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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찾은 남구 장생포구. 매서운 찬바람을 맞으며 걷게된 장생포 구석구석에는 고래잡이를 하며 살던 장생포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포경전진기지라는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독특한 생활문화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곳. 고래를 잡고 돌아오는 포경선에 탄 아버지와 오빠, 아들을 기다리며 목이 빠져라 기다리던 작은 포구는 지금 거침없는 발걸음을 대딛고 있다. 상업포경이 금지된 1986년. 이후 26년간 쇠락을 거듭한 장생포는 인구 감소 등으로 몰락위기까지 갔으나 최근 고래관광으로 옛 명성을 되찾으며 관광객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현재 마을은 도로변을 중심으로 현대식 고래 음식점거리로 변했고 지금은 고래박물관, 고래생태체험관, 고래바다여행선 등의 볼거리가 있어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관광객에게도 안성맞춤이다. 특히 최근엔 전국 147개 특구 가운데 지식경제부로부터 우수지역특구로 선정돼 지식경제부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 포경이 허용되던 당시의 장생포 어부들의 생활상을 그대로 담아 만들어지는 고래문화마을 부지. 장생포 특유의 정감 있는 식당과 주점, 고래를 해체하는 모습들이 포경 전진기지였던 예전 장생포 마을을 그대로 복원해 2014년께 완공될 예정이다.

# 장생포 포구
고래의 모습을 닮은 장생포는 사철 따뜻하고 훈풍이 부는 최적의 조건을 갖춘 항구다. 석양의 풍경이 유난히 아름다운 장생포. 내심 귀신고래의 출몰을 기다리며 부둣가를 서성여 본다.
 장생포항은 여전히 분주하다. 고래사냥이 합법적으로 이뤄지던 때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연근해 어업의 중심지로 활달함은 여전한 것이다. 고개를 돌려 바다를 본다. 하얀 물거품이 일렁이는 그 곳에서 화려한 금빛 물비늘을 뚫고 솟아오르는 귀신고래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장생포항을 벗어나 장생포고래박물관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짧은 시간이지만 이곳을 걷는 내내 파도소리가 맑게 피어나는 것만 같다. 바다를 눈여겨보지 않더라도 밀려드는 파도소리와 이곳에 아로 새겨진 지난 향수 같은 것은 장생포항이 주는 선물이다. 그래서 장생포항 주변 여행은 자동차의 속도에 기대기보단 바다와 이곳의 추억을 가슴에 담는 게으른 여행이 적격이다.
 장생포의 역사는 곧 고래고기의 역사다. 장생포항에서 고래박물관에 이르는 도로면에는 여전히 고래 고기를 파는 식당들이 늘어서 있어 절로 옛 시절을 노래한다. 포경은 금지됐지만 우연히 어부의 그물에 걸려 잡힌 밍크고래나 돌고래 등의 고기를 파는 곳이다. 그러고 보니  도로이름도 '장생포 고래로'다. 껍질에서 내장까지 부위별로 12가지 맛을 내는 고래고기는 예나 지금이나 귀한 대접을 받는 음식이다.
 

# 고래해체장

   
▲ 고래고기를 삶던 고래막의 흔적도 곳곳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현재 남은 고래고기 음식점인 대명상사가 대표적이다.

길을 걷다가 '장생포 고래 해체장'이라는 푯말이 눈에 띈다. 고래해체장과 고래고기를 삶던 '고래막'의 흔적도 이 길에서 찾을 수 있다. 장생포만 너머 한진중공업 부지 내에는 고래해체장 건물 5동이 반파상태로 남아 있다. 이 해체장(1961~1985년)은 한국포경어업조합에서 포경업자들을 위해 건립했다. 비슷한 시기 전국 여러 곳에 해체장이 있었으나, 이곳만 유일하게 옛날 형체를 보존하고 있다. 현재 고래기름을 짜던 제유장과 임시보관고 등이 남아 있고 일부는 인근 고래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장생포 주민들은 총 8개의 해체장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이 해체장의 경우 대형고래만을 다뤘다고 한다. 규모가 작은 고래의 경우 지금 장생포우체국 옆 '원조고래맛집'이 있는 위치에 해체장 등 소규모 해체장을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 고래막
고래고기를 삶던 고래막의 흔적도 곳곳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현재 남은 고래고기 음식점인 대명상사가 대표적이다.
 이곳은 당시에 사용하던 고래막을 그대로 사용해 고래를 삶고 있어 미식가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또 해경부두와 울산세관 통선장 사이 낡은 양철지붕의 건물에 많은 고래막이 있었지만, 현재는 다른 영업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장생포우체국 옆에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 고래사당이라고도 하는데 원이름은 신주당. 오래 전 고래잡이를 생업으로 할 당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위해 마을 사람들이 제를 지낸 곳.

# 신주당
울산세관 통선장 맞은편 골목에는 '신주당'이라는 작은 이정표가 보인다.  좁은 골목을 들어서면 장생포 제당과 당산나무를 마주하게 된다.
 고래사당이라고도 하는데 원이름은 신주당. 오래 전 고래잡이를 생업으로 할 당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위해 마을 사람들이 제를 지낸 고래사당으로, 해마다 입향조인 할배할매를 위해 별신굿을 지내오고 있다. 고래를 잡으러 나갈 때면 사당 옆에 심어진 큰 나무에 고래고기를 한 뭉치 매달고, 돌아와선 선장이 고래 꼬리를 제단에 바쳤단다. 그리고는 "할배 할매에게 이 제사를 올리오니 고래를 많이 잡게 해 주시고 안전한 귀향길이 되게 해 주시며, 마을이 복되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라는 주문을 외웠다고 한다.
 신주당은 원래 죽도(竹島)에 있었으나, 죽도가 매립되면서 현재 위치인 장생포 마을 쪽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죽도는 섬이었으나 매립돼 현재 울산해양항만청 바닷가의 조그마한 산이 됐다. 가수 윤수일의 노래 '환상의 섬'의 주 배경이 바로 이 죽도다. 윤수일이 어릴 때 이곳에서 자주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불렀다고 전해지며, 고래생태체험관 앞에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 천지먼당과 한개먼당
천지산(천지먼당)은 장생포에서 가장 높은 산이면서 한눈에 장생포 전체를 아울러 볼 수 있는 곳이다. 장생포에서 가장 높아 백두산이란 이름도 가지고 있으며 옛날에는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 산이라기 보단 얕은 언덕 정도로 이해하면 될듯 한데 어찌 그 이름을 얻었는지 알 수 없다.
 이것이 궁금해 알아보니 장생포 주민들은 고기도 가장 큰 고래를 상대하고, 산도 백두산, 산등성이도 하늘아래 제일이란 뜻에서 이산을 천지먼당이라 불렀다고 한다. 혹 해안 따라 비좁은 땅에 위치한 좁은 포구이지만 바다의 왕 고래의 기를 죽이기 위해서 기운이 넘치는 이름을 지었는지도 모른다.
 백두산은 아래 동해로 흘러나가는 해자도 갖추고 있다. 갖출 건 다 갖춘 셈이다.
 
   
▲ 장생포 초등학교. 일본인들이 사용하던 심상소학교를 광복 후 인수한 후 1952년경에 지금의 위치인 새치로 주변 언덕에 세워졌다.

# 장생포초등학교
장생포초등학교 초입에는 실제 고래잡이에 사용한 포경포가 있어 입구에서부터 고래마을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이 학교는 역사도 깊은데 장생포교회 뒤에 있던 일본인들이 사용하던 심상소학교를 광복 후 인수한 후 1952년경에 지금의 위치인 새치로 주변 언덕에 세워졌다. 
 전교생 모두가 언니이고 동생인 이 작은 학교의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힘찬 뱃고동소리를 듣고 자라 그런지 목소리도 우렁차고 축구공 차는 발길질에도 힘이 들어있다.
 
# 고래박물관
장생포초교에서 걸어서 15여분이면 고래박물관에 닿을 수 있다. 고래 박물관은 국내 유일의 고래전문박물관으로 귀신고래의 실물모형을 포함해 포경과 관련된 다양한 전시물을 만날 수 있다.
 박물관 관람은 2층 포경 역사관에서 시작해 3층 귀신고래관을 거쳐 1층 어린이 체험관으로 이어진다. 2층 출입구를 들어서면 거대한 모습의 귀신고래 실물모형이 기다린다. 출산을 위해 울산 앞바다로 회유하던 바로 그 귀신고래다. 귀신고래는 몸 여저 저기 따개비들이 붙어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외에도 길이 33m에 이르는 대왕고래 턱뼈와 밍크고래 머리뼈를 비롯한 각 부위의 뼈들로 만나볼 수 있다.
 지금은 겨울철인 탓에 고래바다여행선이 잠시 쉬고 있지만, 올해는 높은 고래 발견율로 승선객 7713명 중 2549명이 외지인일 정도로 인기 관광상품이다.
 
# 고래문화마을
지금 남구는 포경 자체가 금지된 상황에서 전설처럼 혹은 신화처럼 남아 있는 고래를 '현실의 고래'로 만들기 위한 작업으로 고래문화마을 조성에 열심이다.
 장생포 근린공원에 들어설 고래문화마을은 포경이 허용되던 당시의 장생포 어부들의 생활상을 그대로 담아 만들어진다. 2014년쯤 들어설 예정으로 장생포 특유의 정감 있는 식당과 주점, 고래를 해체하는 모습, 이런 우리나라 포경 전진기지 장생포 마을의 모습을 실제처럼 느낄 수 있게 있게 할 계획이다.
 특히 이곳에는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고래 관련 이야기를 풀어, 고래문화마을에 접목시키고, 영화촬영장이나 세트장으로도 활용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란다. 또 대형 고래 뱃속을 체험할 수 있는 고래 조각정원이 들어서고 고래를 형상화한 9가지 조형물을 통해 선사시대 고래관련 문화를 체험하고 배울 수 있도록 하는 복합적인 문화공원으로 조성될 예정이다.
 이처럼 지금 장생포구는 30여년전, 쉴새 없이 사람들이 찾아들었던 그 시절의 영화를 다시 꿈꾸고 있다. 저물어가는 석양 속에 느껴지던 겨울 포구의 적요가 그리 조용하게만 다가오지 않은 것은 이렇게 '우리는 다시 희망을 노래하련다'라며 포구에 활기를 불어넣는 사람들의 노력이 걷는 곳곳에 묻어났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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