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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지 못 할 일이다. 대한민국의 국무총리를 지내고 여섯 번이나 국회의원에 당선된 정치인이 사상검증의 도마에 올랐다. 제도정치를 거부하고 김일성 사랑으로 밤을 지새운 운동권출신 비례대표 국회의원들은 그들의 정당에서 제명당했다. 20여 년 전, 말간 얼굴로 판문점을 넘어왔던 '원조 국민여동생'은 야당의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하자마자 '종북논란'에 휘말렸다. 결코 웃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이해찬이 누구인가. 민주통합당 대표 경선에 뛰어든 이해찬 후보는 국회의원, 국무총리로서 유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기획력·추진력이 좋고 실무에 강하다는 평판이다. 그러나 그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그의 과거는 '버럭 총리'라는 별명으로 정리된다. 노무현 정부시절 총리를 지낸 그는 국회에 들어서기만 하면 야당 의원을 향해 고함을 질러 '버럭 총리'로 등극했다.
 

   그의 이 같은 충동적 행태는 오랜 내공을 갖고 있다. 1992년 4월 민주당 의원 시절엔 부인과 함께 김해공항의 대한항공 발권창구 앞에서 폭언을 했고, 교육부 장관시절엔 지방 교육청에서 교장이나 교사들과도 충돌이 잦았다. 그 내공이 얼마 전에는 방송사고로 이어졌다. 지난 5일 한 라디오 생방송 전화 인터뷰 도중 진행자의 질문에 역정을 내면서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무엇보다 이해찬을 이야기하면 그가 남긴 '이해찬 세대'를 빼놓을 수 없다. 그가 교육부 수장을 지낸 것은 1998년 3월부터 99년 5월까지다. 그 시절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가 대학에 들어간 2002학번 이후를 두고 우리는 '이해찬 세대'라 부른다. 자율학습폐지, 0교시 폐지, 보충수업폐지 등 3대 강제교육 폐지는 이해찬을 '교육의 혁명가'로 불리게 했다. 당연히 학생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고 묵은 교육의 청산이 이뤄졌다. 압권은 대학입시였다. 특기 하나 있으면 대학을 갈 수 있다는 그의 대입정책은 '공부 안해도 대학 간다'는 환상을 낳아 '이해찬 세대=최저학력 세대'를 만드는 결과로 나타났다.
 

 문제는 교육정책에 사회주의적 이상론을 담고 싶었던 그의 생각이다. 개인의 생각은 존중하고 싶지만 한 국가의 교육수장이 검증되지 않은 이상론을 정책에 반영하는 실험은 오만이다. 한 국가의 교육정책이 실험실의 모르모트가 되면 곤란하다. 그 실험 때문에 가뜩이나 말많고 탈 많았던 우리 대학입시는 말 그대로 요지경이 됐고 현실을 간과한 그의 소신은 두고두고 비난의 대상이 됐다. 
 

   경쟁 없는 사회는 꿈이다. '꿈을 가지면 대학에 갈 수 있다' '경쟁보다 창의력 개발이 우선이다'는 말들은 지하방에 웅크린 우리 교육계에 메시아 같은 발언이었다. 하지만 말은 선언일 뿐, 실현할 수 없는 먼 이야기였다. 그 먼 곳의 이야기를 눈앞에 입시를 붙잡고 있는 세대에게 쥐어주고 정작 그는 자신의 자녀에게 과외를 시켰다. 그 엄청난 모순을 해명하지 못한 채, 좌파정권 10년 동안 장관과 총리로 출세가도를 달린 그는 골프채를 휘둘렀다가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그런 그가 지금 다시 우리 사회의 정치리더로 나선 상황이다. 모순의 과거에 대한 문제풀이집을 내지 못한 그는 여전히 문제를 내는 데만 열중하는 듯하다. 바로 '신메카시즘' 주장이다. 이해찬 후보는 북한인권법을 추진하는 새누리당에 대해 "이명박 새누리당 정권이 대선을 정책선거가 아닌 구태의연한 공작정치, 색깔론으로 몰아가고자 하는 음모"라며 "새누리당과 보수언론의 신매카시즘 선동에 단호히 맞서겠다"고 목젖을 고추 세웠다.
 

   임수경 의원의 막말 논란에 대해서도 "일부 언론에서 왜곡 보도한 것처럼 탈북자에게 '변절자'라고 한 게 아니라 새누리당 의원에게 한 말"이라면서 "당사자가 사과를 했으니 당이 (별도로) 조치할 일이 아니다"고 일축하고 있다. '종북논란'에 휩싸인 이석기·김재연 의원 제명에 대해서는 "국가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는데 대체 누가 개인의 국가관을 검증할 수 있느냐"면서  "(두 의원의 제명은) 매카시즘 보다 더 악질적"이라며 보다 강도 높은 자신의 색깔을 드러냈다.
 

 신매카시즘 정국으로 몰아간다는 이해찬의 발언은 반전을 꿈꾼다. 공안정국을 만들어 올 겨울 대선까지 '종북세력' 제거를 깃발로 흔들어댈 보수세력에 덜미를 잡히지 않겠다는 계산이다. 이석기와 김재연을 제명하고 임수경과 선을 긋는 순간, 노무현 바람의 주역들이 등을 돌리는 사태로 번질 수 있다는 수읽기가 벌써 그의 책상에 리포트로 올라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쯤에서 분명히 할 문제가 있다. 팩트(fact)다. 이석기와 김재연의 행적과 발언, 임수경의 말과 행동은 음모론의 창작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 이해찬의 과거처럼 그들의 지나간 이야기들을 다큐멘터리로 기록하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기록이 신매카시즘이 될지, 종북세력의 묘지명이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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