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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이 대선 전초전의 인테리어 때문에 야단이다. 소박하게 현상 유지를 고집하는 친박계와 가능한 대출을 받아서라도 화려하게 꾸미려는 비박계의 기싸움이 집안을 거덜 낼 태세다. 원칙를 지키자는 쪽과 원칙도 변할 수 있다는 쪽의 싸움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룰의 전쟁'이라고 이야기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전쟁은 아니다. 전쟁이라는 게 쌍방의 이해가 맞붙어야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일방적인 설전이 있을 뿐이다. 친박의 깃털들은 비박계의 몸통들 흔들기에 '원칙'만 고집한다. 하기야 친박의 몸통이 요지부동이니 깃털은 가끔 먼지를 털어내는 손짓을 할 뿐이다.
 

 원칙주의자로 통하는 박근혜 전 대표가 흔들리지 않는 것은 비박계의 '완전국민경선제'가 정당정치의 근간을 흔든다는 이유다.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상대 당 지지자들에 의한 역선택 등 '반칙'을 우려한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속내는 역시 그동안 고수해온 '원칙주의자'의 이미지를 무너뜨리고 싶지 않다는 게 더 크다.
 

   현재 대선후보의 경선룰은 대의원, 일반당원, 일반국민, 여론조사 결과를 각각 20%, 30%, 30%, 20%씩 반영하도록 하고 있다. 일반국민과 여론조사만으로도 상당부분 국민경선이 수용된 것이라는 게 친박의 주장이다. 굳이 좋은 집을 두고 여윳돈도 없는 마당에 대출까지 받아 새로 인테리어를 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비박계의 이야기는 다르다. 김문수와 이재오, 정몽준 등 대선 후보군이 겨울 대선을 위해 과감하게 룰을 뜯어 고쳐 새로운 인테리어를 해야 한다는 주장은 흥행 때문이다. 비박계 인사들도 스스로 완전국민경선을 한다고 해서 용문에 올라 소리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들이 노리는 것은 대선 이후의 정치판이다. 자신들의 뜻대로 화려한 인테리어로 뜯어 고친 완전국민경선이 세상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순간 한자리 수의 지지율이 어디까지 오를지는 모를 일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있다.
 

 문제는 절차의 투명성이다. 절차의 룰이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특히 한 나라의 최고 통치자를 정하기 위한 수순은 모든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는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그 절차가 불투명하면 나라 전체가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정당도 마찬가지다. 하물며 집권 여당의 차기 대권후보를 가리는 문제는 투명성이 생명이다. 이를 담보하지 않으면 누가 대권후보가 되든 당사자는 투명성의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결국 본선에서도 큰 부담이 된다. 룰보다 투명성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왕조시대 이야기지만 조선왕조에서도 왕위 승계를 둘러싼 원칙론은 언제나 문제가 됐다. 조선왕조 500여 년간 왕위에 오른 사람은 모두 27명이다. 이 가운데 원칙에 맞게 왕위를 승계한 왕의 적장자 혹은 적장손 출신은 겨우 10명에 불과했다. 나머지 17명의 왕은 세자의 책봉과정이나 왕위계승에 있어서 원칙에 맞지 않는 비정상적인 계승자였다.
 

   그 대표적인 왕이 조선 제14대 왕 선조였다. 급사한 명종의 사후 문제는 인순왕후(仁順王后)의 손에 달려 있었고 당대 정치세력의 이해관계의 방정식에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왕실의 방계, 하성군이 왕후의 낙점을 받았다. 물론 준비없이 등극한 왕도 훌륭한 치세로 성군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선조는 정치세력의 도구라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고, 전쟁의 와중에 백성을 버린 최악의 군주가 됐다. 선조의 문제는 원칙이 아니라 투명성에 있었다. 왕위 승계의 절차가 투명하게 진행됐다면 선조는 집권내내 정통성 시비에 휘말리지 않아도 됐다.
 

 투명하지 않은 절차는 스스로 당당할 수 없기에 자신의 치부를 쓰다듬는 가신들만 총애하게 되고 그 결과는 옹졸하고 편협한 정치로 되돌아 오기 마련이다. 지금 새누리당의 대권 주자들은 바로 이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 원칙이라는 룰의 기싸움보다 경선 절차의 투명성이 대권으로 가는 길인데도 여전히 '원칙'의 기둥에 목을 매는 꼴이다.
 

   이 장면에서 주목할 만한 것이 김문수 후보다. 김 후보는 완전국민경선제가 야당의 경선 흥행에 대항하는 이벤트임을 주장한다. 그는 박근혜 전 대표를 두고 "2002년 경선 때는 스스로 룰을 고치자고 했다가 나중에 탈당했다"며 "좌파세력이 야권연대를 통해 국회에 진출하는데 성공했으며 12월 대선에서 정권장악까지 노린다. 야권의 3단계 통합(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 신·구 당권파) 마술쇼에 우리 당도 대응해야 한다"고 흥행 카드의 선택을 역설했다.
 

   겉으로는 박근혜 전 대표를 향한 날선 비판 같지만 행간을 읽으보면 거의 '러브레터' 수준이다. '선수가 룰을 바꿔서는 안 된다'는 박근혜에게 룰을 버려야 룰이 보인다고 이야기 하는 김문수의 속내를 친박이 제대로 해석한다면 어제의 원칙이 아닌 오늘의 원칙이 세워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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