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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시절 온 몸의 에너지를 경기를 위해 충전한 프로는 끝이 외롭다. 최선을 다했으니 열정만큼 세상의 인심이 함께해야 마땅하지만 세상사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프로야구 선수 이야기지만 최동원이 그렇고 장효조도 그랬다. 현역에서 물러나 코치도 하고 감독도 했지만 최동원 감독이나 장효조 코치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사지를 우주로 펼칠 듯 기이한 동작으로 강속구를 뿌리던 최동원과 옴팡지게 움츠렸다 휘두른 방망이에 백구가 창공을 가르던  장효조를 기억할 뿐이다.
 

   공통점은 톱스타다. 투수와 타자의 자리에서 최고가 되기 위한 그들의 땀은 기억되지 않지만 마운드와 타석에서 뿜어내던 내공은 사라지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두 사람 모두가 영원한 선수로 기억된다는 점이다.
 선수는 경기에 나설 때 빛이 난다. 알리와 조 프레이저가 링 밖에서 요란한 설전을 벌여도 흥밋거리일 뿐, 세상의 시선은 사각의 링에서 열광한다. 그 열광의 정점이 선혈 낭자한 프레이저의 눈두덩이이거나 알리의 비틀거리는 하체일지라도 비틀거림과 선혈이 선수를 선수답게 하기 마련이다. 시간이 지나 기억하는 선수들이 노쇠해지면 세상은 또 다른 선수에 열광하지만 과거 한 때 자신들이 열광했던 선수를 추억할 때도 그들의 말잔치가 아니라 경기장에서 흘린 땀을 기억할 뿐이다.
 

 사람의 말과 사람의 글을 믿지 말라는 말이 있다. 말과 글보다 행동으로 그 사람을 평가하라는 이야기다. 결정의 순간이 오면 사람은 그가 했던 말이나 그가 썼던 글을 잊는다. 말과 글보다 스스로 이해를 좇아 움직이는 행동이 바로 그 사람이라는 이야기다. 정치에서 더욱 유용한 말이다.
 

 딱 6개월 남은 대선을 앞두고 우리 정치권이 선수 선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대표선수를 정해놓은 곳이나 대표선수를 정해야 하는 곳이나 선발전이 시끌하기는 마찬가지다. 선발전에 나선 선수들이 연일 뱉어내는 말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행동은 없고 말만 가득한 정치는 그래서 추억거리가 없다.
 

 대표를 정해두고 모양만 선발전을 치러야하는 여권의 사정은 싱겁지만 대표선수를 만들어야 하는 야권은 시간이 지날수록 목이 타는 상황이다. 문재인 이해찬 라인을 완성해 봉하마을에서 결의까지 다진 민주통합당은 그래서 연일 안철수를 향해 잽을 날리고 있다. 아예 날짜까지 지정해 링 안으로 들어오라고 당대표가 공개 방송을 했고, 대표가 총애하는 선수는 이미 링 안에서 몸을 풀며 "어떤 놈이든 링에 오르면 프로의 쓴맛을 보여주겠다"고 전의를 다지고 있다.    
 

 아서라, 야권의 몸 풀기는 안철수 원장에게 향해 있지만 정작 안 원장은 '어떤 집단에도 얽매이지 않겠다'는 말로 이 시대의 새로운 아나키즘을 선언했다. 이미 자신의 뜻을 밝혔는데도 머리털을 건드리고 옆구리를 찔러대니 버럭 화가 날 법도 하다. 안철수 원장이 정색을 했다는 대리인의 말 한마디에 사방에서 던지던 잽들이 갑자기 우선멈춤을 했다.
 

   문제는 시각이다. 안 원장은 이미 정치에 발을 들여놓았는데 야권은 들어오라고 얼래고 달래다 협박까지 한다. 그가 와야 흥행이 된다. 그가 오면 그를 세워 겨울 선거에서 대권을 잡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가 와야 그들이 대권을 손에 넣을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반드시 그를 링 위에 올려야 한다. 
 

 지금 상황으로는 올 겨울 대선에 나설 선수들은 경기 직전에나 확정될 모양새다. 안철수에 대한 구애공세에 지친 민주통합당은 최고위원회에서 대선 180일 전까지 후보를 선출하도록 돼 있는 규정을 80일 전으로 변경하기로 룰까지 고쳤다. 올 여름 세상의 시선이 런던올림픽에 몰릴 것까지 시나리오에 넣은 그들은 올림픽 이후 경선과 단일화로 겨울 대권을 노린다는 새로운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물론 변수는 안철수 원장이다. 베이스 캠프에서 몸 풀기를 하고 있는 안 원장도 본격적인 등판을 위한 타이밍을 노리고 있다. 여권의 선수는 이미 주특기와 치명적 결점까지 알려진 상태니 접어두더라도 여전히 미궁 속인 야당 후보가 정해진 뒤 등판 날짜를 발표하는게 유리하다는 계산을 하는 모양이다. 그리고 한마디 "근래 민주당 일부 인사의 발언은 상처내기다. 그 상처가 누구에게 유리한지 생각하기 바란다"고 중저음의 묵직한 톤으로 이야기 한다. 등판을 재촉하는 민주당을 향해 "등판 날짜는 내 맘이니 관여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주인공은 뒤에 나타나는 법. 먼저 나서 죽은 자나 먼저 나서 만신창이가 된 인물들을 숱하게 보아 온 터이니 링의 법칙은 알고 있는 모양이다. 다만, 분석은 선수가 아니라 관전자가 한다. 그것도 단순한 관전자가 아니라 온 몸으로 선수의 땀과 열기를 느끼고 소통해야할 유권자가 관전하고 있기에 선수는 스스로 날짜를 정하고 스크린의 스타처럼 등장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덧셈과 뺄셈을 넘어 나누고 곱하는 수준을 지나 미적분까지 하다보면 스스로 선수인지 코치인지, 아니면 감독인지를 착각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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