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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근대미술, 특히 서양미술 수용기의 가장 중요한 미술관으로 꼽히는 오하라미술관은 뜻밖에도 도쿄나 오사카 같은 대도시가 아닌 한적한 일본 남쪽 작은 항구도시 구라시키에 있었다.
 

 오하라미술관은 구라시키의 대부호인 오하라 마고사부로가 설립한 일본 최초의 사립 서양미술관으로 주변은 오랜 주택과 작은 개천이 어우러진 미관(美觀)지구다. 나오시마 이우환미술관이 이번 여행의 목적이었던 내게 '오하라'는 뜻밖의 행운이었다. 자유여행을 준비하며 하루를 구라시키 미관지구내의 미술관 3곳을 볼 생각이었지만 그중 '오하라'만을 봤다. 그만큼 '오하라'는 큰 매력을 선사했다. 작은 마을의 멋진 미술관에 놀라지 않을수 없었고, 본관 입구의 로댕 조각상이 무더위와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도 이방인을 반기는듯 했다.
 

 세계적 명성의 미술관인 '오하라'에는 서양화, 일본 근현대미술, 동양고대미술, 공예작품들이 광범위하게 전시돼있다. 엘 그레코, 로댕, 고갱, 마네, 모네, 마티스, 르누아르, 미로, 루오, 칸딘스키, 피카소 등 그야말로 '미술 교과서'를 보는 느낌이었다. '오하라'는 이처럼 엄청난 작품수와 질을 가진 수준높은 컬렉션으로 많은 관람객을 놀라게 한다.
 

 어떤 경로로 이렇게 많은 작품들을 수집했을까? 궁금했다.
 자료에 의하면 구라시키를 기반으로 돈을 모은 사업가 오하라 마구사부로와 한 화가 친구의 우정의 결실이 오하라미술관이었다.
 

 오하라는 어느 날 평소 후원해 온 화가 친구 고지마 도라지로에게 서양미술 중심의 미술관을 세울 계획을 말한다. 일본미술 수집가였던 그는 친한 친구였던 고지마의 재능과 안목을 누구보다 신뢰하고 있었고, 세 번에 걸쳐 고지마를 유럽에 가서 공부하도록 주선했을 뿐 아니라 그가 유럽에 체류하는 동안 물심양면으로 후원했다. 또 자신의 안목으로 당대의 화가와 조각가의 작품을 수집하도록 부탁한다.
 

 그렇게 유럽에 머물던 고지마는 일본 우끼요에 판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모네와의 만남을 통해 다른 인상파화가들을 소개받으며 작품을 수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은 일본 근현대 작가들과 서양화가들의 작품부터 중국미술, 멀리는 이집트 미술품 수집에까지 열정을 기울여 1930년 드디어 오하라미술관이 극동의 작은 항구도시에 세워진다. 훗날 오하라는 1929년 사망한 고지마를 위한 전시를 몇 차례씩 기획해 헌증했고 고지마는 자신의 작품과 수집해온 최고의 작품들로 그에 답했다고 한다. 아름다운 우정이다. 대영박물관이나 루브르미술관에 견줄 수 있는 컬렉션의 폭은 두 사람의 우정만큼이나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오하라'를 보며, 나는 울산을 생각했다. 한창 추진중에 있는 시립미술관의 모습이 스쳤기 때문이다. '오하라'는 구라시키의 미관거리에 위치해 있다. 맑은 운하를 끼고 있는 미관지구는 서양미술중심 미술관인 '오하라'를 일본의 정서속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내리게 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순간, 울산의 모습이 오버랩되어 나의 시선을 울산으로 보내고 있었다. 뜻밖에도 중구의 울산초등학교 자리에 객사 복원과 함께 들어설 미술관의 모습이 그려지는 것이 아닌가? '오하라'는 큰 규모를 자랑하는 미술관이 아니다. 하지만 그리스 양식의 본관과 현대식으로 지어진 분관, 동양관과 공예관의 조화로움이 아름다운 미술관이다. 오하라에서 내가 주목한 것은 바로 '조화'였다. 주변의 경관과 너무도 자연스럽게 어울어진 공간에 감탄했다.
 

 며칠 전, 울산시립미술관 부지가 두 곳으로 압축 발표됐다. 울산의 역사와 자연 그리고 도심과 조화를 이룬 울산을 닮은 미술관이 세워졌으면 한다. 나오시마 이우환미술관의 첫인상이 그를 닮은 맑은 미소와 같았다. 이 또한 조화로움이 만들어 낸 것이라 믿는다. '오하라'가 처음 시작했을 때 미술관을 사업수단으로 여기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수많은 관람객을 끌어들이는 구라시키의 핵심이 된 것처럼 울산시립미술관 또한 울산을 찾는 국내외 관광객에게 꼭 들르고 싶은 곳이 되어 관광자원 역할도 톡톡히 해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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