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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파전으로 맞붙은 올해 대통령 선거가 추석연휴를 분기점으로 중반전에 접어들 태세다. 이번 대선 상황은 마치 2002년 대선을 보는 것처럼 유사한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다. 사람과 주변인물은 바뀌었지만 정치 공학적으로 볼 때 선거판이 흡사하다. 시간여행을 하는 듯 한 대선판세는 흘러가는 모양도 유사하다. 2002년 당시 한나라당은 굳건한 이회창 대세론을 앞세워 정권탈환을 자신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는 부동의 지지율 1위였다. 그것도 그냥 1위가 아니라 모든 후보군과 상당한 격차로 앞서 달렸다. 그 흐름이 뒤바뀐 것은 월드컵이라는 변수가 첫째였고 추석을 고비로 불어닥친 후보단일화 바람이 마침표였다.

 그해 가을, 추석 연휴가 끝나자 민심은 완전히 이회창과 정몽준 후보의 2파전에 여권 후보인 노무현 후보가 뒤를 쫓는 흐름으로 변했다. 당시 노무현의 지지율은 20% 정도였다. 보잘 것 없었지만 판세에서 비중은 절대적이었다. 이회창 후보가 절대로 가질 수 없는 지지 세력을 노무현 후보는 등짐에 지고 정몽준과 이회창 후보의 안방을 공략해 갔다. 추석 민심이 변화와 개혁으로 흐르는 것을 눈치 챈 노무현은 정몽준 후보를 향해 단일화 승부수를 던졌고, 다윗과 골리앗 싸움 같던 후보단일화는 노무현의 승리로 반전드라마를 썼다.

 대세론이 하루아침에 주저앉은 상황은 지금 새누리당과 흡사하다. 데자뷰처럼 재연되는 역사는 새누리당의 악몽이다. 대세론이 필패론으로 뒤바뀐 배경에는 대세론에 취한 이회창 주변의 취기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후보 자신의 용인술과 판단착오가 결정적이었다. 참모들의 과잉충성과 후보의 견고한 이미지, 불통으로 대변되는 고답적인 스타일은 대세론의 헛바람에 더욱 견고해졌다.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불법 대선자금의 마구잡이식 수집과 JP연대론의 역풍이다. 대세론에 취한 이회창 후보는 집안단속을 못했다. 어쩌면 대통령이 된 것이나 다름없는 착각 속에 참모들의 전리품 챙기기를 눈감았는지도 모른다. 가을 바람이 불고, 고향을 다녀온 사람들이 변화를 이야기할 때는 아뿔싸, 이미 때가 늦었다.

 그래서 이번 대선은 추석민심이 더욱 중요해 보인다. 선수도 정해지고 후보마다 색깔과 빛깔이 어느 정도 드러났으니 호불호를 가리는 일만 남았다. 후보의 캠프와 언론은 연일 정책대결을 이야기 하고 정치학자들과 평론가들도 정책 검증을 떠들지만 어디까지나 원론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선거는 정책이 맞붙고 인물은 검증의 시험지를 통과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교과서다. 지금 대선레이스를 펼치는 후보들은 어쩌다 교과서를 들고 화면 앞에 나타나기도 하지만 사실은 교과서에 없는 문제들로 밤을 새운다. 유권자를 움직이는 기술과 흔들리는 표심을 잡는 심리학 강의에 몰두한다.

 대체로 젊은 주자들이 선거에 나선 이번 대선은 역대 어느 대통령 선거보다 국민의 기대치가 높았다. 원칙과 신뢰를 앞세운 박근혜나 깨끗함을 온몸으로 무장한 문재인, 정치의 악성 바이러스를 박멸할 기세인 안철수 모두가 저마다의 장점을 가진 후보들이다. 그런 그들이 80여일 남은 대선을 두고 보여주는 행태는 역대 어느 대선보다 무미건조하고 지루하다.

 우리 정치는 이벤트를 먹고 자란다. 동네 기초의원에 나서는 자나 대통령 자리를 탐하는 자 모두가 한결같이 보고 배운 것은 시장에서 악수하고 소외된 직업군을 찾아 부둥켜안거나 손을 맞잡는 일이다. 섬나라 일본이 유엔 총회에서 독도를 안주머니에 챙기든 말든, 김일성의 손자가 서해안 군부대의 포문을 만지작거리든 말든 관심사가 아니다. 미국이 미사일 사거리를 놓고 이래라 저래라 주문서를 넣어도 남의 일이다. 국론이 갈릴 사안이나 강대국의 눈치를 봐야할 사안 앞에서는 입을 열지 못하는 후보들이 복지는 죽으라 외친다. 그래야 표가 나오고 민심이 움직인다는 착각이다.

 선거판이 2002년의 재판이라는 말은 그래서 유효하다. 변화와 개혁을 외친 10년 전이나 통합과 혁신을 외친 오늘이나 소리는 요란하지만 제목소리는 없다. 그저 대세론을 되찾거나 깨부수고 단일화를 저지하거나 이뤄내기 위해 고향 찾는 이들의 손목을 잡고 눈을 마주치는 일에 집중한다. 멀리 함께 가자는 이는 없고 빨리 같이 가자고 조르는 이만 손을 잡는 선거판이다. 달라지길 바라지만 아직은 그럴 조짐이 없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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