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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출생하는 아이 100명 중 4명은 다문화가정 출신이란 통계가 있다. 베트남 여성이 한국으로 시집을 와서 가정을 꾸리는 모습이 우리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영국에서는 중국인 아내와 한국인 남편이 아이들을 키우는 모습도 흔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 뮌헨대 교수와 그의 아내 엘리자베트 벡-게른스하임 에어랑엔대 교수는 이런 이들을 '세계 가족'이라고 부른다.


 최근 국내 번역된 두 사람의 책 '장거리 사랑'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현대의 가족 형태를 소개하면서 세계 가족의 개념을 설명한다.


 책은 개인화된 현대인의 사랑 방식을 분석한 이들의 전작 '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에서의 논의를 확장했다. 저자들은 전 세계로 이동과 소통할 수 있는 지구화 시대에 전통적인 가족과 사랑의 개념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자세히 분석한다.


  한 지붕 아래에 살며 한 언어를 사용하는 같은 피부의 사람이 모이는 게 기존 가족의 모습이라면 세계 가족은 국가·종교·문화·인종의 경계를 넘는다.


 저자들은 "세계 가족은 전통과 현대, 근거리와 원거리, 친숙함과 낯섦, 평등과 불평등을 새로운 방식으로 한데 섞는다"며 "이러한 혼합은 시대와 국가, 대륙을 넘어 사적인 영역의 내부 공간 속에서 지구화된 세계의 격동을 반영한다"고 설명한다.


 세계화된 공간에서는 사랑의 방식도 변한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으로 소통하기 때문에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이 더는 유효하지 않은 것.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사람 간의 감정 작용을 '장거리 사랑'이라고 이름 붙인 저자들은 "비육체성과 인터넷의 익명성이 사랑을 찾는 행위의 낭만성을 고양시킨다"고 설명한다.


 장거리 사랑은 연인 사이에만 허용되는 것이 아니다. 부모와 아이의 사랑도 국경을 넘는 경우가 많다.
 한국의 기러기 아빠, 필리핀의 가사 도우미 노동자들은 국경 너머에 있는 자식들에게 애절한 사랑의 신호를 보낸다. 오늘의 헤어짐은 내일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고 위로하면서 송금과 국제전화, e메일로 서로의 안부를 확인한다.


 하지만 저자들은 세계 가족이나 장거리 사랑이 또 다른 갈등을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국땅에서 다른 가정의 아이들을 돌보며 일하다가 고향에 돌아온 어머니를 정작 자녀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세계화가 가져온 변화가 사회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지 섣불리 결론 내리지 않는다. 그러나 가족형태와 정서체계가 바뀌는 '혼란'이 동반하는 불안정성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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