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구상에는 수많은 축제가 있다. 그 가운데 정열적이고 화려한 카니발 축제, 붉은 천과 창으로 성난 투우를 제압하며 생명을 담보로 사투를 벌리는 투우축제, 용감했던 선조들의 기상을 기리기 위한 바이킹 축제 등 수많은 축제가 해마다 개최된다.

 바이킹 축제가 열리는 노르웨이는 17세기 말부터 근대 고래잡이를 시작한 종주국이기도 하다. 오늘날 세계적인 고래잡이 선진국들의 포경선과 포경포를 비롯한 모든 장비들은 바로 노르웨이에서 개발되고 만들어진 최상의 것들이었다.
 지금 세계 각처에서는 고래를 통한 축제가 수없이 열리고 있지만 대다수의 축제는 고래를 잡는 축제 즉, 포경축제(捕鯨祝祭)로 일관되고 있다. 한 마리의 큰 고래를 포획하여 항구로 배가 돌아오면 온 고을은 그야말로 축제의 분위기에 휩싸이고, 며칠동안 들뜬 마음은 가라 앉질 않는다.  오가는 사람마다 얼굴 가득 웃음을 잃지 않고, 굶주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삶이 풍요롭다. 풍요로움은 곧 서로를 단합하게 하고 자연스럽게 평화가 공존된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오래 전부터 포경을 통한 풍요로움을 기록한 대목이 있어 많은 사람들에게 큰 관심을 가지게 한다. '1포(浦)에서 1경(鯨)을 잡으면 7향(鄕)이 넉넉해 진다.'는 말은 인견필대(人見必大)의 본조식감(本朝食鑑=1697년)에 나타나 있다.  그래선지 일본 각 고을에서도 고래를 매체로 많은 축제가 열린다.
 축제가 열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로든 좋은 일이다. 일상 생활의 닫힌 마음을 열고 축제가 열리는 광장으로 나와 마음의 쌓인 먼지를 활활 털며 이웃들과 어울려 탁주 한 잔이라도 나눈다면 이보다 더한 즐거움이 따로 없으리라.
 먼 예전으로부터 우리의 조상들은 울산의 태화강 상류에 삶의 터를 잡고 살아오면서 고래를 잡고 살아온 종족이다. 고래 한 마리를 잡는 날은 반구대 암각화에 그려진 그림 그대로 팔을 벌리고 허공에 춤을 추듯 팔을 내저으며 마을로 달려와서 고래를 잡았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러한 실제적 풍습은 수천년 동안 이어져 내려왔고 포경이 금지되던 1986년까지 이어져 왔다.

 장생포, 방어진 항구 앞 바다에서 포경선이 고래를 잡았다는 고동이 울면 남녀노소 할 것없이 포경선이 닿는 항구로 뛰어오며 팔을 벌리고 춤을 추듯 싱글벙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이런 장면들이 어찌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춤추듯 팔을 허공에 휘저으며 포경을 알리는 원시인과 닮은 꼴이 아니라고 누가 부인하겠는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고유한 민족의 풍속과 전통은 이어져 오는 법, 이민족의 지배를 받는다 해도 독특한 민족의 생활방식과 풍습은 쉽싸리 사리지지 않는다. 그 예로 한동안 울산의 포경은 한반도를 강점한 일인들에 의해 성행되었고 그 기간이 짧든 길든 우리의 전통이 한동안 침체되고 소멸되었다. 그러나 다시 우리들에 의한 포경이 시작되자 원시인들이 포경을 알렸던 조상의 혼을 깨워 수천년 이어져 온 포경을 알리는 춤의 형태는 또 다시 시작되었다.

 올해로 18회째가 되는 축제이다. 그동안 장생포 마을축제에서 시작된 고래축제는 구청축제로 이어져 오다 울산고래축제 전문위원회로 이양 되면서 마을축제, 지방축제, 전국축제, 세계축제로 이어지고 있다.
 오늘의 고래축제는 지난날 포경한 고래의 가장 맛있는 부위를 잘라 마을신인 골메기할배(당산나무신)에게 바치는 의식으로 포경축제(捕鯨祝祭)가 시작되었으나 이제는 고래축제의 진정한 의미는 고래관광축제로 이어져가야 할 것이다. 그동안 돌아오리라 믿었던 '울산귀신고래 회유해면'을 유유히 오가던 귀신고래는 영영 돌아오지 않고있다. 울산만 깊숙이 들어와 새끼를 낳고 길러 넓은 바다로 나가던 그 많은 큰 고래 무리들은 보이지 않고 쓸모없는 잔챙이들인 돌고래떼만 제왕이 놀던 바다를 어지럽히고 있다.
 멀잖은 날 지난날 새끼를 거느리고 아비고래 어미고래 틈에서 손잡고 노닐던 그리운 옛 동산인 울산만을 찾아와서 울산을 찾는 수 많은 고래관광선 광광객에게 자적한 그 모습 보이기를 간절히 기대하면서 올해의 축제 성공을 빈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