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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은 가을을 알리는 전령이다. 황갈색으로 물든 잎이 모두 떨어진 나목은 삭막하기도 하지만, 유독 빈 하늘의 허적(虛寂)함을 거두어 공간을 수 놓은 숙시가 있어 좋다.


 울산에서 밀양으로 넘는 재(嶺) 못 미쳐 신라 고찰인 석남사를 막 지나면 여나믄 집이 모여사는 산촌 마을이 정겹게 다가선다. 이 마을 산섶으로 주절이 열매를 단 감나무들이 진풍경을 연출한다. 처다만 보아도 경탄이 나올만큼 온통 가지에 매달린 붉은 감은 가지가 찢어질듯 무겁기만 하다. 이런 풍경은 가까이 다가서는 것보다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 더욱 아름답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비교할 수 없는 한국만의 농촌은 유상곡수를 품은 산촌마다의 사계절은 가히 낭만과 서정이 깃들어 있다. 가을 하늘은 낮 달을 거느리고 적막속의 산간에서 흐르는 개울물은 급하게 흐르다 어느 지점에 이르면 물속은 하늘의 구름을 거느리고 유적(悠適)하기만 하다.


 주절이 매달린 감나무에서 잘 익은 감하나 따 서 한입 배어물면 단맛의 미감은 형언키 어렵다.
 감은 여러 과일 가운데 인체에 매우 좋은 역할을 한다. 감나무는 예부터 오색, 오행, 오덕, 오방의 과목이라하여 매우 귀하게 여겨왔다. 이뿐만아니라 오상(五常)이라하여 충, 효, 절, 문, 무가 들어 있기도하다. 충은 속과 겉이 다르지않고 붉은색이며, 노인도 마음대로 먹을수 있고, 서리를 이겨내는 인고의 절개가 있으며, 종이를 대용해 넓은 잎에 글을 썼고, 여문 목질로는 화살촉을 만들었다. 또한 오색이 있는 나무여서 나무속은 검고, 꽃피면 황색을 띄고, 열매는 붉고, 말린 곶감은 흰 가루가 피어서 백색이고 흑·황·청·적· 백 이어서 여느 과목보다 중히 여겨왔다.


 조선시대에 사대부들은 먹감나무로 만든 가구를 좋아하였는데, 이 먹감나무가 오시목이다. 소목장(小木匠)들이 짠 문갑은 사대부들에게 검은색은 먹물이요 학문이며, 사색과 문명을 두루 내포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무늬에는 산수화같은 괴석문(怪石文), 운악문(雲岳文)이 들어 있어서 더욱 감나무를 선호하였나 보다. 감나무 잎은 시엽지를 만들어서 이 시엽에다 시문이나 연서를 써서 보내 오갔음은 그얼마나 풍류적이며 서정이 깃들었겠는가?


 여행을 많이 하다보면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도 때로는 감맛을 보게된다.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스위스의 감맛은 모두 가공된 식품의 맛이었고 한국 농촌에서 잘 익은 홍씨의 맛을 보기란 그리 쉽지 않다.
 사실 한국에서도 이름이 알려진 감의 고장은 경상도 지방의 청도감과 상주감이 인기가 높다. 청도감은 청도반시라 하여 유명세를 떨치고, 상주는 곶감으로 이름이 높다. 산간지방 일수록 기온차가 심해 맛이 좋은데, 특히 청도반시는 지형적 특성으로 일년내 다른 곳보다 안개가 많이 끼는 곳이다. 이 같은 기후차이로 숫꽃보다 암꽃이 많아서 수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씨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진영, 합천, 문경, 창녕, 영천 등지의 감이 맛좋은 감에 속한다. 청도와 상주에 감이 많은 것은 조선조 명종 때 울진군수였던 박호(朴虎)가 감나무 가지를 꺾어 무속에 넣고 마르지 않게하여 청도로 가져와 심었다. 이 때부터 청도의 반시가 생겨나면서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단감의 집산지는 아무래도 진영인데 지금은 타지역에서도 과잉생산되면서 값이 폭락하여 농민들이 울상이다. 사정이 이러다보니 정성을 쏟지 않으면 당도가 떨어져서 맛이 덜하다. 감나무는 이처럼 사람에게 열매와 목재를 제공하므로 신화에 등장하는 제우스신은 '모든 과일가운데 가장 감을 좋아했다'고 전해오고 있다. 그런 연유로 서양인들은 감을 과일의 왕으로 귀하게 여겨오고 있다.


 이제 감이 무르익는 가을이다. 진초록색 잎새에 열매를 숨기고 모습을 들어내지 않다가 날씨가 삽상해지면서 잎진 가지 끝에 홍홍독야(紅紅獨也)가 되어 자연의 섭리에 순응 하는 것을 보게 된다. 만물이 자연속에 순응하는 질서를 더욱 사무치게 깨달으며 올해도 가족과 함께 석남사 산촌마을을 찾아 주절이 매달린 붉은 감을 바라보며 화기로운 하루를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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