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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화가인 이상열의 서재 '필우재'. 필우재는 주인의 다양한 이력처럼 공간 역시 시인의 서재와 화가의 아틀리에 역할을 겸하고 있다. 필우재의 '필(筆)'자 역시 그림을 그리는 붓이자 글을 쓰는 붓을 의미한다.
필우재는 1998년 그가 처음 개인전을 준비할 당시 가졌던 첫 작업실의 이름이기도 하다. 당시 형편이 어려워 가건물을 작업실로 사용했던 그는 가건물 지붕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소리가 너무 좋아 비 우자를 쓰게 됐다고 했다. 그래서 필우재는 해석하기에 따라 붓획이 비처럼 쏟아지는 곳, 글(그림)과 비가 머무는 곳 등이 된다.
사실 지난 주 이곳을 찾았을 때 바닥에 뒹굴던 캔버스와 물감, 아마도 그림을 그리는 작업에 쓰일 정체모를 기계들만 보고'아뿔싸! 서재가 아닌 화실을 잘못 찾았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공간 한 켠을 장식하고 있는 작지않은 책장들을 보고서야 제대로 찾아왔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였다.
이상열 화가는 이곳을 "먹을 갈거나 술을 마시거나 하다가 심심하면 책을 펼쳐보다가 낮잠이나 자는, 그러니까 낮엔 휴식의 공간, 밤에는 밥벌이의 공간이기도 한 애매모호하지만 애정 어린 나만의 창작공간"이라고 소개했다.

▲ 화가의 아틀리에이자 시인의 서재인 '필우재'. 이상열 화가는 이곳에서 붓으로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시를 쓰기도 하며, 그를 닮은 보석 같은 작품들을 세상에 내놓고 있다.

# '그림 속에 시가 있고 시 안에 그림이 있네'
이처럼 필우재는 문인화 뿐 아니라 시를 함께 쓰는 주인을 대변하는 공간이다. 그는 시 같은 그림, 그림 같은 시를 쓰고 싶다고 했는데 '그림 속에 시가 있고 시 안에 그림이 있네'라는 이'화중유시 시중유화'란 말이 곧 자신의 작품세계를 대변한다고 했다.
 이런 그의 특징은 그의 시 '먹'에 참 잘 드러나 있다.

 "송아지 어미 젖빨 듯
 마른 논바닥 빗물 들 듯
 선염의 먹물 피돌기를 하네
 본성을 찾았다고
 다시는 떨어지지 않겠다고
 큰 눈 끔벅이며 심우도로 들어가네
 멍에도 워낭도 없이
 아! 비릿한 살냄새
 피는 먹보다 진하다네" - '먹'중에서

 먹을 실제로 써보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런 비유가 나올 것이며 또 화가가 아니라면 어떻게 이렇게 그림그리듯 시를 쓸 수 있을까. 물론 좋은 시인은 그림 그리듯 시를 쓰고 좋은 화가는 시를 쓰듯 그림을 그린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 두가지를 모두 해내고 싶다는 그는 참으로 욕심쟁이다.
 
# 문인화 전공하면서 자연스럽게 시에 관심
그런데 대학에서도 그림을 전공하고 그 후에도 쭉 화가의 길을 걸었던 그가 어떻게 펜을 들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이에 대해 그는 "동양화 그중에서도 문인화를 전공하다보니 그림 한 켠에 늘 뒤따르는 한시나 제문을 공부해야했어요. 제대로 문인화를 그리려면 나도 그와 어울리는 시를 쓸 수 있어야겠다 막연히 생각하고 그때부터 시를 공부했지요. 물론 한문공부가 짧아 한시를 쓸 수는 없고 21세기 한국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내가 쓸 수 있는 시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지요."
 그러나 글이라는 게 그렇게 마음만 먹는다고 절로 나오지는 않는 법. 그가 그전부터 기울였을 문학에 대한 관심과 제대로 글을 쓰기 위해 겪었을 고통도 사뭇 궁금해졌다. 그는  대학시절 부터 시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고 했다.
 "제가 83학번인데 그 당시 대학생들이 관심이 많았던 사상이나 정치문제에 대해 저는 사실 큰 관심이 없었어요. 그보다는 제 그림을 그리거나 공부하느라 혹은 노느라 바빴는데 언젠가 문학강의에서 참여시 작품들을 읽게 되었죠.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을 비롯해 김지하나 황지우 등의 시인들의 작품이어요. 특히 황지우의 시를 처음 읽었을 땐 머리가 쭈뼛거리고 뒷목이 서늘한 느낌을 받았을 정도였죠. 그 때 문학의 힘을 느낀 것 같아요. 문학이 세상을 반영한다거나 연결돼있다는 점, 또 세상에 대한 일종의 외침이 될 수 있다는 것을요. 그 후부터 이들이 쓴 시집들은 다 찾아서 읽기 시작했고 그 외의 시에도 관심을 두고 읽었어요. 이렇게 시를 계속 읽다가 영감이 떠오르면 메모도 하고.. 그렇게 반복하다보니 언젠가부터 쓰고 싶어지더라고요. 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지요."
 그때의 영향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것인지 필우재에 소장된 천 여권의 책 중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 역시 시집이다. 유명한 시인의 작품부터 울산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는 동인들의 작품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손떼 묻은 그 책들을 보니 좋은 글은 예술가의 뛰어난 영감으로만 나오는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 매년 가족과 세계 각지를 누비는 여행 매니아


그의 책장에서 또 빼놓을 수 없는 책들은 바로 여행서적들이다. 흔한 유럽권 여행서적부터 네팔, 인도, 티벳과 같은 조금은 특이한 여행지를 소개한 책까지 다양한 여행서들이 그의 책장을 장식하고 있다.
 실제 그는 매년 가족과 세계 각지로 여행을 떠나 그곳에서 보고 느끼고 체득한 것들을 그림이나 시로 풀어낸다고 했다. 최근까지도 울산의 한 신문에 고정 여행기를 연재했을 정도로 그가 갖고 있는 여행에 대한 이야기 보따리는 흘러 넘칠 정도다. 그에게서 듣는 여행얘기는 새롭고 유쾌한 나머지  시간가는 줄 모르고 듣다보니 인터뷰의 절반이 여행얘기로 채워졌다.
 그중에서도 그가 가장 사랑한다는 여행지는 히말라야 서쪽 끝 고갯길(La)의 땅 라다크(Ladakh). 그는 지난 3년간 매년 여름을 그곳에서 보냈고 그때 느꼈던 것들을 부족하지만 그림과 시로 표현해내고 싶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 경험들은 그의 손에서 그림으로 먼저 태어나 그의 작업실에 걸려 있었다. 얼마후 서울에서 있을 개인전에 출품할 작품들이라고 했는데 시리도록 파란 하늘과 샤갈의 그림이 연상되는 당나귀, 진짜 흙을 얹은 캔버스가 인상적인 그림이다. 이상열 화가는 바로 이 하늘이 라다크의 하늘이라며 정말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곳이기 때문에 직접 꼭 가보기를 추천했다.
 
# 주인의 다양한 풍모 닮은 공간
필우재는 이상열 화가의 다양한 이력 뿐 아니라 예술가로서의 그의 풍모도 닮았다.
 이리저리 참 자유분방한 것도 그렇고 (이 생각을 읽은 것인지 그는 손님이 온다고 깨끗이 치운 게 이 정도라며 머쓱해했다.)가식이나 세련미를 추구하기보다는 편안하고 실용적인 것을 추구하는 유쾌한 성격도 그대로 빼닮았기 때문이다.
 방금 작업을 끝낸 듯한 흐트러진 머리, 끝이 처진 눈, 그럼에도 유쾌하게 미소지을 때면 전해지던 밝은 기운. 소탈하지만 내면에는 밝은 기운을 갖고 있는 이 작가의 심성이 결국 따뜻함이 넘치는 작품으로 나오는 듯 했다. 화려하기는 커녕  소박한 필우재 역시 보석같은 작품을 퍼올리는그와 닮은 공간이다.
 김태수 시인은 그의 시를 "너절하고 답답하고 따분한 일상을 으깬 수채화 물감으로 크고 하얀 도화지에다가 그린 시"로 표현했다. 참으로 적절한 얘기같다. 그의 시를 읽다보면 웃음이 절로 나는데 솔직한 시어도 그렇고 그냥 스쳐지나갈 법한 일상의 단상들을 너무나도 잘 포착해 시로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처음 만난 그와 여러 얘기를 나누면서 또 그가 건넨 시집에 수록된 작품을 읽으면서 발견한 것은 소탈한 겉모습과 다른 그의 내면에 숨겨진 결코 범상치 않은 모습이었다. 앞으로도 그의 이 범상치 않음이 잘 발휘된 작품을 많이 만날 수 있길 기대한다. 그리고 아름다운 서재 필우재도 든든한 동반자로 그와 함께 할 것을 믿어 본다.

[이상열이 꼽은 내 인생의 책]

# 달라이라마 자서전-유배된 자유를 넘어서
1991년 정신세계사에서 펴낸 책을 인도 다람살라에서 읽었다.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다람살라는 여름엔 대표적인 다우 지역이다. 비 내리는 까페에 앉아 명상하듯 책장을 넘기며 티베트인의 운명과 한사람의 종교지도자로 세계인의 정신적 지도자로서의 달라이라마를 알게 되었고 존경하게 되었다.
 라다크 여행길에서 그분을 가까이서 친견하는 영광을 얻으며 그 분의 한없는 용서와 화해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를 알았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만면의 온화한 미소, 그것은 화현이었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1983년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된 황지우시인의 시집을 책장이 닳도록 읽었다. 시를 통해서 세상을 보는 눈을 뜨고 문학의 힘을 믿는 계기가 되었던 내 인생의 잊을 수 없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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