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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직인수위 대변인이 느닷없이 토요일 낮 기자회견을 자처했다. '중대발표'가 있을 것이라는 귀띔까지 한 윤창중 대변인은 청와대가 만지작거리는 특별사면 카드를 꺼내지 말라고 요구했다. 인수위 대변인을 동원한 청와대 단속을 접하자 눈치를 보던 청와대가 찜찜한 표정이다. 국민정서와 배치되는 특별사면은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말은 통상적이지만 부정부패·비리에 연루된 사람들에 대한 사면은 국민을 분노케 하기에 사면을 단행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는 대목은 경고의 메시지가 분명했다. 윤창중의 입을 빌리긴 했지만 사실상 박근혜 당선인의 말이기에 경직된 분위기가 역력했다.

 인수위의 경고는 그만큼 특별사면 움직임이 구체화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형님'의 선고가 이뤄진 마당에 형을 빼고 사면을 단행하면 적어도 당선인의 양해는 있을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겠지만 아뿔싸, 원칙대통령, 약속대통령을 공약한 박근혜 당선인의 표정은 더욱 굳어진 모양새다. 한 달 남은 임기의 마지막 권한을 행사하려던 MB가 딱하게 됐다. 마지막 카드가 필요한 것은 MB스타일로 볼 때 충분히 예상할만한 일이다. 특별사면 대상으로 거론되는 인사들의 면면이 그렇다.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 부인 김윤옥 여사의 사촌오빠인 김재홍 전 KT&G복지재단 이사장이 핵심이다. 측근들의 사면을 마지막 카드로 행사하고 싶은 MB와 경고를 보낸 당선인의 충돌지점에는 바로 박근혜 당선인이 버티고 있다. MB 입장에서는 여론이야 어차피 등을 돌린 마당이니 어떤 식으로든 욕을 듣겠다는 각오가 깔려 있겠지만 사면권 행사가 박근혜 당선인과의 갈등으로 번지는 것은 아무래도 뒷덜미가 찜찜한 대목이다.

 대통령의 특별사면에 대한 박근혜 당선인의 생각은 분명해 보인다. 대선기간 동안 박근혜 당선인은 틈
만 나면 법치를 강조했다. 대통령의 사면권에 대해서도 몇 차례 밝힌 적이 있다. 언론 초청 토론에서는 "대통령의 사면권을 분명하게 제한해 무분별하게 남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무전유죄 유전무죄' 같은 말이 국민에 회자되고, 돈 있고 힘 있으면 자기가 책임을 안 져도 되는 상황이 만연된다면 국민에게 법을 지키라고 해도 와 닿지도 않는다"고 쐐기를 박기도 했다. 그럼에도 MB는 특별사면을 강행할 뜻을 내비치고 있다. 인수위의 경고에도 청와대 쪽은 "법무부 사면심사위가 특별사면 안을 검토해왔으며, 최근 심의를 마친 것으로 안다. 실제로 특사안은 이 대통령의 결심만 남은 상태"라고 말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청와대는 "특사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으로, 정부는 법과 원칙에 따라 특사 절차를 진행해왔다"고 특사 단행 방침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는 상황이다.

 역대 대통령들이 임기 말이면 특별사면 카드를 꺼내든 것은 우리 헌정사에 관행이 된 느낌이다. 고인이 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권 교체를 앞두고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등 75명을 특별사면했다. 이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측근이었던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과 김대중 정부 시절 불법도청에 가담했던 임동원, 신건 전 국정원장이 사면 명단에 포함시켰고 임동원, 신건의 경우 법원에 상고장을 낸지 단 몇 시간 만에 취하하고 사면되는 초유의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국민들의 따가운 여론을 의식한 듯 이기택 상임고문 등 당시 한나라당 인사들도 사면대상에 포함됐다며 국민통합 차원이라고 여론무마에 나서기도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었다.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과 김선홍 전 기아그룹 회장 등 122명이 사면됐고 세상을 요란하게 했던 '이용호 게이트'의 깃털인 김영재 전 금감원 부원장보는 사면 9일 전 항소를 취하해 사면 대열에 합류하기도 했다. 사면으로 가장 시끌했던 전두환 노태우 전직 대통령들에 대한 일괄 사면 역시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의 정권교체기에 이뤄졌다. 이 당시 시민단체나 재야단체들이 국제기구에 사면의 부당성을 호소하는 등 반대여론이 뜨거웠지만 임기를 마친 YS와 임기를 시작하는 DJ가 사면을 합의해 정치권은 침묵으로 일관하는 모습이었다. 물론 그 때도 명분은 국민대통합이었다.   

 통합의 코드를 위해 사면이 필요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사회통합을 위한 군왕의 사면권 행사는 유효한 기록도 적지 않다. 현대사에서도 남아공의 민주화를 이끈 만델라의 사면정치는 전범국가 독일의 참회만큼이나 유명한 역사적 교훈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사면을 해야 하는 당위성과 사면 당사자들의 죄의 본질이다. 권력의 창을 열고 양기를 빨아들인 측근비리가 사회통합으로 포장되거나 대통령의 권한으로 과장되어서는 곤란하다. 사면은 정당한 행사로 이어져야 대통령의 고유권한으로 가치를 가진다. 자칫 독단과 이해를 쫓아 권한을 행사하면 사저로 돌아간 MB의 뒷덜미는 소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말장난 같지만 여론에 귀를 닫은채 사면권을 행사했다가 새롭게 시작하는 정부나 물러난 정부가 사면초가에 빠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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