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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비의 질주를 먹는다 가지마다 꾹꾹 발자국을 찍으며 질주하는 태양이 심장의 이복형님이라는 태생의 비밀을 알고 나서 날마다 안부를 묻는다 이종 사촌 누이인 달이 천의 얼굴을 하고 밤마다 골짜기와 능선을 넘는 까닭이 혈연 때문이란 걸 몰랐다 하지 말자 참나무가 고백하지 못한 사랑 잉걸불로 피워 삼겹살을 구우면 입안이 저릿하게 녹아난다 말갛게 발효한 쌀막걸리가 핏속에서 빙글빙글 지구를 돈다 홀아비바람 흰각시붓꽃 각시취, 형님이거나 이복동생이거나 누이들이다 옆구리 찌르고 싶어 뻗은 가지처럼 손 내미는 빗방울, 한바탕 악수다

■ 시작노트
인식은 전환에서 시작된다. 어느날 문득 지상의 모든 생물이 한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우연히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발상의 전환은 사람을 전혀 다른 상태로 몰고가서 지금까지의 편견을 일소에 부치는 힘을 발휘한다. 나무가 나를 대신해 기도하고 나를 대신해 강이 노래한다. 내 마음의 닫힌 사고를 어루만져 부드럽게 하려고 구름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모두가 혈연으로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다만 나의 외부에 있다뿐, 결국은 내 혈관의 연장선상에서 흐르고 있다. 위의 시는 그러한 느낌의 일단을 표현해 본 것이다. 뜨거운 포옹을 대신하는 저 급박한 악수의 힘으로 화해하고 있는 생명들에 새삼 감격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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