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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장생포가 다시 고래사냥의 전진기지가 될 모양이다. 우리 정부는 지난 1986년 이후 금지해온 포경 활동을 재개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번에는 아예 절차를 거치지 않고 국제포경위원회(IWC) 연례회의에서 포경 계획을 제출하면 승인을 받는 절차는 필요 없다는 입장이다.
 

 일본이 '과학연구용 포경'을 명목으로 고래잡이를 계속하고 있는 마당에 굳이 절차가 필요 없다는 것이 우리정부의 입장이다. 일본의 '꼼수'에 자국 앞바다의 고래가 포획되는 현장을 목격하고 있는 호주, 뉴질랜드 등은 즉각 반발하고 있지만 우리 영해에서 제한적으로 포경을 재개하겠다는 입장은 단호하다.
 

 고래사냥 재개 소식이 전해지자 장생포가 들썩이고 있다. 고래박물관 광장 한켠에 정물처럼 자리한 제6 진양호는 견고한 시멘트 바닥을 벗어나 비린내 물씬한 대양으로 나아갈 듯하다.
 

 장생포가 고래사냥의 전진기지가 된 것은 무려 한 세기 전이다. 지난 1899년 러시아의 태평양어업 주식회사가 대한제국의 포경 허가권을 양도받아 조업을 시작했고, 그 때 장생포를 고래 해체 작업장으로 이용했다. 이후 제국주의 일본은 조선 강점기가 끝날 때까지 장생포를 고래사냥의 출발지이자 종착지로 이용했다. 물론 이 때에 포획한 고래고기는 대부분 일본인의 식탁에 올랐다.
 

 장생포가 고래사냥 1번지로 명성을 날린 정점은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다. 개도 지폐를 물고다닌다는 이야기가 풍문으로 들리던 장생포는 20여척의 포경선과 1만 여명의 인구가 상주하는 큰 마을이었다.
 

 그러다 1986년 국제포경위원회(IWC)에서 상업포경금지를 결정하면서 장생포의 영화는 끝났다. 사라진 고래등 대신 굴뚝이 솟구치고 시원한 물줄기가 포물선을 그리던 자리엔 시커먼 매연이 뒤덮였다. 그 사라진 자리에 다시 고래문양을 새기고 흩어진 뼈와 처박힌 선구를 모아 박물관을 만들었다. 포경은 금지됐지만 수천년전 반구대암각화가 남긴 고래사냥의 유전인자가 장생포를 다시 고래바다로 꿈틀거리게 한 셈이다.
 

 지난 2010년 여름, 발굴기관인 한국문물연구원이 울산 황성동에서 굉장한 발견을 했다. 울산 신항만 부두 연결도로 부지를 조사하던 연구원은 무려 8,000년 전으로 추정되는 유물을 찾았다. 화살촉이 박힌 고래 등뼈 1점과 역시 화살촉이 박힌 부채꼴 모양의 고래 어깨뼈 1점이다. 발견된 유물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인류의 고래사냥 역사를 다시 쓰게 했다. 고래사냥의 흔적이 실물로 나온 것은 처음인데다, 우리나라 포경 역사상 가장 오래된 유물이 바로 울산에서 발견됐다.
 

 지금도 유럽인들은 노르웨이 알타 암각화를 근거로 자신들의 조상이 고래사냥의 첫 모험가라고 주장한다. 6,000년 전 바이킹 이전에 살았던 사미족이 새긴 것으로 알려진 고래벽화가 그들이 주장하는 근거다.
 

 하지만 고래와 인류가 가장 먼저 교감하고 그 교감의 증거를 남긴 것이 울산이라는 사실을 세계 석학들은 알고 있다. 고래를 연구하고 고래문화를 인류문화의 여명기로 보는 세계의 석학들은 반구대암각화를 주목하며 바위에 새겨진 고래사냥의 증좌에 탄복하고 있었다. 그런데 실증유물까지 나왔으니 흥분할 일이었다. 반구대암각화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배를 탄 사람들이 뒤집어진 고래를 끌고 있는 모습이나 힘차게 요동치는 고래의 모습이 동영상으로 재현될 것처럼 사실적으로 새겨져 있다.
 

 바로 그 고래사냥이 다시 울산에서 시작될 태세다. 고래고기를 즐겨먹는 일본은 연구용이라는 명목으로 해마다 2만3,000여마리의 고래를 포획한다. 일본은 이마저도 모자라 남극주변에서 연구를 빙자한 고래 포획을 일삼아 왔다. 이 때문에 호주 정부는 일본의 연구용 포경이 실상은 상업적 포경을 감추기 위한 꼼수라며 외교문제화 하고 있다.
 

 일본 포경업자들의 고래사냥은 무자비하다. 남태평양은 고래가 2세를 기르는 공간이다. 그 곳에서 일본인들은 임신 중이거나 수유 중인 고래를 수천마리씩 포획한다. 포경이 비난의 대상으로 번진 것은 바로 일본 때문이다. 이를 의식한 우리 정부는 우리의 바다에서 제한적으로 실시하는 포경은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어족보호와 오래된 고래 식문화의 활성화를 위한 조치라고 주장한다.
 

 문제는 고래사냥의 절차와 방법이다. 우리 바다에 확연히 늘어난 고래 개체수를 제대로 분석하고 어족보호의 명문에 맞는 제한적 포경이 이뤄져야 고래사냥 재개의 의미가 있다. 그래야 정물화로 머물던 장생포의 고래문화가 심장의 박동을 힘차게 울려 고래고래 고함 지를 수 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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