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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정국이 우리 사회의 치부를 발가벗기고 있다. 얼마 전까지 아이들을 향해 일상 언어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며 막말과 욕설을 하지 말아야 한다던 어른들이 욕지거리를 쏟아내고 있다.
 대화와 타협을 강조하던 사람들이 모략과 음해로 밤을 새운다. 폭로가 도로를 매우고 '찌라시'가 인터넷 공간을 도배하고 있다. 오피니언 리더는 물론, 학자나 교수, 소설가와 시민운동가까지 누가 누가 잘 지르나로 경연대회를 여는 듯하다.


 민간인 불법사찰 문건이 쏟아졌다. 분위기 반전을 노리던 여권이 경악했다. 사실이라면 판을 접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그런데 말이다. '우리만 그렇나 뭐'하며 청와대가 정면으로 치고 나왔다. 접입가경이다. 샅바싸움에 바지를 걷어붙인 청와대를 두고 '오죽했으면'이라는 반응과 함께 '그렇게까지'라는 우려도 터져 나왔다.
 

 착한 꼬리표를 달고 유연한 미소를 보이던 진보진영이 과격해졌다. 첫 타자는 공자 마케팅으로 재기한 도올이다. 대한민국에 쥐새끼들이 설치고 있단다. 청와대와 선을 긋고 자신들도 피해자라는 여권을 향해 쥐새끼가 설친다고 목청을 높였다. 중심타자들의 발언은 강도보다 내용에 무게를 뒀다. 유시민과 박영선이 하야를 거론했다.
 

 말이 말을 낳아 말이 공중부양하는 형국이다. 삶의 질이나 보다 나은 미래는 전단지 공간에서나 유효할 뿐, 정책이 사라진 선거판은 매일 아침 선대위에서 쏟아내는 말의 성찬에 고도비만 상태다.
 말이 나온 김에 말 때문에 톡톡히 곤욕을 치르고 있는 김용민도 짚고 넘어가 보자. 인터넷 방송으로 이름을 날린 그가 선거판에서 되레 방송 때문에 지옥 같은 날을 보내고 있다.
 

 서울에서 야권단일후보로 출마한 그는 지난 2004년 인터넷 라디오 방송 '라디오 21'에 출연해 "노인네들이 오지 못하도록 시청역 지하철 계단을 지하 4층부터 하나로 만들고 에스컬레이터, 엘리베이터를 모두 없애면 된다"고 했다. 반미 감정을 드러내면서 발언 수위는 한층 높아진다. "유영철을 풀어가지고… 라이스는 아예 강간해서 죽이는 거예요"라고 흥분했다.
 

 스스로는 기억도 못할 8년 전의 발언이 지금 선거판의 핫이슈가 됐다. 스스로는 "죽을 때까지 책임지는 모습으로 살겠다"고 무거운 반성을 했지만 이미 엎어진 사발이다. 사발에 든 말들이 구전을 넘어 SNS를 타고 무섭게 번지고 있다.
 

 진보진영의 입장도 갈리고 있다. 조국 서울대 교수는 "과거 동영상 발언을 접하면서 풍자와 야유에도 금도가 있어야 하고 우리 삶에서 인권감수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하게 된다"며 김 씨의 사과를 요구했고 그를 두고 "사위 삼고 싶을 정도로 반듯한 사람"이라고 했던 소설가 공지영씨는 "인간 김용민에 애정이 있기에 무거운 사과를 요구한다"고 했다. 그러나 진보의 한 기둥인 이정희 대표는 "저는 김용민을 신뢰합니다"라고 트위터에 올렸다.
 

 지금 우리의 정치 상황은 공정한 싸움을 이야기 하는 자체가 무의미해 졌다. 현실이 아무리 뻘판으로 간다 해도 우리를 향해 마지막까지 공정한 룰을 이야기하고 상생과 화합의 정치를 이야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은 유일하게 선거관리를 맡은 정부기관일 뿐이다.
 

 현실이 뻘판인데 그 뻘을 뒤집어 쓴 채 본질을 똑바로 바라 봐라는 소리처럼 무의미한 일은 없다. 적어도 제대로 된 욕실에서 샤워는 어렵더라도 덮어쓴 오물은 걷어내야 길이 보인다. 온 사회가 관음증에 걸린 것처럼 매일 같이 새로운 폭로에 열을 올린다면 그나마 짧은 휴식의 시간조차 오물로 더럽혀지기 마련이다.
 

 쥐새끼가 나오고 하야가 나오면 다음이 없다. 팔을 걷어붙이고 눈을 부라리면 이어지는 것은 뻔 한 일이다. 당선이 목적이고 다수당이 목표라고 해도 절차의 합리성이 사라지면 기쁨은 잠시 뿐이다.
 지금 우리 정치는 금도를 상실했다. 넘지 말아야 할선이 사라진 싸움판에서 승자가 되는 길은 야수가 되는 것이 정답이다. 그러다 보니 며칠 남지 않은 선거의 판세가 갈수록 오리무중이다.
 

 왜 판세가 이 모양인지 냉정하게 따져보지 않은 채 한 표라도 더 건지려는 멱살잡이가 계속된다면 우리 정치의 미래는 없다. 유권자들을 향해 던지는 그들의 폭로, 그들의 삿대질이 더 세고 더 강한 구경거리로 돌아오기에 그렇다.
 싸움구경이나 불구경에 대한 오래 된 관음증을 이용하는 정치가 바로 쥐새끼 같은 짓이자 사라져야할 구태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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