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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가을, 태풍 '덴빈'과 '볼라벤'에 이어 한반도를 통과한 '산바(SANBA)'가 휩쓸고 지나간 거리는 떨어진 낙엽과 부러진 나뭇가지로 지저분하다. 세 차례의 태풍은 우리에게 너무나 큰 시련을 주고 갔다.

그러나 가을 하늘은 더없이 맑고 푸르다. 그 길을 가다가 무심코 눈길을 잡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떨어진 낙엽과 함께 뒹구는 나뭇가지였다. 떨어진 나뭇가지는 무엇 때문일까를 알아보기 위해 그것을 들고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 나뭇가지들은 대부분이 이미 썩었거나 말라 있었다. 시들어 죽어 가고 있는 중에 강풍으로 떨어진 것이다.
 
가로수는 제가 살기위해 불필요한 잎과 시들은 가지를 희생양으로 삼았다. 그래서 그 무서운 태풍에도 넘어지지 않고 굳건하게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물론 그렇지 못한 나무는 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넘어졌다. 잎이 단풍으로 변해 땅에 떨어져 거름이 되어 추운 겨울을 나는 데 필요한 영양분을 만드는 나무에게서 또 다른 삶을 배운다.
 
아침, 그 길에 떨어진 나뭇가지의 사진을 찍으면서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최근 우리 사회는 끔찍한 범죄로 하루를 시작해 그 고통을 삼키면서 하루를 보내는 분들이 너무나 많다. 묻지 마 범죄에,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성폭행을 일삼는 미친 개들의 날뜀에 그저 '오늘 하루도 무사히'를 소망하며 보내는 우리의 이웃들이 곳곳에 널려 있다.

더욱이 그 이웃들도 믿지 못해 불안해 하면서. 어제도, 오늘도 차마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하고, 아무런 죄의식도 없는 악마들과 함께 숨쉬고,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너무나도 안타깝다. 그동안 그 많은 사건들이 일어났지만 우리는 아직도 악마들의 행동을 멈추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럴까? 진정 우리는 그들의 미처 날뛰는 것을 계속 보고만 있어야 하는 것일까.
 
우리 모두는 이미 그 악마들의 습관을 알고, 날뛰는 방향도 다 알고 있어 분명히 멈추게 할 수 있지만 서로 자기의 주장만을 내세우면서 결국 또 다른 희생자를 만들어 내고 있을 뿐이다. 악마를 막는 것은 오직 한 가지뿐이다.
 
그것은 태풍에서도 의연히 버티는 가로수처럼 썩은 가지를 스스로 잘라 내는 것이다. 나무도 다 아는 것을 만물의 영장인 우리는 모른단 말인가. 요즘 예전에 어머니가 들려 준 이야기와 이이솝의 우화가 더욱 생각난다.
 
감자를 유난히 좋아 해 집에는 늘 감자가 있었다. 어느 겨울에 감자를 삶아먹기 위해 종이박스에서 감자를 꺼내보니 이미 절반 이상이 썩어 있었다. 어머니는 그것을 보시고 말씀 하시기를 "감자는 한 개가 썩으면 함께 있는 다른 모든 감자도 썩게 한단다.

썩은 감자에서 물이 나와서이지. 그래서 썩은 감자가 있으면 반드시 그 감자를 내 버려야만 다른 감자들은 괜찮단다" 고 했다. 그 후 늘 썩는 감자가 있는지를 주위 깊게 살펴서 아깝게 내다 버린 감자는 없었다.
오래된 '이이솝 우화'에 있는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란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평안한 쥐 마을에 쥐들이 고양에게 잡아먹히는 사건이 계속 일어나자 쥐들이 모여 대책을 세우는데 무리 중 제일 꾀가 많은 쥐가 말하기를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겁니다.

그러면 고양이가 가까이 올 때마다 딸랑딸랑 소리가 나니 우리는 얼른 안전한 곳으로 도망가면 됩니다" "그거 정말 좋은 생각입니다" 쥐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이제 더 이상 고양이에게 잡아먹힐 걱정이 없게 되었다고 서로 춤을 추었다.

그러나 그 후로도 쥐들은 고양이의 먹이가 계속 되었다. 다들 아시다시피 방법은 찾았지만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실천은 못한 것이다. 오늘날의 일을 보면 이 우화와 똑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사회도 그런 썩은 감자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귀찮다고, 설마 나까지 썩겠는가라고 방심하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볼 때이다. 썩은 감자를 그대로 두면 모든 감자도 같이 썩는다는 것을, 그리고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지 않으면 쥐 마을에는 평화가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익히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썩은 감자를 그대로 방치하고 고양이도 그냥 두고 있다. 이제, 누구나가 다 알고 있는 것을 실천만 하면 되는데도 실천을 못하고 있다. 내 딸이, 내 아내가, 지금 이 순간에도 불안에 떨고 있는데도.
 
태풍이 지나간 거리의 가로수는 더욱 더 푸르게 햇빛을 받아 잎사귀마다 반짝거린다. 그 가로수 아래서 귀가하는 딸을 기다리는 엄마는 두 손을 잡고 딸의 얼굴을 찾아 두리번거리고 있다.

10월 23일 울산 자매살인사건 공판에서 피해자 부모는 범인의 사형을 촉구하는 3만명의 서명과 30명의 탄원서를 들고 법정에서 사형을 판결해야 함을 주장하고 피눈물을 흘렸다.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오늘도 우리들의 집에는 감자가 썩고, 고양이는 유유히 거리를 거닐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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