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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목마성으로 가는 길목
하늘은 충분히 푸르고 공기도 맑다. 유난히 햇살이 포근한 날. 그냥 그 자체로 그 날을 즐기고 싶었다. 살랑살랑 봄바람이 불어오면 지난 겨울동안 웅크려있던 마음에도 바람이 불어오는 법.
   봄이라는 것이 그런 존재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게 만드는 계절. 하지만 무턱대고 떠나기엔 발목을 붙잡는 장애물이 너무나 많아 망설여진다. 아서라, 이미 주위에는 봄을 노래하는 마음의 안식처가 있으니. 딱 한 시간만 시간을 내보자.
   오늘 봄 타는 사람들을 위로할 곳은 '남목마성'이다. 말이 도망가는 걸 막기 위해 목장 주위를 돌로 막아놨다는 그 마성. 뛰노는 말은 없지만, 꽁꽁 숨겨둔 여유 한 보따리 풀어놓기엔 제격인 장소다.
 
#동부아파트 뒤 놀이터 입구에서 출발
남목마성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의외의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산 문턱에 있는 것이 아닌, 아파트단지 내에서 발견했기 때문이다. 동구 주전으로 가는 길목, 동부아파트로 들어가 뒷골목쪽 놀이터에서 입구를 발견할 수 있다.
 

 사실 기자는 어릴 때부터 동구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남목마성'이라는 곳은 낯선 곳이 아니었다. 그래서 찾아가는 길도 수월할 줄 알았다. 그러나 내비게이션 없이는 운전할 수 없는 요즘 젊은 사람이기에 남목마성은 그리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주전으로 가는 도로가 정비되기 전까지는 주전바닷가로 가는 길목에서 발견할 수 있었는데, 이게 웬걸. 도로를 닦고 나니 길을 못 찾겠다. 차를 타고 한참을 헤맨 끝에 찾은 마성 입구에 '가까이 두고 먼 곳을 찾았구나'하는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평일 오전이라 그런지, 이 날 주변의 모든 게 한산했다. 늘 시끌벅적한 놀이터지만, 아이들도 없었다. 그래서 포근한 날씨에 들뜬 기자의 마음도 한 층 가다듬을 수 있었다.
 
#일상 속 소소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곳
나무데크 위를 걷는 발걸음이 가볍다. 한 발짝 뗄 때마다 공기와 부딪히는 나무데크의 소리가 청량하다. 이래서 봄은 즐겁다. 아무것도 아닌 소소한 것에서 행복을 찾게 되는 날. 기쁘다. 행복하다. 즐겁다.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는 밝은 모든 수식어가 어울리는 그런 날이다. 
 

   
▲ 남목마성까지는 약 10분이 걸린다. 이정표 방향으로 등산로를 따라 쭉 오르기만 하면 봉호사, 주전봉수대도 만날 수 있다.

 남목마성까지 약 10분. 갈팡질팡 헤맬 필요가 없다. 이정표 방향으로 등산로를 따라 쭉 오르기만 하면 그만이다. 그리 높은 경사는 아니었다. 그런데, 오르다보니 이마위로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그래도 봄이라고 옷차림을 든든히 했더니 너무 지나쳤나보다. 시기적절하게 바람도 불어온다. 딱 그 표현이 적당하다. '살.랑.살.랑.' 새들로 설레는지 여기저기서 지저귀고 있었다. 순간, 그 때가 생각났다. 바람만 불어도 가슴이 설랬던 18살 여고생 시절. 그 때도 이렇게 모든게 즐거웠으니까 '봄'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4월의 끝자락…초록의 싱그러움까지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 위로는 분홍빛 꽃잎이 흘러가고 있었다. 철쭉인지, 진달래인지 구별이 안 갔으나, 주변에서는 흔히 보기 힘든 색깔이었다. 꽃잎의 고운 색에 매력을 느껴 사진을 연신 찍어댔다. 찍고 나서 사진을 감상하다 보니, 사진 속에서 회색빛 새 한 마리가 보였다. '어라, 새가 언제 여기 앉아있었지?'하고 확대해서 보니 새가 아니고 돌이었다. 좋은 날씨가 사람 눈도 홀리게 만든다.
 

   
▲ 초록의 싱그러움에 파란 푸르름이 더해진 요즘은 딱 나들이 하기 좋은 날씨다.

 4월의 끝자락에서는 봄과 함께 여름도 만날 수 있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쪽빛 나무들 사이로 쨍쨍한 햇빛이 비춘다. 그렇다고 무더운 것도 아닌 것이 그야말로 '나들이 하기에 좋은 날씨'다. 나들이라고 해서 차를 타고 멀리가야 할 것이 없다. 좋은 사람과 좋은 날씨, 가벼운 마음 세 가지만 갖췄다면 어딜 가든 나들이가 될 수 있다. 물론, 이 날 기자는 두 가지밖에 없었지만.
 

 어디선가 쾌청한 라디오 소리가 들린다. 산 속에서 듣는 라디오 소리는 왠지 모르게 더욱 맑게 들린다. 전자파를 타고 들려오는 DJ의 목소리가 반갑다. 삼삼오오 모여 등산하는 아주머니들이 라디오를 들으며 뒤따라 오고 있다. 그러고 보니, 아주머니와 아저씨, 개를 데리고 산책나온 할아버지까지 많은 사람들이 이 정취를 즐기고 있었다.
 
#동구민들의 정을 키워가는 '울타리'
분명히 10분이면 도착한다고 이정표에 적혀있었던 것 같은데, 목적지가 보일 생각을 안 한다. 주변 경치 즐긴다고 너무 천천히 걸었나. 20분을 더 걸은 뒤에야 '남목마성'이라는 안내판이 보였다. 다 왔다는 생각에 걷는 속도를 좀 올렸더니 산 정상에 도착한 것 마냥 숨이 찼다.
 

 '남목마성'은 생각보다 소박한 느낌이었다. 그래도 '성'이니까 돌이 높게 쌓여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높이는 7살 난 어린이 키 만큼 낮았다. 말이 담을 뛰어넘은 것을 막기 위해 목장의 둘레를 돌로 쌓은 '담장'이라는 역할이 딱 맞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사용할 말을 기르고 도망가는 것을 막기 위해 주로 해안가와 성 등을 중심으로 목장을 설치했다. 이 지역의 원래 지명은 남목(南木)이었는데, 목장이 설치되면서 남목(南牧)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전한다.
 

   
▲ 벗과 함께 산책을 나온 할아버지가 봄의 정취를 만끽하고 있었다.

 마성은 염포·양정의 경계선을 따라 심천곡과 성골을 거쳐 동해에 이르는 것과 염포동의 중리와 성내마을의 경계를 따라 방어진행 도로의 남쪽 산록을 지나 현재의 현대공업고등학교 뒤편을 거쳐 동해로 빠지는 두 개가 있다. 그 중 현대공업고등학교 뒷산 일대와 심천곡에서 성골에 이르는 일대에는 아직도 돌담이 남아 옛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은 지역문화재로 남아 말을 보호하는 '담장'이라는 역할을 다 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 담장 속에서 동구 주민들은 정을 키워가고 있었다. 등산길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이었지만, 대화를 통해 그들은 이웃이 되어 가고 있었다. "어디에 살아요?", "고향은 어디예요?" 라는 안부로 시작해 "요즘 사는 건 어때요?"라는 사적인 이야기까지. 보존 돼 가는 마성 만큼, 이 곳에서는 이웃간 마음의 담장을 허물 수 있었다.
 

 이날 나선 1시간 가량의 나들이는 마음의 여유를 되찾기에 적당한 시간이었다. 행복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일과 관계에 지친 일상에서 여유를 되 찾고 싶다면 자연으로 돌아와 사람과 다시 만나면 그만이다. 그것이 행복이다. 글·사진=김은혜기자 ryusori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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