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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을 사랑하는 주민들의 따뜻한 마음이 슬도를 품은 포근한 성끝마을을 완성시켰다. 골목을 굽이굽이 돌 때마다 담장과 주택, 벽마다 피어난 벽화들이 보는 이로 하여금 정겨움을 느끼게한다.

'슬도'에 관한 기억은 아주 어렴풋하다. 초등학교 5학년 시절, 부모님과 함께 키가 훌쩍 넘는 높은 방파제에 아슬아슬하게 올라가 바다를 바라봤던 기억.
 그 당시 슬도하면 떠오르는 색깔은'회색빛'이었다. 어린 기억에 그리 밝은 이미지는 아니었다. 그러고선 슬도에 갈 일이 없었다. 그렇기에 몇 년전 드라마 촬영지로 각광 받을 때도 그렇게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하지만, 취재를 이유로 10여년만에 다시 찾은 슬도는 완전히 달랐다. 일전의 풍경이 완전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회색빛 슬도는 아니었다. 마을로 진입할 수록 회색빛은 옅어져 백색으로 변해갔다. 슬도 성끝마을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희미한 옛 향수에 새로 단장한 지금의 모습을 적절히 섞어 새로운 슬도의 색을 꾸며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거문고 울리는 파도소리를 간직한 슬도
동구에 살면서도 바다냄새는 딱히 느낄 수 없었는데, 슬도로 향하는 골목골목을 지날 때마다 바다향이 가까워졌다. 나쁘지 않은 냄새였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방파제 쪽을 향했다. 과거에 봤던 높은 벽은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바다를 가로지르는 긴 교량과 함께 아기고래를 업은 어미고래를 형상화 한 고래조형물을 볼 수 있었다. 거대한 조형물에 감탄해 카메라 셔터부터 눌러댔다. 사진을 찍고 있는 나를 되돌아보니 낯선이가 관광지를 찾은 양 느껴졌다. 그러고보니, 주변엔 무리지어 슬도를 구경하러 온 관광객이 몇 보였다.
 

   
 

 고래조형물의 큰 특징은 슬도 고유의 자연특성을 디자인화 한 점이다. '슬도'라는 명칭은 슬도의 바위구멍 사이로 드나드는 파도소리가 마치 거문고 소리처럼 들려 이름 붙여졌다. 동구청은 이 점을 살려 소리로 풍경을 느낄 수 있도록 고래조형물을 디자인했다. 바닷바람이 불 때마다 금속조각이 서로 부딪히며 마치 고래울음소리를 연상하게 하는 소리를 내도록 디자인 한 것이다.
 하지만 이날은 고래울음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바닷바람이 너무 강해 오히려 소리를 나게하는 데 방해를 한 것이다. 아쉬웠지만 칼날같은 바람을 피하기위해 발길을 돌렸다.
 

#아기자기한 벽화로 꾸며진 향수바람길
성끝마을 골목은 벽화로 꾸며지면서 '향수바람길'이라는 어여쁜 별칭이 붙었다. 향수바람길. 해안가 마을의 특색을 반영해 이 같은 이름을 지었다는데, 동구에 살았던 사람이라면, 아니 누구나 어릴적 골목길에서의 추억이 있다면 이 길이 친근하게 느껴질 것 같다.
 교량 맞은편에서 성끝마을 향수바람길로 가는 입구는 남구 장생포의 신화마을을 연상케했다. 바다를 배경으로하고 있으니 통영의 동피랑마을도 생각났다. 두 마을을 섞어놓은 듯한 느낌이다. 신화마을보다는 좀 더 따뜻하고, 동피랑마을보다는 협소한 그런 곳. 어쨌든 아기자기한 그림이 마을을 한 층 활기차게 만들어준다는 것은 세 곳의 공통점이다.
 

   
 

 아기자기한 벽화로 슬도를 품은 성끝마을에 들어서니 온통 푸르러보였다. 어린아이가 고래를 타고 비행하는 벽화로 시작해 마을은 더욱 평화로워보였다. 첫 그림부터가 옛 향수를 불러일으킨다는 생각도 든다. 그림이 일본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한 장면과 비슷했기 때문이다.센이 용이된 하쿠를 타고 하늘을 날다 강으로 빠져 과거를 회상하는 그 장면처럼, 향수바람길과의 첫 대면은 아련한 그 어디에선가의 추억을 그리게 했다.
 

 벽화를 따라 골목길을 걷다보니, 눈에 띄는 글씨가 있다. '방어동주민센터 한국화', '남목아줌마미술프로젝트', '남목여성회'등 그림 속에 새겨진 이들은 모두 그림을 직접 그린 장본인들이다. 문화예술센터 '결'이 기획해 이들 주민을 비롯해 전하2동 주민센터, 꽃바위문화관, 예울 등 7개 단체가 재능기부를 해 벽화에 희망을 그렸다. 
 

   
 

 특히, 마을길 내부 벽면은 주민이 원하는 색상을 도색하거나 기존의 색을 그대로 살려 최대한 자연스럽게 꾸몄다. 골목을 굽이굽이 돌 때마다 담장과 주택, 벽에 옛 교과서에 실렸을법한 복고풍 삽화를 그려 오래된 마을에 정겨운 이미지를 심었다.
 마을 벽화가 더욱 교과서처럼 느껴진 것은 다양한 내용의 시를 담은 '시화 길'이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잘 알고 있는 김춘수님의 시에서부터 울산출신 정일근 시인의 시, 그리고 주민들이 직접 지은 자작시까지. 한 구절 내려읽어갈 때마다 마을을 사랑하는 '주민애'를 배울 수 있었다.
 

 알고보니 슬도는 1990년대 주민들의  참여로 변신을 꾀할뻔한 기회가 있었다. 슬도는 본래 산림청 소유의 국유지였는데, 지난 1999년 성끝마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슬도 가꾸기 사업을 벌였다고 한다. 주민참여가 크게 활성화되지 않았던 1990년대에 이런 일에 나섰다니 놀랄만한 일이다. 하지만, 결국 이 사업은 중단되고야 말았다. 국유재산 사용허가를 받지 않고 사업시행을 했다는 이유로 고발을 당했기 때문이다.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고자한 주민들의 순수한 마음이 한 풀 꺾이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마을을 사랑하는 마음은 그대로 이어져 현재의 변화를 가져왔다. 슬도 주민들은 마을에 대한 깊은 애정과 역사를 채우며 살아있는 교과서를 제작하고 있었다. 
 

#주민들의 힘으로 일궈낸 쾌거
주민들의 정성이 담긴 벽화를 카메라에 담으면서 신경이 쓰였던 것은 '찰칵찰칵' 카메라 셔터 소리였다. 아무리 관광을 한 목적으로 벽화마을을 조성했다지만, 엄연히 사람이 사는 삶의 터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조심스러웠다.
 이런 마음은 마을을 방문한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삼삼오오 모여 벽화마을을 둘러보는 40대 여성들, 두 손 꼬옥 잡고 방문한 중년부부, 젊은 커플들까지 모두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며 마음에 드는 벽화 앞에서 사진을 찍어댔다. 주민들도 흐뭇하게 미소지으며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방문객은 최소한의 예의를 갖춰주고, 마을 주민들도 방문객을 배려해준다면 성끝마을 향수바람길은 언제까지나 사랑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성끝마을을 한 바퀴 둘러보고 다시 돌아오는 길, 처음 마주한 고래 그림과 다시 마주쳤다. 회색빛에서 백색으로, 그리고 푸르름으로 변한 슬도의 색깔이 이제는 포근한 연노랑이 됐다. 어렴풋한 추억과 마을 자체의 따뜻함을 가진 슬도 성끝마을과 딱 어울리는 색이었다. 밝고 활기찬 미래를 그려나가는 지금 모습이라면 언제까지나 슬도는 연노랑빛으로 남아있을 것 같다. 글·사진=김은혜기자 ryusori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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