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옅은 안개가 녹음과 어우러져 더욱 운치를 느끼게 하는 황산의 모습.

#바위, 소나무, 운무가 어우러진 곳
지난 달 부산을 떠나 중국 황산에 도착했다.
 거기서 갈아탄 버스는 황산 시내를 거치지 않고 바로 입구의 탕코우에 도착했다.
 항저우에서 여기까지 오면서 보니 부풀리기를 좋아하는 중국답게 '大'자를 붙이기에는 어딘지 모자라 보이는 교량에도 전부 '大'자를 붙였는데 우리가 머문 숙소 옆에 있던 한 호텔도 특급호텔이란 의미의 '대주점(大酒店)'란 이름을 붙여놓았다.
 

 일행과 면으로 간단한 식사를 하고 옥병루에 오르는 케이블을 타는 자광각으로 향했다. 도착하니 입구부터 단체여행객들로 인산인해였다.
 수많은 등산객들에 치여 우여곡절 끝에 케이블카에 오른 일행은 창밖의 풍경에 금세 매료됐다. 10분 남짓 오르는 케이블카에서 바라본 초여름의 황산은 기묘해서 신비스러우면서도 또한 아름다웠다.
 70이 넘어 보이는 노인들은 '파오량(아름답다)!'을 연발했다.
 

 지질학 연구자들에 따르면 미국의 지질연대는 중국에 비해 어리기 때문에 침식작용이 덜 이뤄진 상태고 중국의 산들은 오랜 세월 침식작용이 이뤄진 결과 그런 형상을 나타낸다고 했다.
 같은 동아시아 내에 위치한 한반도 역시 마찬가질 테니 황산을 보며 설악산을 떠올린 것은 비단 나 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수백만 년 동안의 침식작용이 만들어 낸 자연의 조화를 인간의 언설로 어찌 다 나타낼 수 있을까.
 

 바위 사이로 씨앗이 싹을 틔우고, 그 좁은 틈에서 우람하게 자라고 있는 소나무를 보니 절로 탄성이 나왔다. 바위가 아무리 강해도 생명의 힘을 이겨내지 못하는 법. 그래서 도가에서는 가장 부드러운 것이 가장 강한 것이라고 강조하지 않았던가.
 

   
황산에서는 이 같은 기암을 많이 볼 수 있다. 기암은 '황산 4절'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1,810m높이의 천도봉이 바라보이는 영객송 부근까지 갔다가 그곳에서 한참 시간을 보냈다. 가만히 보면 중국인들은 뜻글자의 장점을 충분히 활용해 아주 적절한, 아니면 그럴듯한 이름을 붙인다. 바위 옆에 자생적으로 자라난 소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그들은 이 소나무를 영객송(迎客松), 즉 '손님을 맞이하는 소나무'로 명명한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앞에 보이는 천도봉까지 오르고 싶었으나 혹시나 내일은 날씨가 맑아 또다른 절경을 볼 수 있지는 않을지 기대하며 일행과 하산했다.
 

#기암, 기송, 운해, 온천 '황산 4절'
그리고 다음 날 아침 5시 전날 밤하늘에 구름이 많이 끼어 제대로 풍광을 보긴 어려울 거란 관측이 많았지만 날씨가 시시각각 변덕을 부리는 곳이 황산이라니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부리나케 서둘렀다.
 

 황산은 크게 전해, 동해, 서해, 천해, 북해 이렇게 다섯 곳으로 구분되는데 전해에는 천도봉과 옥병루, 동해에는 백아령과 관음봉, 서해에는 서해대협곡과 송림봉, 천해에는 황산의 주봉인 연화봉과 광명정이 있고 북해에는 사자봉을 비롯한 후자관해가 있으며 숙박시설이 대부분이다.
 케이블카를 타고 당도한 백아령. 어제 옥병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간 옥병루에서 전해(前海)를 보았다면 오늘은 동해를 보고 천해와 서해를 보게 된 것이다. 
 

   
황산 정상으로 가기 위한 케이블카. 황산의 아름다움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게다가 백아령에서 내려올 땐 천해에 속하는 연화보와 광명정, 서해 일부인 비래석 지역을 케이블을 타고 공중에서 관람하며 하산했으니 운곡케이블 구역과 북해지역을 제외한 일원을 맛본 것이다.
 어디에서 이런 일망무제를 경험할 수 있을까. 하나 아쉬웠던 것은 변화무쌍한 것이 황산의 날씨라는 소문이 있어서 갑자기 햇살이 솟아나 운해속의 봉우리들을 혹시나 볼 수 있을까 기대했지만 그러진 못한 것이다.
 

 개성에 가면 송도 3절(서화담, 황진이, 박연폭포)이 있듯이 황산에도 4절이 있다.
 기암, 기송, 운해, 거기에다 온천을 더한 것이 바로 그 4절로 나는 운 좋게도 이틀간의 첫 방문동안 셋(소나무, 바위, 운해)이나 본 것이다.
 물론 구름 한 점 없는 날씨였다면 산색을 달리하며 겹겹이 펼쳐진 자연을 볼 수 있었을 테지만 4절 중 셋이나 봤다면 이 날 두 눈이 제대로 호사를 누리긴 누렸단 생각이 든다. 자연의 일에 인간이 더 욕심을 부리는 것은 너무 과한 욕심일 것이다.
 

#자연을 그대로 살린 거대한 돌산
오랫동안 계단을 오르내려 어느덧 황산기상대에 다다랐다. 황산은 거대한 돌산이라 자연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다이나마이트를 사용하지 않고 10여년에 걸쳐 바위를 쪼아내고 구멍을 뚫거나 깎아서 13만여개의 계단 및 잔도를 만들어 쉽게 접근하도록 했다. 정말이지 중국 아니면 통하지 않을 일이다.
 

 1,860m 고지에 위치한 황산기상대는 특이한 모양새를 한 채 자리 잡고 있었다. 전해, 동해, 천해, 서해를 사면팔방으로 내려다 볼 수 있었다.
 기상대가 있는 광명정에서 바라본 황산은 흐린 운무 속에 숨겨진 비경 같은 느낌을 자아냈고 흐릿하게나마 날아왔다는 바위인 비래석도 보였다.
 설악산에 이는 울산바위도 남쪽에서 날아왔다는 얘길 들었는데, 여러모로 황산과 설악산은 비슷한 점이 많았다. 바위산에 소나무가 울창한 것도 그렇고 공룡능선을 닮은 능선도 그렇다. 

   
황산의 에메랄드빛 비취 계곡. 환경이 깨끗해 벌레 종류가 서식하지 않는다는 얘기도 있다.
 

 게다가 황산운해는 중국에서도 일품 절경으로 꼽히는데 설악산 운해도 황산 못지 않은 점도 그랬다.
 비래석 난간에 오르니 가물가물하게 석상봉, 석주봉, 무송타호 능선 일대가 아찔하게 보였다. 비가 흩뿌리는 궂은 날씨였지만 난간에서는 많은 이들이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기상대에서 내려갈 때쯤엔 사람이 우리가 가는 길로 몰려들어 처음에는 몇 걸음씩 걸을 수 있었는데 나중에는 남녀 구분 없이 모든 사람이 몸을 밀착한 채 끝이 어딘지도 모르는 곳을 향해 반 발자국씩 밀려가는 형국이 지속됐다. 그런 모습을 재미있어 하다가도 반 시간을 그렇게 밀리다보니 어떻게든 이곳을 벗어나고픈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1,000m 넘는 봉우리가 무려 3개
황산에는 1,000m가 넘는 봉우리가 무려 3개나 있는데 이중 최고봉이 연화봉(1,864m), 가장 평탄한 광명정(1,840m), 가장 험한 것이 천도봉(1,810m)이다.
 황산의 최고봉이 연화봉이니 황산은 곧 꽤 높은 산이다. 모두 화강암으로 돼있어 발로 딛는 것도 돌, 손으로 짚는 곳도 돌, 건너다 보이는 능선도 돌, 그 너머 다른 능선도 돌, 아찔한 벼랑 아래도 돌, 모두가 돌산이다. 몇 발자욱만 옮기면 또 다른 모습으로 보이니 묘하다.
 

 황산은 돌산이라 환경이 깨끗해 벌레 종류가 서식하지 않아 새가 안 산다고 했다. 너무 맑은 물에는 물고기가 못 살듯이.
 그러나 소나무 외에 잡목도 더러 있어 하산길에 보니 어느 지점에선 새소리도 들렸다.
 뒤이어 찾은 곳은 황산의 최고봉인 연화봉. 연화봉 난간에는 수많은 자물쇠들이 걸려있었다. 일명 사랑의 자물쇠로 연인이 사랑맹세를 한 후 사랑이 풀리지 않게 열쇠는 절벽 아래로 버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녹슨 자물쇠 중에는 스스로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벌어진 것도 있었다. 그 주인들의 사랑도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했던 것일까.
 

#"황산을 오를 땐 타인, 내려올 땐 친구"
그리고 어느 덧 하산 길이었다.
 '황산을 오를 땐 타인이고 내려올 땐 친구'라는 중국 유명광고의 카피는 그만큼 황산 오르기가 어렵다는 뜻을 보여준다.
 실제 황산에 와보니 황산의 산세는 설악산을 두 개쯤 겹쳐놓은 듯 했고 그런 곳을 끝까지 오르다보니 정상에 다다랐을 때쯤엔 함께 오른 이들과 마치 군대 동기처럼 역경을 함께 헤쳐 온 친구가 된 느낌이었다.
 케이블카가 없었다면 도무지 엄두조차 나지 않을 만큼 고된 산행이었던지라 내려오는 내내 다리가 풀리고 어제의 후유증으로 온몸이 욱신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험난한 길이지만 지금도 많은 이들이 중국의 백미인 황산을 오른다.
 이는 깎아지른 산 봉우리 사이로 자연의 선경이 빚어낸 아름다움을 보기 위함도 있겠지만 인간의 두 발로는 도저히 쉽게 넘볼 수 없는 자연의 위대함 앞에 절로 겸허해지고 보다 인간다운 모습에 다가서기 위함이 아닐까란 생각을 하며 이틀간의 황산기행에 마침표를 찍었다. 글·사진=최창환기자 c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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