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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백명에 달하는 남부서 경찰관들에게 열정적으로 호신술, 체포술을 교육시키는 합기도 공인 7단의 이장걸 교관. 평소 겸손하고 따뜻한 마음을 갖춘 그는 지역민들에게는 동네 지킴이로 제자들에게 인생의 롤모델이 되고 있다.

150여명의 경찰관이 일제히 정면에 눈을 붙박은 채 동작 하나라도 놓칠세라 진지한 눈빛으로 앞을 주시하며 그에 따라 몸을 움직인다.

이들의 눈길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이장걸(50) 남부서 무도지도관(대한합기도협회 울산협회 사무국장, 합기도 승단 심사위원, 신세계안과 전무이사)이 다른 지도관과 시연하고 있는 범죄현장의 한 장면. 칼을 빼든 범인이 경찰의 배를 겨냥해 찌르고 들어온다. 그러자 경찰관이 침착하게 우선 찌르고 들어오는 손을 두 손으로 잡아 아래로 향하게 한 후 막는다. 그리고 곧 범인이 반격할 틈도 없이 잡은 범인의 팔을 한 바퀴 꺾으면서 동시에 범인을 바닥에 매친다. 범인은 벌러덩 넘어지고 만다. 박수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이곳에서는 이렇게 매달 두 번씩 지구대 경찰관들을 대상으로 한 무도지도관 이장걸씨와 제자 이재근씨가 직접 지도하는 범죄예방술, 호신술 등의 무도 수업이 이뤄진다.

이 씨는 2008년 이갑형 남부서장이 지구대 경찰도 체포술과 호신술을 적극적으로 배워야한다는 지침을 내린 뒤 무도지도관으로 위촉되면서 남부서와 인연을 맺게 됐다. 이후 몇 백명에 달하는 남부서 경찰관들에게 합기도, 호신술, 검도, 태권도 등의 무술을 열성적으로 가르치며 무술의 중요성을 전파하고 있다.

2008년 남부서와 인연 각종 무도전파
열심히 하고 만족하는 모습보면 뿌듯
청소년선도·도시락 배달 등 나눔봉사
자율방범대 활동 인정 감사패 수상도

# 현장 사용가능한 기술 교육 반응 좋아
합기도 공인 7단의 유단자인 그이지만 그의 수업은 단순히 합기도 등을 가르쳐 유단자를 배출하는 게 목표는 아니다.
 그보단 실제 경찰관들이 위험한 사건현장에서 어떻게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가령 범인이 뒤에서 목을 조른다거나 칼을 빼든 범인을 만났다던지 하는 위험한 상황부터 제복이 잡혔을 때 빠져나오는 기술, 맨 손으로 손이 잡혔을 때 꺾는 방법 등 다양한 상황에서 대처할 수 있는 호신술과 범죄예방술을 적극적으로 지도한다. 
 때문에 경찰관들 반응도 좋다. 이 수업 때문에 많은 지구대 경찰들이 알고 싶었던 실전기술들을 한 수 한 수 무료로 배우니 참 기뻐한단다. 그의 합기도 수업에 만족감을 느낀 경찰중에는 자신이 근무하는 지구대 근처의 잘 가르치는 합기도장을 소개해 달라며 전화문의를 해온 적도 많았다고. 경찰관들이 기뻐하는 이 모습은 그에게는 곧 가장 보람찬 순간이다.
 힘든 점은 없냐는 질문에 그는 "물론 경찰도 사람이다 보니 운동신경이 나쁜 이들이 있어 힘들기도 하다"(웃음)며 "그렇지만 다들 열심히 하고 내가 가르친 내용들을 만족해하니 그것만으로 뿌듯하다"고 말했다.
 수업이 끝나고 온 몸에 땀이 흐르고 힘은 들어도 끝마칠 때 들려오는 남부서 경찰들의 씩씩한 "고맙습니다"는 인사를 들으면 가슴팍이 그것이 참 뿌듯해진다는 이 교관. 때문에 남부서 수업이 있는 날이면 그곳에 가는 발걸음에 절로 힘이 들어간단다.
 

   
▲ 남부경찰서 이갑형서장이 이장걸 교관에게 무도지도관 위촉장을 전달하고 있다.

# 90년대 전성기에 비하면 한산해진 무도장
그가 처음 무도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중3때. 당시 태권도 승단 심사위원이던 외삼촌이 폼을 재며 태권도를 하는 것이 멋있어 태권도로 운동을 시작한 그는 1년 후 합기도에 입문해 날로 실력을 닦았다. 원래 운동신경이 좋았던 그는 힘은 들었지만 비교적 순조로운 출발을 했다. 하지만 운동을 하는 것이 지금처럼 자신의 재능을 개발하는 것으로 인식되지 않았던 당시 그의 부모님은 그가 운동에 전념하겠다고 하자 강한 반대를 했다. 그러자 이 교관은 이때부터 부모님에게는 거짓말을 하고 구역전시장 2층에 있던 합기도 경남본관 천지관을 제 집 드나들 듯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고1때 부터는 천지관에서 본격적으로 운동을 했는데 뒤로 갈수록 군기가 엄청났습니다. 고2때 겨울인가, 특수훈련부에서 훈련을 시작했는데 매 운동 시간마다 어찌나 힘들던지 눈물이 다 날 정도였어요. 그래도 그 시간을 버티며 무도인으로써 중요한 끈기를 배웠지요"
 그의 이런 열정에 호랑이 아버지마저 결국 손을 들었고 이후 본격적인 운동의 길을 걸었다. 이후 부평경찰종합학교에서 조교로 활동하다 입대 시기가 되자 의경 활동을 했다. 전두환 前대통령 시절, 마산 동부경찰서로 발령을 받은 그는 김영삼 前대통령이 주도한 대모 등  각종 대모진압에 나선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제대를 하고 다시 합기도수련관에 돌아와 사범생활을 하며 자신의 합기도관도 열었다. 한창 태권도, 합기도 열풍이 분 90년대 초만 해도 배우는 이들이 많아 재미도 봤다. 그가 가르치는 합기도장에도 학생이 100여명이 넘을 때가 많았지만 현재는 그 인원이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합기도장이 수두룩해졌다며 씁쓸히 말을 맺었다.

# 동네 지킴이 역할도
사실 그는 오랜 자율방범대 생활로도 유명하다. 어릴 때부터 의협심이 강했던 그는 90년대 초부터 마음 맞는 이들과 자율방범대 일을 시작했다. 2005년에는 남부 자율방법연합회장을 맡았다. 오랜 활동으로 동네에선 그를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고 봉사공로도 인정받아 2007년에는 박맹우시장상, 2009년 조현오청장상, 감사장 등을 수상했다.
 그런 점에서 그는 특별한 어른이다. 동네에서 청소년들이 담배를 피우거나 나쁜 행동을 했을 때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그런 아이들은 체육관으로 데려와 기합을 주거나 혼내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한 뒤 돌아가게 했다.
 동네 각지에 온정의 손길도 펼쳤다. 그는 자율방범대 동료들이 집안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 소식을 전해주면 행여 아이들이 자존심이 상할까봐 그 집 어른들을 찾아가 미리 집에서 회비를 낸 것처럼 말을 맞추고 애들을 가르친 적도 수두루했다. 옥동성당을 다니며 매달 독거노인 도시락 배달을 한 지만 벌써 13년째다.

# 청소년 몸이 바로 서야 정신도 건강
때문에 무도를 가르칠 때도 단순히 기량을 연마하는 것보다는 인간으로서 예의를 알아야한다고 강조한다.
 그에게 무도 지도는 "인간으로서의 예의범절을 갖추게 하도록 교육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하고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줘야 하는 것이 무도"라며 스포츠가 아닌, 지면서 이기는 무도 합기도를 가르치려고 노력해왔다고 했다.
 그런 점에서 그가 가장 아쉽게 여기는 것은 요즘 부모들이 오로지 공부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그는 "요즘 부모들은 아이에게 힘든 것을 안 시키려하고 부모의 기대와 욕심만 채우는 경우가 많은데 우선 아이들의 체력과 건강이 최우선이 돼야한다는 것은 변치않는 사실"이라며 "합기도나 태권도 등 운동을 통해 몸이 먼저 바르게 서야 정신도 바로 서고 그를 기본으로 지식을 채우는 공부를 해야 본인도 바로 서고, 또 그런 이들이 많아져야 이 사회도 제대로 갈 수 있는 것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무도를 통해 자신을 지키는 법부터 사람으로서 도리와 예의를 알게 한다는 그의 교육철학이 새삼 마음에 와 닿는 순간이었다.

 

[제자 이재근사범이 말하는 이장걸 교관]

"해답을 주기보다 스스로 찾을 수 있는 기회 준 인생 롤 모델"

   
 


고3때부터 이 교관과 사제의 인연을 맺어오고 있다는 이재근 사범(38·구영리 천지관 문무도장 운영·사진)은 이 교관을 외모답지 않게 '자상하고 부드러운 스승'으로 기억했다.
 그는 "보통 체육하는 사람들의 특성상 일방적으로 훈련시키고 앞으로 나갈 방향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선생님은 달랐다"며 "작은 일을 결정할 때도 제자들의 의견을 존중해줬고 지시를 내리거나 무조건 답을 제시해주기보다는 제자들 스스로 답을 찾아낼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예의를 제대로 갖추지 않거나 연습을 게을리 할때는 또 호랑이 선생으로 변신하기 일쑤였다. 이 사범은 그렇게 무서울 땐 무섭지만 평소 겸손하고 추석 등 명절 때면 오히려 제자들에게 선물을 줄 정도로 넓은 마음을 보여준 스승이었기 때문에 많은 제자들이 그를 롤모델로 삼곤 했다며 말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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