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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유달리 장보기를 즐기는 편이다.
 어정쩡한 자투리 시간이 나면 마트나 시장을 잘 들리는데 생필품을 사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밋밋한 도보 대신 걷기 운동도 할 겸, 또 그냥 눈으로만 즐기기 위해서 들리기도 한다.
 형형색색 가득 진열해 놓은 물품들을 보면 마치 다 내 것인냥 부자가 된 기분이 들어 참 즐겁다.
 예쁜 옷들을 눈으로 입었다 벗었다를 반복하고, 맛있는 음식 냄새를 음미하면서 오늘 저녁 먹을 찬이나 간식을 머리 속에서 조리해 보기도 한다.
 

 또 싱싱하고 싼 물건을 사고자 할 때에는 농수산물도매시장이나 새벽시장을 가기도 하는데 나름은 쏟아지는 잠을 겨우 떨치고 일찍 일어나 시장에 들어서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물건을 흥정하면서 바삐 돌아가고 있는지 내가 시장에 들어선 시각이 결코 이른 시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대체 간밤에 잠은 자고 나왔는지, 아침에 학교갈 자녀들을 제대로 챙겨주었는지, 동도 트지 않은 그 새벽부터 움직이는 사람들을 바라볼 때면 나의 늦은 하루의 시작이 부끄럽기도 하다.
 사람 사는 냄새가 나고 역동감을 느낄 수 있어 새벽 시장에서는 나름대로 활력소를 얻게 된다.
 

 그러나 정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5일장이나 재래시장이다. 피자 한판 값에 불과한 돈으로도 얼마나 신나는 일들을 접하게 되는지 모른다. 천 원짜리 한 두 장으로 무, 배추나 나물거리를 사기라도 할라치면 '새댁이, 고맙수' 하는 거듭된 할머니들의 인사에 황송하여 우리 식구가 다 먹지도 못할 양의 찬거리를 더 사기도 한다.
 

 시장을 한 바퀴 돌고 나면 그들 앞에서 내가 얼마나 부자인지 우뚝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헌댁이가 된지 오래인데도 새댁이라는 호칭이 듣기 싫지가 않으니 나는 그 매력에 끌려 짬만 나면 또 들리게 된다.
 여름철 그 따가운 햇빛을 받아 새까매진 얼굴로, 겨울철 살을 에이는 매서운 추위 속에서 꽁꽁 언 손을 녹여가며 종일 시장 바닥에 앉아서 물건을 파는 할머니 들이나 늙수레한 노점 상인들을 보면서 내 자신이 처한 현재의 처지와 비교해 보기도 한다.
 

 하루종일 앉아서 가진 물건을 다 팔았을 때 얼마의 수익을 가질 수 있을까 어림 짐작해 보아도 투자하는 시간과 노력에 비해 그 수입은 너무나 적다. 그래도 그들은 자신의 노동으로 직접 번 돈에 만족해 하며 다음날에도 장에 물건을 들고 나온다.
 

 월마다 일정한 수입이 있고, 무더운 햇빛도 피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살을 에이는 바람도 없는 사무실에 앉아서 나는 그 무엇이 그렇게 힘들다고 불평을 할 수 있을까? 단돈(?) 천원 짜리 물건 하나를 팔기 위해 손님에게 고개를 숙이고 거퍼 감사 인사를 하는 그 수고로움에 비해 나의 노력은 얼마나 되는가? 육체적 노동과 정신적 노동을 정확히 값을 매겨 저울질 할 수는 없겠지만 시장 사람들을 보면 게으런 나 자신에 대한 반성과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 엄청난 감사함을 느낀다.
 

 비교 대상이 무엇이냐에 따라 행복지수가 달라진다.
 내가 가진 지폐 한장의 가치가 얼마나 큰지 알고 싶거나 무력해진 자신을 자극하고 싶을 때면 재래시장에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노동의 가치와 사람 사는 냄새를 맡을 수 있고, 커피 두어잔 값이나 피자 한판 값으로 무, 배추, 양파, 감자를 가득 담아 낑낑거리며 들고 올 수 있어 그 무엇이라 표현할 수 없는 행복함을 느낄 수 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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