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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현대 그리스 문학의 대표적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1883년 크레타 이라클리온에서 태어났다. 터키의 지배하에서 기독교 박해사건과 독립전쟁을 겪으며 어린시절을 보낸 그는 동서양 사이에 위치한 그리스의 특이성을 일찍부터 체감하고 이에 영향을 받아 투쟁적인 작품을 남겼다.


 그는 그리스 민족시인 호메로스부터 베르그송, 니체를 거쳐 붓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선지자들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그의 문학이 동서양을 넘나드는 사상적 스펙트럼을 지닌 이유다.


 특히 유럽, 아시아 등 여러나라를 편력하며 위인을 주제로 한 비극을 많이 썼다. 이는 고향을 무대로 한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1947)에 잘 반영됐다. 이 작품은 그가 1917년 펠로폰네소스에서 소설의 주인공이자 실존인물인 조르바와 함께 탄광업을 하며 초석을 닦은 작품이다.


 그밖에 그리스 난민의 고통을 묘사한 <다시 십자가에 못박히는 그리스도>(1955) 등 만년의 소설로 세계적 명성을 얻는다. 그러나 그의 본령은 시작(詩作)으로 호메로스에서 취재해 근대인의 고뇌를 그린 장편시 <오디세이아>(1938)가 대표작이다. <미할리스 대장>과 <최후의 유혹>은 신성모독을 이유로 금서가 됐다. 1955년 중국 정부 초청으로 중국을 다녀온 뒤 얼마안돼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두 차례 노벨문학상 후보로 지명됐다.
 
#에피소드
"카잔차키스가 그리스인이라는 것은 비극이다. 그가 만약 이름이 카잔초프스키이고 러시아어로 작품을 썼다면 그는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작가로 남았을 것이다"


 영국의 작가이자 평론가 콜린 윌슨이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1883~1957)를 두고 한 말이다.


'20세기 문학의 구도자'로 불리는 카잔차키스는 실제 국적때문에 작품이 빛을 덜 발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노벨상 후보에도 두 차례 올랐지만 수상은 연거푸 실패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이 갖는 자유와 평화에 대한 추구와 투쟁으로 그는 1956 국제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작가는 평생을 여러 나라를 떠돌고 글을 쓰며 자유를 위해 평생을 바쳤다. 그는 형이상학적 언어에서 벗어나 살아숨쉬는 자유의 언어로 문학을 완성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의 소설만큼이나 유명한 그의 묘비명에는 이런 말이 쓰여 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 그리스인 조르바.
#최근 인기작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대표작. 호쾌하고 농탕한 자유인 조르바란 인물이 펼치는 영혼의 투쟁을 풍부한 상상력으로 그려냈다.


 소설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화자인 나와 조르바가 우연히 만나 크레타 섬에서 탄광사업을 시작했다가 망한다는 내용이다. 소설은 소심한 엘리트인 나와 거침없는 자유인 조르바가 만나는 것에서 시작된다. 인생의 전기를 찾아 크레타섬을 찾아온 나는 조르바와 일을 하면서 그때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된다.


 카잔차키스에게 조르바는 책상머리에서 인생을 배운 나약한 인간이 아니라 온몸으로 부딪치면서 인생을 깨우친 열정으로 가득한 자유인이었다. 종교나 이념은 물론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적 규범에서 벗어나 있었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은 채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을 쏟아냈다. 조르바는 탄광이 망한 후에도 "빈털터리가 되었으니 이제 아무것도 우리를 방해할 수 없을 것"이라며 좋아하는 진정한 자유인이었다.


 이처럼 어떤 사상, 종교, 지식에 얽매이지 않고 인간의 본성과 자유를 기준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조르바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숨어 있는 그리움이자 이상이다. 무한히 자유로운 생각과 거침없는 말투 그리고 본성에 충실한 그의 행동은 사실은 카잔차키스가 추구하는 인간, 즉 경건하고 도덕적이며 진지한 인간의 전형이다.


 말이든 행동이든, 위선적인 겉치레에 얽매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본질을 드러내는 조르바. 소설은 화자가 조르바를 얼마나 흠모했는지를 보여주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욕망을 참아가며 살아가는 '먹물'인 나와 물레질 하는 데 걸리적거린다고 도끼로 집게손가락을 잘라버린 조르바는 너무나 대비되는 인물이다. 술과 여자에 미쳐 있고, 계획이라고는 없는 조르바를 이해해 가면서 주인공은 새로운 세상을 만난다.


 소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삶의 메토이소노'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메토이소노'란 '거룩하게 되기'란 뜻. 단지 술 한잔인 포도주가 그 의미만큼은 사랑이 되고 성체가 되는 것과도 같다. 이를 염두하면 소설 속 조르바의 행동과 모습은 단순한 기행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조르바의 행보는 자유를 향해 멈추지 않는 '거룩한 영혼의 투쟁'으로 승화된다.
 김주영기자 uskj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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