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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가 나타났다. 어제 오후 3시 울기등대 동쪽 7마일 해상에 참돌고래떼 300마리가 유유히 고래바다여행선의 선미에 따라붙었다. 봄빛 짙어가는 4월, 울산은 고래로 한바탕 흥청거린다. 무려 7,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울산의 고래문화가 역동적인 울산사람들의 심장박동에 맞춰 고래바다 너울을 출렁이게 한다.
 

    산업수도와 공업도시라는 근대 울산의 탈바가지를 벗고 고래를 찾아 문화의 옷을 입힌 것은 탁월하다. 어쩌면 죽음의 강이라 불리던 태화강을 구석구석 씻어내고 대곡천부터 울산항까지 그 100리길을 가꾼 자신감이 만든 울산의 자긍심인지도 모른다. 강이 정화되고 생태환경이 살아나자 그 길 위에 역사와 문화가 찾아들었다. 강심에서 가장자리로 헤엄치던 울산의 역사는 고래와 함께 살아나고 있다.
 

 산업수도로 인식돼 온 울산은 지금 오랜 역사와 문화의 고장으로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전국의 지자체들이 지역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하는데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울산처럼 풍부한 문화적 자산을 가진 도시는 드물다. 바로 그 중심에 고래가 있다.
 

   고래는 원시의 울산 땅에 사람이 산 증좌이자 이곳을 중심으로 하나의 문화권이 형성됐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신호다. 고래로 시작된 울산의 역사와 문화는 무수한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 고래를 잡았던 사람들의 땅인 대곡천 주변은 수천 년 뒤, 신라 천년의 문화루트로 바뀌었다.
 

    어디 이 뿐인가. 헌강왕이 만난 처용은 물론, 화랑사관학교가 있던 대곡리와 갈문왕의 사랑이야기가 서린 천전리서석 등 고대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화랑의 정신세계가 산하에 서려 오묘한 기운을 뻗친 곳이 대곡천의 출발점이라면 그 상류에 발복의 문양으로 축원하던 제단이 천전리 각석이고 그 물길 헤쳐 사연댐과 만나는 지점이 반구대암각화다.
 

 선사시대, 이곳에 터 잡은 이들은 거북바위의 측면에 무수한 고래를 새겨 이 고래 떼가 태화강을 가로질러 동해로 이어지는 꿈을 매일 밤마다 꾸었고 그 꿈의 마지막은 여러 척의 목선을 얽어 웅장한 귀신고래 한 마리 넙죽하게 올려놓는 일이었다. 바로 그 신성한 기운이 흐르고 메아리치는 곳이 울산 태화강 상류 대곡천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울산은 울산만이 가진 문화 아이콘을 찾고 있다.
 

   대곡천에 대한 사무치는 애정이 없다면 태화강도 고래축제도 처용문화제도 의미가 없다. 대곡천부터 고래바다까지 점점이 이어진 물길 위에 울산사람들의 심장소리가 물수제비로 번지면 먼 과거로부터 오늘의 호흡이 끈끈하게 이어지는 소통의 역사가 만들어진다.
 

 문제는 고래축제의 중심에 울산의 고래문화를 세우는 일이다. 한반도의 역사에서 울산이 가진 중요성을 재조명하고 신라문화권에 녹아 있는 울산을 독립된 하나의 문화권으로 부각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는 울산에 세계 어떤 곳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고래 종합백과사전격인 반구대암각화가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는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이해관계가 서로 맞부딪치는 지정학적 요충지다. 그 요충의 정점에 반구대암각화가 있다. 대륙과 해양문화의 절묘한 교차지점이 반구대다.
 

 BC 8,000년~ 7,000년경의 울산을 상상해 보자. 지질학적으로 이 시기는  홍적세가 끝나고 충적세가 시작된다. 문화적으로는 구석기시대가 끝나고 중석기시대를 거쳐 신석기시대가 시작되는 때이다. 기후도 빙하기가 끝나고 후빙기가 되어 점점 따뜻해져서 현재와 거의 같아진다. 신석기시대는 일반적으로 간석기의 사용, 농경과 정착 생활 및 토기의 등장과 더불어 시작된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러한 요소가 동시에 등장하는 곳은 거의 없다. 울산은 바로 그 시기의 한반도를 알려주는 명백한 증좌가 남아 있는 곳이다.
 

 고래를 잡은 이 땅의 사람들은 고래를 잡고 이를 이용하면서 다양한 문화를 만들었다. 고래잡이를 위한 배의 건조술이 그것이고, 고래 기름을 이용한 다양한 응용기술이 그것이다. 오늘날 고래 기름이 세제나 윤활유·기계유·양초·약품 등을 제조하는 데 이용되고 고래수염이나 고래 뼈가 공예품의 재료로 쓰이는 점을 보면 과거의 사람들도 이와 유사한 문화를 만들어 온 것으로 짐작된다.
 

   어디 그뿐인가. 고래잡이라는 특별한 산업은 이곳을 풍요롭게 만들었고 풍부한 식량자원을 바탕으로 암각화와 노래, 춤을 즐기며 산업과 문화를 향유했을 가능성이 높다. 바로 산업도시 울산의 역사가 근대가 아닌 까마득한 선사시대부터 시작됐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증거다.
 

 바로 이 지점에서 고래축제의 중심을 잡아야 한다. 고래 없는 고래축제, 반구대암각화 없는 울산의 고래문화는 무의미하다. 과거의 흔적을 정물로 남겨두지 말고 암벽에 새겨진 고래문양을 살아 꿈틀거리게 해야 한다. 그 고래가 대곡천을 빠져나와 태화강을 가로질러 고래바다로 유영할 때, 울산의 고래축제는 울산사람들만의 동네축제가 아니라 세계에서 유일한 고래문화의 계승과 발전을 담은 세계의 문화로 남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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