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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가는 세상이다. 백주 대낮에 칼부림이 벌어지고 뜬금없이 폭행을 당한다. 유용한 족쇄라 믿었던 전자발찌는 장식용 싸구려 팔찌마냥 효용성이 떨어졌다. 급기야 소주 한 병에 발찌를 망각한 변태가 30대 주부를 난자했다. 아내 잃은 남편의 오열이 조간신문에 시커먼 눈물방울로 찍할 무렵, 바다 건너 일본의 새파란 정치인들이 오장육부를 뒤집는 말을 쏟아낸다. 성도착증에 묻지마 폭력도 변태지만 일본의 최근 행태도 변태의 전형이다.
 

 말이 나온 김에 일본의 차세대 지도자들이 가진 역사인식 문제를 들여다보자. 동아시아에서 8월은 뜨겁다. 비단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 땅을 밟아서가 아니라 이 시기면 동아시아를 둘러싼 한국과 중국 대만과 일본은 외교무대에서 언제나 살얼음판이다. 자칫 한마디 말을 잘못 꺼내면 묵은 감정이 한꺼번에 먼지를 털고 나와 엄청난 파괴력으로 굉음을 낸다. 한 세기 전부터 시작된 일본의 제국주의 야욕이 만든 과거다. 그 과거의 패악이 가라앉을 만하면 불쑥 머리를 내미는 시기가 바로 8월이다.
 

 동아시아 정세는 현재 혹독한 겨울이다. 한 세기 전인 19세기말과 비교할 만큼 위기감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국가주의와 민족주의, 영토주의가 묘하게 결합해 런던 올림픽 오심의 현장에 있는 것처럼 심장을 뛰게 한다. 물론 전범국가인 일본이 문제의 핵심이다. 자신들의 왕이 항복을 발표한 8월, 그들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허리를 고추 세우고 목젖에 힘을 준다. '조센진'이라는 금기어가 살아나고 '천황만세'가 기지개를 켰다. 우라질, 일본 열도에서는 지금 시간은 거꾸로 흐르고 있다.
 

 첫 타석에 등장한 선수가 오사카 시장이다. 재일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사는 오사카에서 현직 시장으로 일하는 하시모토 도루는 "(옛 일본군) 위안부가 (일본)군에 폭행·협박을 당해서 끌려갔다는 증거는 없다"고 말했다. 하시모토는 1969년생으로 전후세대 이후 일본이 패전국의 상처에서 조금씩 벗어날 시기에 태어난 신세대 지도자다.
 

 두 번째 타석에 선 선수는 더 가관이다. 일본의 차기 총리 1순위로 꼽히는 민주당 마에하라 세이지 정조회장은 뜬금없이 "덴노(天皇·일왕)는 국가원수"라고 주장했다. 덴노는 국가원수이고 그 원수에게 '조건을 붙여 와도 좋다'고 말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무례라는 이야기다. 평소에 스스로를 친한파로 이야기 해온 마에하라가 일왕 문제를 두고 시대착오적인 발언을 하는 것이 오늘의 일본이다. 전후세대들의 역사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이다.
 

 일본은 전후세대에게 국가주의를 유난히 강조했다. 패전국의 멍에를 딛고 세계 속의 일본을 부각하기 위해 스스로의 과거를 덮었고 분칠했다. 마치 신분상승을 위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과거의 얼굴을 칼로 긋고 살을 파내 성형의 고통을 이겨내는 성형미인처럼 일본은 그렇게 스스로를 재구성했다. 그 결과가 오늘이다. 일본인 스스로는 2차 세계대전을 포함한 과거 전쟁에 대한 책임이 없다는 인식으로 굳어져 있다.
 

 몰락해 가는 민주당 정권의 노다 일본 총리는 연일 때를 만났다는 분위기다. 만만한 한국을 바탕에 깔고 있기에 다오위다오(일본식 센카쿠)를 두고 일본을 비난하는 중국정부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한국 대통령을 공격한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에 보내는 서한문을 이 대통령이 받아보기 전에 언론에 공개하는 결례도 마다하지 않았다.
 

   우익세력 집결을 알린 그의 강경발언에 조무래기 정치인들이 입방아로 응대하자 힘이 났다. 11월 총선거가 가능하단다. 이 정도 분위기면 바닥으로 떨어진 내각 지지율도 오를 것이고 잘하면 정권유지도 가능하다는 계산이다. 왜곡된 역사인식은 일본 극우파들이 수십년간 펼친 왜곡된 역사 교육의 결과다. 왜곡된 가치가 변태를 양산하듯 왜곡된 역사교육이 오늘의 일본에서 변태 정치인들이 정상적인 대접을 받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미성숙한 사회는 곳곳에서 폭발음이 들린다. 남의 탓만 할 일도 아니다. 우리를 보자. 겨울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은 극명한 양극으로 갈렸다. 어정쩡한 보수와 모호한 진보가 판을 차리니 목표는 오로지 청와대 입성이다. 다른 문제는 별로 관심사가 아니다. 자국의 대통령이 제나라 땅을 찾아도 찬반이 엇갈린다. 정작 왜놈근성을 못 버린 일본의 정치지도자들에겐 목청을 가라앉히고 상대당의 시빗거리에만 혈안이다. 말뚝을 박아도 '천황만세'를 불러도 득표계산만 하고 있다. 전직 대통령의 영전에 꽃 한 송이 올리는 것도 쌍심지를 켜면서 바다 건너 일은 불구경이다.
 

 왜곡된 역사 인식은 남의 일만이 아니다. 과거에 대한 분명한 인식은 오늘을 제대로 서게 하고 내일의 방향을 잡게 한다. 변태가 판을 치는 사회가 어느 날 불쑥 찾아온 게 아니라 무수한 왜곡이 만든 결과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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