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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례대표 경선 부정투표가 불거지면서 우리 사회의 종북세력이 무대 전면으로 나왔다. 커튼 뒤에 몸을 감추고 구호와 깃발만 요란했던 세력들이 꼴통보수와 버금가는 악취를 풍기자 냄새에 놀란 장막이 걷혔다. 커튼이 열리자 낯선 용어가 쏟아진다. '당권파' '비당권파' 'NL' 과 'PD' 등등 용어만 그런게 아니다. 화면으로 드러난 통합진보당의 회의장은 표결할 때 평양이나 베이징에서 목격한 장면처럼 당원증을 들어 보였다.
 

 비례대표 부정선거는 사실 종북세력에는 별문제가 아니다.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쯤이야 어떤 것이든 상관없는 이들에게 부정선거는 부실선거고 비당권파의 책임추궁은 역사에 죄를 짓는 발칙한 도전에 불과하다. 문제는 진보세력 1번지인 통합진보당의 당권이다. 부정을 인정하는 순간 이른바 NL 계열이 장악한 당권이 사라진다. 아니, 비례 대표 1∼3번으로 당선된 윤금순, 이석기, 김재연 당선자들의 설자리가 위태롭다는 이야기다. 어떻게 쟁취한 국회의원 자리인데, 조국통일의 과업을 완수하기 위해 한발짝 통일계단을 오르는 순간인데, 절대로 물러설 수는 없는 일이다.
 

   앞으로 며칠 사이에 통합진보당의 진로를 결정할 회의가 열린다. 의장직을 사퇴했던 이정희 공동대표가 의장직 사수를 들고 나왔고 심상정·유시민·조준호 공동대표 등 비당권파는 이번 기회에 당권 교체를 이루겠다는 생각이다.
 세상이 변했다. 우리 사회가 유연해진 것인지 종북세력의 종균들이 삼천리 금수강산에 포자이식을 완수했는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종북이 아무렇지 않게 뉴스의 톱이 되고 세간의 이목을 집중하는 세상이다. 하기야 '우리민족끼리'가 가슴을 울렁이게 하고 통일이 심장을 뛰게하던 시절부터 종북의 종균들은 사방에 자리를 잡아왔다. 민족이라는 이름의 감성자극이 주효했기에 대학가의 세확산은 쉬웠고 젊음과 반골기질의 유전적 동질성이 오늘의 종북세력에게 밑천이 됐다.
 

 분명한 것은 종북세력의 뿌리는 하나가 아니라는 점이다. 흔히 공산주의 빅 3계열이라는 IS(세계사회주의동맹)과 PD(민중민주), NL(민족해방)은 색깔은 비슷하지만 빛깔이 다르다. 이 가운데 순정품 빨갱이는 IS계열이다. 이들은 공산주의 내의 소수파라고 볼 수 있는 트로츠키 주의. 범세계적 차원에서 공산주의 연대를 이루자는 정통파다. 통합진보당의 비당권파는 PD 계열이다. 이들은 마르크스-레닌 주의에 기반을 두고 말 그대로 계급 투쟁, 노동자 권익 주장하는 좌파들이다. 마지막이 흔히 주사파라고 하는 NL 계열이다. 이들은 민족적 차원의 공산화를 꿈꾼다. 미국에 대한 모태 알레르기를 가진 이들은 반미구호가 연작시리즈로 나올만큼 미국에 적대적이다. 전면에 들고나오는 '우리민족끼리' 때문에 흔히 자주파로 부르지만 자주의 본질을 반미에서 찾는 모순도 가지고 있다.
 

 진보1번지로 4월총선에서 정치적 입지를 굳힌 통합진보당의 내분은 그래서 NL계열과 PD계열의 싸움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당권을 장악한 NL계열의 기본 시각은 대한민국이 미국의 식민지라는데 있다. 그들에게 이명박 정부의 한미 FTA는 목숨을 걸고 투쟁할 대상이자 정치적 기반을 다질 절호의 기회였다. 반미 감정의 발화점을 찾는 이들에게 미군의 장갑차에 깔린 대한민국 여고생의 죽음은 결정적 호재였고 잇달아 불거진 미친소의 역습은 발화를 넘어 불바다를 만들 기회가 됐다. 조작하고 주입해도 힘든 상황인데 저절로 찾아온 반미 확산이 이들을 잠깐 흥분시킨 모양이다.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마키아벨리식 사고가 대중 앞에 발가벗겨지는 순간, 뻘겋게 달아오른 얼굴은 그들이 아닌 그들을 바라보는 대중이라는 점을 잊어버렸다.
 

 진보세력들은 이번 통합진보당의 내분을 두고 오히려 잘됐다는 반응이 많다. 어차피 종북으로 새로운 미래를 열 수 없는 일이고 미래의 코드가 진보로 흘러간다면 가능한 이번 기회에 학생운동 수준의 NL식 종북행태는 자르고 가는게 맞다는 생각이다.
 

   문제는 국민들의 경우 정말 종북이 누구인지를 잘 모르겠다는 점이다. 엘리트 진보를 자처하는 PD계열의 인사들까지 '종북좌빨'로 오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 점에서 진보세력은 이번 기회에 확실한 종북의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핵심은 당원증을 들고 애국가를 부르지 않는 태도가 아니라 골수에 흐르는 그들의 사상이다. 한국전쟁, 즉 6·25가 남침인가 북침인가를 물어보는 순간, 그들의 입이 굳어진다.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한 입장을 들으려고 하면 어물쩍 넘어 가거나 다음에 보자고 한다. 우리 사회에 진보가 아닌 종북을 키우고 싶지 않다면 다음에 보자는 이들의 뒤통수를 붙잡고 정색을 해야 한다. 뒷덜미를 잡힌 것이 불쾌하겠지만 무엇보다 정치 전면에 나왔다면 적어도 이 정도의 질문에는 당당하게 답해야 마땅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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