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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나 부호 그리고 재벌은 그 시대의 거울이다. 거울인 동시에 또한 그 시대문명의 거울이 되기도 한다.
 미국의 철강왕 앤드류, 카네키가 금융왕이라 부르던 '존, 피어몬트모건'에게 철강회사를 팔고 받아쥔 돈은 4억9,200만달러였다. 당시 부국이었던 일본의 1년 국가예산이 1억3,000만달러였으니 가히 천문학적인 거금이었다.
 

   카네기는 이 돈 모두를 사회로 환원하면서 20세기 재벌의 철학을 제시하고 죽어간 세계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카네기재단을 설립한 다음 학문과 예술발전을 위해 너무나 통큰 희사를 하였기에 역사는 카네기와 모건의 철강회사 매매 일을 세계최고 자선가 탄생일로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대신 이종만은 카네기와 같은 문명시대나 문명국가에 태어난 사람이 아니다. 또 카네기보다 연대가 앞선시대에 문명과는 거리가 멀었던 한국에서 그것도 유교적인 인습에서 께어나지 못했던 경상남도 울산군 대현면 용잠리에서 태어나 변변한 교육과정을 거치지 못하면서 서당공부마저 중도에 그만 둬야하는 불운한 환경 속에서 자라난 사람이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자라난 이종만은 카네기보다 훨씬 험난한 실패를 거듭하면서 불굴의 용기와 의지로 뒤에 조선최고의 금광왕 된다.
 

 7전8기가 아닌 31전32기의 실로 전설적인 신화를 남긴 이종만은 그가 소유했던 금광을 팔아넘긴 돈으로 다 같이 잘살자는 대동사상을 실천하기 위해 인구의 8할이 농촌 농민이던 조선의 농촌을 부흥 시키는 일과 유교의 인습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기 위해서 신학문을 가르치는 교육 사업에 많은 돈을 투자했다. 사상이나 주의 이념 같은 것은 아예 안중에 두지 않았다. 오직 '다 같이 잘살자'하는 것만이 그의 철학이었고 인생의 목표였다. 그런 그의 사상이 밑거름이 되어 당시로서는 누구도 말할 수 없었던 지주와 소작인 관계를 뒤바꿔 버렸다.
 

 소작인의 이익을 위해 대동농촌사를 설립하고 수벽만평의 농지를 구입하고는 지주가 7할이요, 소작인이 3할이던 농지경영방식을 바꿔 버린 것이다. 그것도 30년 동안 소작인이 농사를 지은다음에는 그 농지를 영구히 소작인에게 분배해 버리는 것이었다.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일 일 수밖에 없었다.
 

 또 고향 용잠리에 신학문을 가르치는 학교를 짓게 했는 가하면 울산에 대흥학교를 세우게 했다. 광산회사의 사주일 때는 사장도 말단 직원의 월급이면 살 수 있다면서 말단 사원의 급료를 받으며 그들과 침식을 같이하고 절약한 돈으로 회사인근 부락민을 도왔다.
 

 그는 이 같은 대동사상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사업체가 있는 북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그것이 고향과 조국을 등지게 하고 말았다. 남한의 자본가가 자진해 월북하자 김일성은 상당한 대우를 하게 됐다. 그가 사심없이 세운 대동공업 전문학교가 김책공업대학을 거쳐 지금은 김일성대학이 되었다. 또 신사참배 문제로 폐교 수순을 밟으며 학교를 일본인에게 넘기려 했던 숭실전문학교를 일본인이 감히 근접 할 수 없도록 어마어마한 인수금액을 제시함으로서 그 민족혼이 깃든 숭실대학을 오늘에 이르게 했던 것이다.
 

 1997년 1월 17일 9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이종만은 북한 애국열사묘역에 묻혀 고혼이 됐지만 남한에 있을 때부터 사회를 위해 던져버린 돈은 실로 어마어마한 거액이었다. 그래서 역사는 그를 "북으로 간 아름다운 부자"로 부르고 있다.
 

 나는 이렇게 파란만장한 그의 일대기를 소설로 쓰고 싶었다. 망설이며 쓴 그 글이 탈고 하기에 이르렀지만 쓰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작가의 양심으로 이제 이 고장의 인물, 이종만의 대동사상을 알리려한다.
 지난주 나는 만난을 무릅쓰고 그의 막내딸이 42년 동안 외국으로 떠돌다 돌아와 정착한 평화의 섬 제주도로 가서 만나고 왔다. 아흔한살에 이른 그녀는 2년전 뇌수술을 받고 요양원에 있었다.
 

   그러나 그녀 4남매 자녀들 모두를 하버드나 옥스퍼드의 명문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게한 아버지를 닮은 장한 여장부였고, 남북의 평화와 세계의 평화를 위한 기도에 전념하고 있었다. 일선 이순남 여사, 그리고 그의 아들,딸들이 어머니와 함께 이종만의 대동사상을 널리 펼치고 이 땅에 이종만이 평생을 두고 염원하던 참 평화가 하루속히 오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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