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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껏 고기를 먹으면서 미안한 마음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배가 고파 먹고, 맛있어서 먹고, 먹지 않고 살 수는 없기에 그건 당연했다. 그런데 TV에서 동물 다큐멘타리를 보거나 관련 뉴스를 보면서 인간들이 그동안 얼마나 죄를 짓고 사는지 알아가게 되었다.

 좁은 곳에서 스트레스를 받아 서로 쪼아 상처를 입히거나 죽일까봐 태어나면서부터 인간들에 의해 손톱깎이로 부리를 잘리고 일어서거나 돌아앉지도 못하는 A4 박스 크기의 철망 속에 꼼짝없이 갇혀서 앞으로는 먹이만 먹고 뒤로는 알을 놓아야 하는 기업형 양계장의 닭들. 격자처럼 쌓아올린 철망 우리에서 다른 닭이 배설하는 똥과 오줌을 피할 수 없어 그 독한 오물에 눈이 멀고 털이 빠진 비참하기 그지없는 장면이 일상으로 벌어지고 있다. 정상적인 닭이 일 년에 100여개의 알을 낳는데 비해 이 공장의 닭들은 1년에 250~320개의 알을 낳고 엉덩이는 늘 퉁퉁 부어있다. 그것은 먹이를 조절하고 밤에도 낮처럼 환하게 해줌으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게 하여 산란을 유도한 것이기 때문이다. 값비싼 수정란을 생산키 위해서는 암수 합방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수컷의 정액을 훑어내어 수시 주사기로 강제 주입을 시킨다고 한다. 더욱이 고기로 먹는 육계는 어떠한가? 정상적인 닭의 수명은 15년~30년이지만 알에서 태어난지 겨우 4주~8주에 영계로, 8주~10주이면 통닭구이로 인간들의 입을 즐겁게 하기 위해 죽임을 당한다. 닭들에겐 삶이 없다. 오로지 인간을 위해 소비되는 소모품이나 기계에 불과한 것이다.

 돼지 역시 마찬가지이다. 서로 꼬리를 물어뜯을까봐 태어나자마자 꼬리를 잘라버리고 암퇘지는 겨우 60cm인 임신틀에 갇혀 3년 동안 임신과 출산만을 반복한다. 그러다 더 이상 새끼를 낳지 못하면 도축장에 가서 죽임을 당하고 사람의 입으로 들어간다. 그기다 수퇘지들은 더 좋은 맛을 내기 위해 연필깎는 칼로 마취도 안한 채 생식기를 잘라버린다. 사람은 아프지만 돼지는 아프지 않다고? 너무 인간 중심의 답변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동물들의 원초적인 본능이 안중에 있을 리도 없을 것이고 오로지 돈벌이의 수단일 뿐이다.
 죽을 때 까지 수 차례 온 몸의 털을 강제로 뽑하는 거위, 생산 원가에 미치지 못하다고 사료를 주지 않고 굶겨 죽이는 송아지도 그 고통은 마찬가지다.
 맛있게 먹은 양념치킨이, 먹기 좋게 포장되어 나오는 고기와 달걀에 이처럼 공장식 축산으로 생산되는 동물들의 고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건 동물의 운명이고 인간은 무엇을 어떤 방법으로 먹든 다 용서되는 것이다?

 어떻게 키우던 간에, 닭이나 돼지 같은 동물들을 대량 생산하여 누구나 저렴하게 먹을 수 있어서 옛날보다 훨씬 식단이 풍성해졌다. 덕 에 사람들의 체격도 엄청 좋아졌고 과다 영양으로 살을 빼기 위해 또 다른 노력을 쏟아야 하는 경우까지 생긴 정도가 되었으니 생존을 위해서만 먹는 것이 아니라 맛을 즐기는 것이기에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저렴한 먹거리 제공을 위해 동물들의 엄청난 희생이 따르는 것이다.
 반려동물에 대한 학대가 여론화 되고 동물보호단체가 여러모로 활동하고 있지만 식용으로 쓰이는 동물에 대한 학대는 언급이 없다. 작은 움직임이지만 착한 음식 먹기 운동이 겨우 인터넷 한 켠을 오르락 할 뿐이다.

 이제 와 모든 사람이 채식만 할 수는 없겠지만 착하게 먹는 방법은 없을까?  닭은 닭답게, 돼지는 돼지답게 키워 제 값을 받고 팔고, 소비자는 착하게 조금씩만 먹고 착한 몸을 만들어 가면 안될까? 비록 인간의 음식으로 제공되는 가축일지라도 넓은 축사에 방사하여 암수도 만나게 해 주고 사는 동안은 스트레스를 덜 받도록 하여 죽음까지도 순간적으로 고통없이 했으면 좋겠다. 고통과 악에 받쳐 죽어간 성난 고기들을 먹으면서 그 나쁜 氣가 사람 몸에 전달되어 현대인들이 자꾸만 포악해져가는 것은 아닐까? 돈만 지불하면 죄책감없이 당연히 먹었던 치킨과 삼겹살을 대하면서 '착하게 먹자'를 자꾸만 되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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