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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은 날것을 좋아한다. 생선회는 가능한 활어를 찾고 산낙지나 대하도 살아 꿈틀거리는 것을 찾아다닌다. 그것도 모자라 소고기조차 가장 내밀한 부위를 골라 육회로 입맛을 다신다. 일단 잡아 조금이라도 묵힌 것은 선호도가 떨어지고 찾는 이도 즐기는 이도 감흥이 없는 것이 우리네 입맛이다. 퍼덕거리는 생존의 몸부림을 질근 씹는 쾌감은 중독이 빠르다. 그 살벌한 중독성은 굳이 입맛에만 있는 것은 아닌가보다.

 날 것을 좋아하다 생명을 잃은 이가 조조의 책사 진등이다. 한때 여포의 책사였던 그는 조조의 능력에 반해 조조의 책사로 대권을 도모했다. 책사 진등의 머리를 사랑한 조조는 말년을 맞은 그에게 풍광 좋은 광릉의 주인 자리를 내줬다. 그게 화근이었다. 광릉은 지리적 특성 때문에 물산이 풍부했다. 무엇보다 생선요리가 일품인 이곳에서 진등은 생선회의 날것에 흠뻑 빠져버렸다. 날것만 찾던 진등은 알 수 없는 불치의 병에 걸렸고 결국 목숨을 잃었다. 시름시름 앓던 진등은 죽음에 임박해서야 명의 화타의 충고가 떠올랐다. "생선을 날로 먹어 생긴 병이니 익혀 먹는 것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3년 안에 병이 재발하여 죽게 된다"

 날 것을 즐기던 동북아 3국은 그 시점을 경계로 날것에 대한 음식문화가 달라졌다. 공자조차 날 것을 즐긴 중국이지만 이후로는 생선회에 대한 기록이 사라진다. 하지만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와 조선에 이르는 동안 우리 식문화에서 생선회는 일품요리로 자리했다. 일본 역시 막부시대 사무라이들의 첫째 먹거리는 사시미였고 천부적인 변용의 문화자산을 가진 왜인들은 이를 스시문화로 이어 세계적인 요리로 만들었다. 다만 왜의 사시미나 스시는 활어보다 선어를 즐겨 퍼덕거리는 날것을 하루쯤 숙성시키는 또 다른 맛을 찾았다.

 회문화의 원조격인 동북아 3국 가운데 유독 우리네 입맛은 여전히 날것이 첫째다. 진등의 죽음처럼 디스토마  같은 유해균을 방어할 의학의 발달도 한몫을 했지만 무엇보다 하루쯤 숙성하는 여유를 기다려주지 않는 산업화의 고속성장 속도감이 식문화에도 영향을 준듯하다. 그래서인지 최근 돌직구스타일이 유행이다. 비유나 은유가 사라진 직유는 다른 생각을 거부한다. 1 더하기 1은 2일 뿐, 어떤 것도 용납되지 않는 세계다. 그래서 2를 규정하고 바로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야 하는 이들에게 돌직구는 명쾌하다. 속도의 시대에 걸맞은 아이콘이다. 9회말 투아웃, 힘 빠진 타자에게 150킬로미터의 속도로 밀어붙이는 오승환식 돌직구는 치명적이다.

 대선을 앞두고 처음 열린 후보토론회에서 이정희 후보가 '돌직구녀'로 등극했다. 그는 등판과 함께 돌직구를 뿌렸다. 9회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던 그는 매회 등판 때마다 속도감을 더한 돌직구를 뿌렸고 간간히 자신의 등판순간이 아닐 때도 불쑥 끼어들어 돌직구를 날렸다. 포수는 없었다. 애초부터 포수를 향해 던진 돌직구가 아니었기에 타석에 방망이를 든 박근혜 후보를 향해 전속력으로 돌직구를 날렸다. 날것의 위력은 신선함이다. 빠르긴 했으나 묵직함이 없는 돌직구는 풍선에 불과하다. 색깔이 선명하고 워낙 크기가 큰 것이기에 모두가 놀라 쳐다보긴 하지만 어쩌나, 풍선은 금방 허공에 날아가 버렸다.

 압권은 말간 얼굴로 상대 후보를 사선으로 바라보며 뱉은 이정희의 마지막 돌직구였다. "분명한 것은 저는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나왔습니다." 오승환의 모든 돌직구가 이정희의 한마디에 어디론가 숨어버릴 처지가 됐다. 장물로 먹고 살았다거나 친일파의 자손이라는 돌직구 정도는 번트라도 될 수준이지만 떨어뜨리기 위해 나왔다는 구질은 판을 깰 결정구였다. 당신이 대통령이 되는 건 죽어도 볼 수 없어 온몸으로 막기 위해 후보로 나왔다는데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나. 딱하지만 현실이다. 통합진보당의 정당 존립 이유가 분명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보수의 이름으로 이 땅에 사는 모든 세력을 적으로 몰아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완수하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공중파를 타고 40%의 국민의 심장에 박히는 순간이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오래전 소련제 탱크를 앞세우고 '남쪽'을 유린했던 전사들이, 통일위업을 목전에  두고 발길을 돌려야 했던 순간부터 참으로 오랜 시간 뱉고 싶은 말이었지 싶다.

 민중해방의 그날을 위해 나 홀로 불씨 되어 상대의 목을 따겠다는 신념이 시퍼런 순간이었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돌직구의 충격이 사라질 즈음, 아차 싶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래, 이정희가 꿈꾼 것이 바로 이런 것이었구나. 가장 효과적으로 가장 확실하게 종북좌파의 당당함을 날것으로 보여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구나. 그랬다. 상대후보를 면박주고 고개 돌리며 흘리는 야릇한 웃음이 그가 2시간 동안 전 국민에게 보여준 한판 마스터베이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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