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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양남 주상절리 파도소리길은 3년전 군부대 철수이후 새롭게 조성된 길로 해안가를 따라  1.7㎞에 걸쳐 펼쳐지는 주상절리들을 찾아보는 재미를 선사한다.  사진은 하서리 누워있는 절리.

# 전세계  3곳뿐인 누워있는 주상절리
눈부신 햇살이 내리 쬐던 7월 어느 좋은 날. 이 곳, 주상절리 파도소리길과의 만남은 우연히 이뤄졌다.  울산 북구 강동지역을 맥 없이 직진하다 도착한 곳이 주상절리 파도소리길.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자동차가 멈춘 곳은 경주 하서리의 한 포구였다. 시원한 바닷바람이나 쐬고 갈까 하는 생각에 해변을 걷다 다다른 곳이 이 곳이었다.
 아르키메데스가 욕조에서 '유레카!'하고 아이디어를 생각해 낸 것 만큼이나, 이 우발적인 발견은 참으로 가슴 설레게 했다.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나만 알고 있는 비밀의 정원을 가지게 된 것처럼.

   
 
 우연히 찾은 비밀의 화원은 이날 특히 인적이 드물어 더욱 신비로웠다. 입구부터가 다른 모습이다. 골목 귀퉁이를 질러 나무데크 길을 걷다보면 해안가의 에매랄드 빛 바다와는 또 다른 검푸른 바다를 볼 수 있다. 여기서부터가 주상절리 파도소리길의 시작이다.
 문득, 사진을 찍고 싶어졌다. 하늘은 충분히 푸르고, 바다도 깊은 푸르름을 자랑하는데 이 보다 더 좋은 배경이 있을까. 찰칵.찰칵. 사진을 찍어대니 "무슨 사진을 그렇게 찍냐"며 한 주민이 말을 건낸다. 태연한 듯 말하지만, '역시 주상절리를 낀 마을 답지?' 하며 자랑하는 듯 보였다.
 천천히 데크길을 10분 정도 걷고, 작은 옥수수 밭을 지나면 가장 먼저  '누워있는 주상절리'를 만날 수 있다.
 누워있는 주상절리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보기 드물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외에는 영국과 호주, 딱 두 곳에서 누워있는 주상절리를 볼 수 있는데, 이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을 자랑한다는 후문. 직접 확인해보지 않아 확신할 수는 없지만, 여기 이 주상절리 하나만 봐도 그 가치가 얼마나 높은지 예상할 수 있었다.
 왠지 이 곳에서는 한 숨 돌리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유있게 주상절리의 경관을 즐기라는 듯, 친절하게도 소박한 정자 하나가 마련돼 있었다. 얼마 걷지 않았는데도 얼굴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다. 그러나 불쾌함을 부르는 땀은 아니다. 선선한 바람에 땀을 식히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기분 좋은 웃음이 나온다.
 나만의 비밀장소로 선택된 이 곳에 있는 동안은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으로 사용 하고 싶어졌다. 좋은 사람의 두 눈에도 이 멋진 주상절리의 경관을 담아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이날은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소리만 듣고, 마음 가는대로 걸어보기로 한다.
 
   
 
# 3년전 군부대 철수로 일반인에 개방
경북 경주시 양남면 하서항에서 읍천항에 이르는 약 1.7km 구간의 주상절리 파도소리길은 다양한 모양의 주상절리가 집중적으로 형성 돼 있다. 경사도 완만해 요즘 유행하는 트레킹을 하기에도 적당한 코스. 불과 몇 년전만 해도 일반인들에게 전혀 공개되지 않았다. 해병대가 근무하던 군사시설이었기 때문이다. 사진가들과 일부 학자들만이 어렵게 방문했을 뿐 관광객들의 방문은 허용되지 않았다. 덕분에 주상절리는 자연경관 그대로 잘 보전돼 있어 학술적, 관광산업적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주상절리가 일반인에게 공개된 때는 군부대가 철수하기 시작한 지난 2009년부터다. 개방된지 약 4년이 지난 지금에도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지난 6월에는 문화재청의 천연기념물로도 지정되면서 많은 관광객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주상절리는 현무암질 용암류와 같은 분출암이나 판입암에 발달하는 기둥 모양으로 평행한 암석을 말한다. 경주 읍천 앞바다에는 마그마가 다양한 방향으로 냉각되면서 수평 방향의 부채꼴 주상절리가 이뤄졌다.
 경주시는 이 곳을 군사 해양관광 테마공원으로 조성, 경주시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발전시키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주상절리 파도소리길'은 테마공원 1단계 사업 마무리 되면서 지난 6월 개통한 것이다. 테마공원 조성에 완전히 이르기 전인 현재에도 많은 관광객들이 이 곳을 찾고 있어 관광지로서의 역할을 다 하고 있다.

# 절리길의 백미 부채꼴 절리
   
 
주상절리하면, 대표적으로 제주도의 주상절리를 떠올리지만, 양남의 주상절리는 제주도와는 또 다른 매력을 갖고 있었다.
 제주도 주상절리는  크기가 30~40m에 이르는 거대함을 자랑하지만 수직 형태의 주상절리가 전부다.

 그러나, 양남 주상절리는  마치 일부러 수집이라도 한 듯, 수직 모양 뿐만 아니라 부채꼴 주상절리, 누워있는 주상절리, 비스듬히 솟아 있는 주상절리 등 갖가지 형태로 이뤄져 있었다.
 이날 기자를 반하게 한 것은 양남 주상절리군의 대표적인 작품, 부채꼴 주상절리였다.
 폐쇄된 초소 앞에서 바라다 본 부채꼴 주상절리는 바다 한 가운데 핀 해국과 같아 보였다. 초소 앞은 다른 지점보다 다소 경사가 높아 '포토존'으로 입소문이 퍼져 있었다.
 하얗게 밀려오는 파도가 조심스레 해안을 감싸고 나니, 수면위로 활짝 핀 주상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자연스레 말이 없어진다. 화형 주상절리가 모습을 드러낸 이 순간, 주변에는 정적이 흘렀다. 한 마디라도 꺼내면 주상절리는 모습을 감출 것 같았다.

   
 
 이 주상절리를 보기 위해서는 출렁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한 발짝 뗄 때마다 살짝 살짝 흔들리는 다리를 건너는 것도 하나의 묘미다.
 관광객 모두가 반한 이 모습을 카메라에 가득 담고 발걸음을 옮겼다. 입구에서부터 1시간 30분여를 걸었더니 조금은 지쳐있었다. '다시 돌아갈까' 생각도 했지만, 이왕 온 김에 트레킹 코스를 완주해야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다행히도 오기는 금방 사라졌다. 10분을 걸으니 산책코스의 끝. 읍천항이 보인다. 파란 하늘 아래 빨간 등대가 보색을 이뤄 더욱 눈에 띈다.
 햇살이 뜨거운 날이라 그런지, 그늘이 없는 등대 주변은 한산했다. 등대 하나만을 바라보며 천천히 걷고 있자니, 길이 되든, 삶이 되든 흐트러진 방향을 잡아주는 것 같아서 왠지 안심이 됐다.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을 마무리하는 길이다.
 '철썩 철썩'. 방파제를 간지럽히는 파도소리가 들려왔다. 1시간 여를 걸어오면서 주상절리와 맑은 바다의 모습만 구경하느라 미처 듣지 못한 주상절리 파도소리길의 또 다른 상징이다.
 눈을 살며시 감고, 걸었던 산책 코스를 다시 상상해 본다. 시원한 바람이 가슴 속 깊은 곳까지 스며 들어오자, 주상절리 파도소리길을 처음 만났던 그 설레임이 다시 떠올랐다. 언젠가, 이 곳은 관광명소로 떠올라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겠지만, 언제까지나 이 곳은 비밀의 화원 같은 장소로 남아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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