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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주년 민방위대 창설기념일 행사가 지난달 21일 전북 익산시에서 열렸다. 1975년 창설된 민방위는 그동안 나라가 어려움에 처하면 지역의 튼튼한 역군(役軍)으로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해왔다.

민방위대원의 신조(信條) 중에는 '우리는 굳게 뭉쳐 내 마을 내 직장을 지키는 방패가 되고, 나라의 번영과 통일을 이룩하는 초석이 된다'가 있다. 가정과 직장을 지키는 파수꾼이 바로 민방위 대원들이다. 오늘날은 언제 어디서 불의의 재난사고가 발생할지 모른다. 그런 재난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 민방위대가 있는 것이다.
 
행사장에 도착해서 전시장을 돌아보면서 비로소 익산시에는 처음 와 본 것을 알았다. 처음 와 본 곳이지만 낯설지 않은 것은 익산하면 '익산미륵사지석탑'이 머릿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 탑은 절반 이상이 붕괴되어 있는 백제 최대의 절이었던 익산 미륵사터에 있는 탑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탑이다.

지금은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하고 있어 예전의 모습을 볼 수가 없다. 나는 미륵사지 석탑으로 익산을 기억하고 있는데 울산을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은 무엇으로 울산을 기억할까 생각해봤다. 어쩌면 국보 제285호인 '반구대 암각화'가 아닐까.
 
최근 문화부와 관광공사가 여행의 활성화를 기대하기 위해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국내 관광지 99곳'을 선정했는데 울산광역시는 유일하게 '반구대 암각화'만 선정됐다. 울산에도 꼭 가볼 곳이 매우 많은데 한 곳만이 선정이 되어 안타깝다.

그러나 필자를 더욱 더 안타깝게 하는 것은 앞으로 많은 관광객들이 반구대 암각화를 찾아올 것인데 그들은 신석기시대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암각화를  눈으로 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지난 7월에 가 보았을 때 건너편에서 망원경으로 암각화에 있는 고래와 호랑이 등의 그림을 찾아보았지만 아쉽게도 찾을 수 없었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망원경으로 동물을 찾아보는 재미가 솔솔했는데. 어쩔 수 없이 관광안내판을 보고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관광객들은 암각화에 새겨진 그림을 보고 싶어 하는데 정말 큰 일이다. 세계적인 선사시대 바위그림이 있는 반구대암각화 보존방안은 10년이 넘도록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암각화의 높이는 3m, 폭 10m의 수직 바위 면에는 300여점의 각종 그림이 있는데, 여름이면 대곡천 물에 침수가 반복되어 바위에 균열이 발생하고, 물이끼가 끼어 쪼아 새긴 그림들이 크게 훼손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훼손은 더욱 더 빨라지고 있다. 이제 더 이상의 훼손이 없도록 해야 한다.
 
최근 울산공업센터 50주년 기념 드라마인 '메이퀀'의 촬영지로 반구대 암각화 주변이 방송되면서 관광객들이 이곳을 많이 찾을 것인데, 혹시 실망을 하고 가지나 않을까 손님들을 초청하는 주인으로 불안할 따름이다.
 
울산광역시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에 지속적으로 반구대 암각화를 보존하기 위한 건의했지만 아직까지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러는 동안 암각화에 그려져 있는 많은 동물들은 물속에 잠겨 숨을 못 쉬고 질식사(窒息死)하고 있다. 울산하면 생각나는 것이 반구대 암각화인데 우린 그저 지켜만 보고 있어야 할까.
 
물론 많은 분들이 암각화를 살리기 위한 방안을 찾기 위해 현장을 방문했지만 '솔로몬의 지혜'는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어찌해야 할까. 암각화를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물속에 잠기지 않도록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울산시민들의 식수원인 사연댐의 수위를 낮추어야 하는데 이것이 쉽지 않다. 식수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수위를 낮추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울산시는 둑을 쌓아 암각화로 물이 유입되는 것을 막겠다는 방안 제시와 병행해 반구대의 야산에 원형터널을 뚫어 대곡천 물이 반구대에 유입되지 않도록 물길을 돌릴 계획을 세웠지만, 유적지 주변의 경관훼손과 주변의 환경파괴의 발생을 우려해 이 계획은 문화재청의 반발로 시행하지 못하고 있다.
 
문화재청은 오로지 "사연댐의 수위를 낮추는 방법뿐이다"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울산시는 사연댐의 수위의 약화로 식수공급의 차질을 우려해 문화재청의 방안을 수용 못하고 있다. 어느 것이 옳은 방법인지 토론하기보다는 먼저 암각화를 살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것도 빠른 시간 내에 말이다.
 
신석기시대부터 오늘날까지 그 긴 시간동안 잘 보존된 암각화가 우리시대에 와서 크게 훼손이 되어 앞으로 더 이상 암각화를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의 자식들은 아버지 세대를 원망하게 될 것이다.

많은 세월이 흘러도 익산하면 미륵사지석탑이 생각나듯이 울산하면 반구대 암각화가 생각이 나도록 길이길이 반구대 암각화를 보존해야 한다. 그것이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의 의무이다. 마치 민방위대원이 우리 지역과 직장을 튼튼하게 지키듯이 말이다. 익산미륵사지석탑은 현재 보수중이라 조만간 원형에 가까운 탑으로 거듭 태어나지만 반구대 암각화는 지금 이 순간에도 시나브로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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