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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가 끝났다. 무리지어 외치던 '정권심판'이 잦아들고 봄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이번 선거를 두고 각종 수식어가 봄빛만큼 화려하다. '반전드라마' '선거의 여왕' 등등, 하지만 이번 선거는 무엇보다 여당의 승리가 아니라 야당의 패배라는 말이 맞다.


   만신창이로 선거를 시작한 새누리당은 이번 총선에서 단독으로 과반을 차지해 원내 1당을 유지하게 됐다. 민주통합당은 총선패배에 대한 책임문제를 놓고 한명숙 지도부 사퇴론 등 심각한 내홍에 빠졌다. 민주통합당은 '정권심판론'을 전가의 보도로 휘두르며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에서 약진했지만 1당 탈환에는 실패했다. 조금 더 좌로 가는 모험을 감행하며 통합진보당과의 연대까지 했지만 여소야대의 새로운 희망사항을 만들지 못했다. 여소야대만 되면 불법사찰과 권력형비리, MB 게이트에 대한 국정조사와 청문회 개최가 속도전을 낼 수 있었는데 아뿔싸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
 

 소위 정치전문가들은 이번 선거를 두고 야당이 절대로 질 수 없는 판세를 스스로 엎었다고 이야기 한다. 결과론으로 포장하는 것이 전문가들의 전매특허지만 대부분은 수긍할 만한 이야기다. 야당의 실패는 첫째가 공천잡음이다. 물론 여당도 공천잡음이 있었지만 잡음의 강도는 야당 쪽이 더 컸다. 김용민의 공천이 이 정도의 치명상으로 돌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여론의 훈풍을 타고 자만의 풍선이 부풀어 올라 하늘높이 날아간 결과다.
   둘째는 조금 더 왼쪽이 빚은 자충수다. 한미 FTA 무효화는 구호로 끝낼 일이다. 외치고 노래 부르고 사진 찍고 돌려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수준이 정답인데 너무 나갔다. 외교적 약속을 파기하라고 하고 미국에 으름장을 놓으려 대표단을 보내는 수준은 선을 넘은 과잉 대응이다.
   셋째는 왼쪽이 디딘 마지막 헛발질이다. 강정마을에서 스크랩을 짜는 순간 강정 주민들의 민심은 얻었을지 몰라도 보수의 눈을 찡그리게 했다. 잠자코 집안에서 TV드라마를 보거나 신문의 사설을 읽고 있을 강원도와 충청도 어르신들을 투표장으로 이끈 힘이 됐다.


 말이 나왔으니 김용민 이야기를 좀 더 풀어보자. 나꼼수를 등에 업은 그를 공천한 것은 야권의 필살기였다. 그와 꼼수들이 인터넷 방송의 밀실을 열고 거리로 나서 오프라인의 햇살을 받는 순간 이 땅의 젊은이들이 심장의 박동수를 맞추고 야당을 정권 재창출의 아스팔트로 인도하리라 착각했다. 그럴 수도 있다. 이번 선거에서도 드러났듯 수도권의 민심은 여전히 2030 세대의 몫이다.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밑천인 '젊은 그들'의 가슴에 불을 지피기만 하면 적어도 수도권에서는 못할 게 없어 보인다. 하기야 욕지거리를 넘어 금도가 없는 발언조차 용서되고 힘이 되는 그들이다 보니, 그깟 노인 비하나 미국놈 패대기치는 따위의 말은 그냥 넘길 수준일 수 있다.
 

   문제는 야당이 미처 챙기지 못한 부분이다. 나꼼수가 뭔지 모르는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에 어떤 울분이 깔려 있고 어떤 프레임이 틀을 잡고 있는지 관심 밖인 사람들도 꽤 많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들은 꼼수나 막말이 상식의 연장선에 있을 때 파안대소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까고 뒤집는 일이 알맹이를 꺼내기 위한 수단일지라도 총을 쏘거나 박격포로 껍질을 까서는 곤란하다는 이야기다.
 

 만신창이에 오물까지 덮어쓴 한나라당이 새누리로 이름을 바꾸고 빨간 립스틱을 발랐을 때 많은 이들은 조롱했다. 로고나 당명은 물론 비상대책위원회의 면면까지 건드리며 비아냥댔다. 민심도 그랬다. 비대위 출범 직후 새누리당의 정당지지도는 민주통합당에 10% 정도 밀릴 정도로 악전고투의 연속이었다. 돈봉투와 디도스, 대통령 측근비리 의혹이 꼬리를 물었고 그런 상황 속에 선거는 해보나 마나한 게임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어쨌든 국회의 과반을 차지했다. 문제는 과반이 아니라 수도권 민심이다. 새누리당은 이번 선거에서 지난 2004년 탄핵 역풍이 불었던 총선 때 수준으로 수도권의 의석수가 떨어졌다. 역대 선거에서 수도권에서 패배한 정권이 온전한 적이 없었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번 총선의 결과를 두고 여당은 스스로에 후한 점수를 주어서는 안 된다. 100석도 힘든 일인데 과반을 했으니 성공이라 착각한다면 그야말로 착각이다.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선거를 이겼다는 생각을 한다면 승리의 기쁨은 얼마 가지 못한다. 왜, 그것은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는 보수층을 끌어 모은 여당의 힘이 아니라 상식을 지키지 않은 야당의 패착이 가져온 결과로 보는 것이 맞다. 보수가 보수답지 못했기에 마지막까지 선거판은 오리무중이었다. 핵심은 비판의 대안적 정치세력이어야 할 야당이 상식을 버리고 비난과 막말, 과잉 몸짓으로 춤을 추는 순간, 졸고 있던 보수층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새누리당은 새로운 정치를 모색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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