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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이 절정인 11월 첫째 일요일 초등학교 동기들과 속리산으로 가을 등산을 갔다. 졸업한지 어느 듯 40여년의 세월이 흘렸다. 친구들은 60년생으로 이른바 베이비부머 세대다.
 
그들은 6.25전쟁이 끝난 뒤 1955년부터 산아제한 정책이 도입되기 직전인 1963년까지 태어나 지금은 49~57세의 나이로 2012년 국내 인구의 14.3%인 710만 여명에 이른다.
 
60년생은 베이비부머 세대의 중간에서 어떤 친구는 58년생이고 어떤 친구는 62년 범띠도 있는데 이는 학교 입학이 늦거나 제때 출생신고를 하지 못해 나이는 다르나 동창으로 같이 학교를 다녔다. 그래도 지금 만나면 다 같이 늙어가는 죽마고우인 갑장들이다.
 
이런 베이비부머 세대가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직장에서 퇴직을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가 시작되자 퇴직 후에 대한 마땅한 대책이 없어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었다. 그런 이유로 친구들을 만나면 마음이 참 애잔하다. 누가 무슨 이야기를 해도 다 알고, 어떤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해도 다 소통이 된다. 그것은 동시대를 같이 살아온 사람들만이 가능한 것이다.  
 
졸업을 같이 했다는 이유로 우리들의 삶은 대부분이 비슷하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자식들이 결혼을 하고, 그래서 슬며시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다. 안타깝게도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백년해로 약속한' 남편은 야속하게도 먼저 길을 떠나 이미 혼자가 된 여자 친구도 있다. 우리의 나이가 벌써 그렇게 만들었다. 그 옛날 우리 부모님들처럼 그렇게 뒤를 따라 그 길을 걸어가고 있다.
 
흔히들 우리 세대는 부모님을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이고, 부모가 자녀를 부양해야 하는 첫 세대라고도 한다. 어린시절 아버지의 기침 소리가 부러웠지만 정작 자신은 헛기침도 못하고, 치매 부모 모시고 살지만 정작 자신들은 혼자서 쓸쓸히 먼 길을 떠나야 한다. 해서 삶이 녹녹치 않았다.
 
그날 점심을 먹으며 낮술을 한 잔하면서 친구들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초등학교 때 여자 친구들의 고무줄을 전문적으로 자른 영철이, 점심 도시락을 머슴들이 먹는 도시락을 가지고 와서 다 먹고는 오후 수업에는 잠과 싸우는 진우, 목소리가 좋아 노래를 잘한 경숙 등등 그 친구들이 이제 50이 넘은 중년으로 변해 있었다. 마음 한 편으로는 참 뿌듯했다.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온 친구들, 자식을 낳아 똑바르게 키워낸 그들의 얼굴이 정말 보기 좋다. 자신보다 자식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친구들, 그래 우리 그렇게 같이 늙어가자. 오늘날 쉽게 좌절하는 우리들의 자식들은 정말 어렵게 살아온 부모세대를 얼마나 알겠으며, 알아도 "그것은 부모님 세대요, 우리 세대는 그렇게 힘들게는 못삽니다"라고 할 것이다.
 
조금만 아프면 좌절하고 힘들면 "엄마"를 먼저 찾는 세대가 되었다. 그렇게 쉽게 좌절하는 세대를 누가 만들었을까? 바로 우리 부모세대가 만들었다. 당신들이 고생한 만큼 그 반대로 자식들에게는 잘 해주고 싶어 많은 것을 부모가 대신 해 주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도 일이 생기면 엄마를 부르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그 엄마도 평생 자식들 곁에 있을 수 없다. 그것이 인생이니까.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기고 죽는다고 한다. 이름은 죽은 후에 그의 명예보다는 자신의 흔적, 즉 후손을 남겨 두어야 한다. 그것만이 죽어도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이다.
 
영화 <은교>에서 이적요 시인이 말한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나의 늙음도 나의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란 말을 할 나이가 된 친구들이고, 젊은 시절 흘린 땅방울이 평안한 노년을 기약할 줄도 알았다. 그러나 기약은 기약일 뿐임을 알기 시작한 친구들이다. 알아도 이제는 어쩔 수가 없다. 
 
돌아오는 길에 친구가 묻는다. "야, 너는 행복하냐?" "그렇게 어려운 거는 묻지 말고." "그러면, 열심히 살았냐?" "그냥, 바쁘게 살았지."
 
그래, 행복보다는 그냥 앞만 보고 살아온 것뿐이다. 그렇게 살아야만 가족을 굶기지 않는 길임을 태어나면서 부모님께 그 DNA도 같이 받았다. 이제 그 DNA를 물러 주어야 할 때인데 자식들은 받을 준비를 하지 않고 있다.     

은퇴는 끝이 아니고 또 다른 삶의 시작일 뿐인데 베이비부머의 세대들은 불안하다. 자식들의 취업과, 결혼, 그리고 아직 한참 남은 자신들의 또 다른 어설픈 삶의 앞에서 이빨을 깨물지만 아뿔싸, 어금니가 공석(空席)이 된지 한참이 되었구나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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