도 나고 쇼핑정보도 얻을겸 해서 오랜만에 백화점에 들렀다.

 화려한 조명과 디스플레이가 사람을 현혹하기도 하지만 향수 냄새가 진동하는 1층 매장은 대부분 화장품 코너로 세련된 화장술로 아름답게 꾸민 점원 아가씨를 보노라면 은근히 판매제품에 이끌리곤 한다. 근데 아무리 돌아봐도 우리나라 제품은 유일하게 A 회사뿐이고 온통 수입화장품이 자리하고 있어 꼭 외국에 온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했다.

 대체 가격이 어느 정도인가 싶어 슬쩍 물어봤더니 내가 구입하기엔 만만치가 않은 액수다.
 직장생활을 하는 나는 화장이 필수다. 아무리 바빠도, 밥을 걸러도 화장은 반드시 하고 나서야만 한다. 365일 중 300일 이상은 화장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화장품 구입에 그렇게 큰 돈을 투자하지는 않는다. 마트나 인터넷으로 구입한 저렴한 화장품으로도 얼굴에 뾰루지가 나거나 탈이 생기는 경우가 거의 없어 백화점 판매용 화장품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도 외국여행을 나갔다 들어오면서는 지인에게 줄 선물을 사면서 익히 들어 알 수 있는 외제 화장품을 몇 개 사들고 오긴 한다. 명색이 선물이라 남에게 건네기에 지명도도 높고 면세가 된 것이라 조금 싸다는 생각에. 어쩌다 한번씩 대하는 외제 화장품이 우리 것에 비해 유달리 만족스럽다고 느끼지 못하지만 말이다.

 외국여행지에 나서면 거리에 한국차가 많이 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국의 도로 위를 국산차가 지나가면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또 외국 사람들이 들고 다니는 휴대폰은 어느 나라 제품인지 유심히 보게 된다. 홍콩의 명물인 야경을 구경할 때에는 그 많은 네온사인 속에 유난스레 눈에 띄이는 'SAMSUNG' 전광판을 보면서 얼마나 어깨가 으쓱했는지 모른다. 어찌 나만 그랬을까. '봐! 저게 한국브랜드라고. 나? 한국사람이야'라고 소리치고 싶을만큼 자부심이 느껴졌다.

 일제의 식민지에서 벗어나 6·25 동란을 겪고, 국제원조를 받아 연명하던 최빈국에서 우리의 휴대폰이, 우리의 자동차와 선박이 세계적 브랜드로 자리하기 까지 불과 40~50년이 걸렸다. '위대한 한국'을 되뇌이며 관광 인파 속에서 그렇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은 그 자리에 있었던 한국사람이면 모두가 가졌을 게다.
 그렇게 어렵게 우리나라 제품의 이미지를 높여 벌여들인 돈을 고가의 외제 화장품 수입을 구입함으로써 날아가 버린다는게 참 억울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내가 지나친 쇼비스트라서 그럴까?

 엊그제 화장품의 허와 실을 밝히는 TV뉴스에서 현지에서 4~5만원 정도하는 화장품이 우리나라에서 5배인 20여만원으로 판매되고, 심지어는 6,300원 정도의 기초화장품이 무려 20배에 가까운 155,000원으로 뻥튀겨져 백화점에서 거래되고 있다는 말에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비싼 화장품일수록 효과가 좋은 것이다' 라고 공식으로 연결하는 어리석은 여심에 강한 펀치를 날린 것이다. 

 백화점도 참 밉다. 우리나라 제품에 질 좋은 화장품이 얼마나 많은데 1층 가장 메인 코너마다 온통 외국산 화장품 매장만 설치하여 판매 차익만을 노리면서 가격이 저렴한 국산화장품은 거들떠도 안보고 겨우 대형마트용으로만 전락시켜 놓았으니…

 물론 소비자가 먼저 고가의 외국 제품을 선호하는 탓에 판매자는 당연히 소비자 중심으로 판매 전략을 세울 수 밖에 없겠지만 그래도 우리 제품의 인식도를 높여나가야 하는 전략적 매장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세계인이 부러워하는 위대하고 자랑스런 한국인이 겨우 화장품 따위에 자존심을 뺏기다니…

 옆 사람은 기호식품처럼 개인의 취향에 따라 선호하는 화장품이 다름을 탓하여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럴 수도 있겠다.
 엉감생심 '동동구리무'에도 만족해하던 우리의 피부가 그새 고급스러워져 여리고 예민한 피부가 되어버렸나보다. 그래서 우리 제품은 당체 안 되나보다. 인터넷으로 기만원에 한 개 덤으로 얹어주는 '1+1 로션'을 사면서 난 여전히 씁쓰레하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