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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생활을, 혹은 오랜 연애를 지속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인정할 것이다. 영원할 것 같았던 사랑의 불꽃이 어느새 시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정말 사랑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결혼은 미친 짓일까? 모든 사람들은 꺼져가는 사랑의 불꽃을 다시 피우고 싶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방법은 무엇일까? 그러나 너무 때늦은 질문 아닌가?


 현대 프랑스의 인문학자 바르트는 결혼 생활에서 사랑을 잃어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사랑을 찾을 수 있는 길을 알려준다. 바로 이 책 <사랑의 단상>에서다. 바르트가 이 책에서 주된 텍스트로 삼고 있는 것은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다. 로테라는 여인에게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어 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 괴로워하다 결국 죽음에 이른 청년 베르테르가, 쉽게 환자나 미치광이로 오해받아 조롱거리가 되곤하는 '연인'의 대표선수가 된 것이다.


 이 책은 분명 사랑과 연인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단순히 '연애지침서'적 성격만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랑의 단상>은 철학과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을 넘나들며 문학과 예술과 인생을 아우르는 고급 담론이다. 누구보다 냉철한 이성과 날카로운 통찰력을 가진 바르트는 특유의 지적이고 세련된 문장으로, 지극히 비이성적이고 모순투성이로 여겨지는 '연인'을 분석하고 위로하고 격려한다. 사랑은 분명 상대방을 소유하려는 욕망을 낳는다. 특히 '너와 결혼한다'는 말은 '서로를 구속하겠다'는 선언과도 같다. 그러다 보니 이미 배타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사람에게 더 이상의 소유욕이 발동할 리 만무하다. 바로 그것이다. <사랑의 단상>에서 바르트는 사랑이라는 소망스러운 감정은 상대방의 자유를 사랑했을 때에만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결국 사랑은 상대방을 소유하고 싶지만 애써 그에게 자유를 주려는 의지를 포함하는 감정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제 스스로에게 물어볼 일이다. 배우자를 배타적으로 소유했다는 오만이 생겼거나 어느덧 상대에 익숙해진 내가 마치 그를 전부안 것인양 생각했던 것은 행여 아닌지. 그러나 우리는 내가 아닌 타인을 진정으로 알 수는 없다.


 바르트는 이 책에서 그 점을 이렇게 꼬집는다. "나는 이런 모순에 사로잡힌다. 나는 그 사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고, 또 그에게 그 사실을 의기양양하게 시위한다. "난 당신을 잘 알아요, 나만큼 당신을 잘 아는 사람도 없을걸요!". 그러면서도 나는 그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도, 찾아낼 수도, 다룰 수도 없다는 명백한 사실에 부딪힌다. 나는 그 사람을 열어젖혀 그의 근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수수께끼를 풀어헤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는 어디서 온 사람일까? 그는 누구일까? 나는 기진맥진해진다. 나는 그것을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결국 사랑을 죽였던 주범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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