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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지난해 총 사망자수가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대라는 보도가 있었다. 암 사망률이 7년 만에 처음으로 줄어든 가운데 지난 10년간 자살로 인한 사망률은 무려 119.9% 급증했다니 놀랍다. 하루 평균 43.6명이 자살하는 대한민국이지만 정치판은 내일을 이야기 하고 저녁이 있는 삶을 이야기 한다. 부모덕에 딱지 아파트에 살았던 인물이 서민의 고통을 이야기 하고 아버지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한 딸은 언제 어디서나 '역사의 평가'를 다소곳하게 외친다. 우리가 어쩌다 자살공화국이 됐나 싶지만 어느새 우리는 이만큼 와 버렸다.

 영화 이야기를 해보자. 미국에서 이름난 수재들이 모인다는 웰튼 고등학교 이야기다. 이 학교로 전학 온 토드는 다른 신입생들과 함께 들뜬 마음으로 학교생활을 시작한다. 문화적 충격처럼 대면하는 영어교사 키팅은 특유의 카리스마로 학생들을 사로잡았다. 닐, 녹스, 토드 등 7명의 학생들은 키팅으로부터 오래전 전설처럼 떠돌던 '죽은 시인의 사회'의 실제를 듣고 스스로 전설이 되고자 한다. 학교 뒷산 동굴에서 시를 낭독하면서 잃었던 자아를 찾아가던 그들의 첫 갈등은 꿈이었다. 연극을 하고 싶었던 닐은 의사가 될 것을 강요하는 아버지와 부딪히고 꿈이 꺾인 닐은 결국 아버지의 권총으로 자살한다.

 닐의 자살이 불러온 파문은 컸다. 자살의 배후를 뒤지던 학교는 사라졌던 서클 '죽은 시인의 사회'를 발견하고 그 뒷배가 키팅이라고 손가락질 한다. 학교를 떠나는 키팅 앞에 제자들은 하나같이 책상 위로 올라가 "오 캡틴, 나의 캡틴"을 외친다. 영화 이야기지만 자살의 문제에 대한 명쾌한 분석이 배경음악으로 흐르는 작품이다. 미국식 고급공교육을 정면으로 비판한 이 영화는 제도로 인해 우수한 학생이 자살로 내몰리게 되는 현실을 고발한다. 입시현실과 자신의 꿈에서 어떤 것도 선택하지 못하고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은 오늘의 우리 교육 현장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자살이 청소년에게, 그것도 공교육의 문제점에서 기인한다는 논리의 비약을 하자는 것은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자살의 동기와 이를 방관하는 환경이다. 우리 사회에 자살이 급증한 것은 상당부분 방송과 언론이 책임져야할 부분이 있다. 무엇보다 자살은 전염병일 수가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실제 여론조사에서도 유명인사의 자살사건 이후로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는 사람이 상당부분을 차지했다. 베르테르 효과다. 문제는 이를 여과없이 보도하고 속보식 경쟁으로 부풀리는 언론은 우리 사회의 자살을 예방하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방조하거나 부추긴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외국의 경우 1977년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의 죽음 이후 그를 추모하는 자살이 이어졌고, 86년에는 일본 10대의 우상이었던 오카다 유키코가 실연을 비관해 투신하자 2주 동안 31명의 청소년이 뒤를 따랐던 사례가 있다.

 대통령 선거에 나선 이들이 한결같이 주장하는 것은 '국민의 행복'이다. 행복한 국민을 만들기 위해 내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식상하다. 이미 행복하지 못해 죽음을 선택하는 국민이 숱한 판에 국민의 행복을 이야기하면 곤란하다. 문제의 핵심은 치유에 있다. 어디서부터 상처가 났고 그 상처가 곪아 썩어들고 있는지를 제대로 봐야 한다. 볼 수 있어야 치유의 길을 찾을 수 있고 불치병 같은 상처를 어루만질 수 있다. 그래서 보는 것이 중요하다. 제대로 보지 못하면서 미래를 이야기하고 대권을 이야기하면 정말 곤란하다는 이야기다.

 대통령을 지낸 인물이 자살을 한 국가는 중환자다. 자살을 한 전직 대통령의 자발적 선택이라고 강변할지 모르지만 천만에 말씀이다.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는 인물이 한 나라를 5년씩 경영했으니 딱할 노릇이지만 그것도 우리가 선택한 일이다. 그 선택이 가져온 혼란을 불과 얼마전에 겪은 국민들이 다시 한 번 기대를 걸었던 대통령도 혼란의 수습보다 갈등의 확장이라는 중병을 남기고 있다. 자살공화국의 오명은 국민들이 벗어던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한 나라의 리더가 얼마나 중심을 잡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느냐가 유일한 치유책이다. 다만, 과거를 제대로 보고 오늘의 문제를 점검할 줄 아는 인물이라야 그 치유책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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