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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위 말하는 기계치다. 나이가 한 살씩 더해감에 따라 점점 그 증세가 더해간다. 기능이 복잡한 전자제품이나 컴퓨터의 다양한 기능은 될 수 있으면 피하고 싶고, 손보다 마음이 먼저 밀어낸다. 그것은 편리한 문명의 혜택을 제대로 누리기를 스스로 거부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기계라면 거부반응부터 앞선다. 기능이 복잡한 텔레비전 리모컨을 이것저것 누르다 보면 혹시 고장이 날까 봐 지레 겁부터 먹는다. 그러니 컴퓨터처럼 정밀한 기계를 다루는 일이야 더 말해 무엇할까. 고백이지만, 나에게 컴퓨터는 한글 자판이나 당장 필요한 몇몇 기능만 익혀서 알 뿐이지 대부분 두려움 그 자체다. 불과 몇 해 전에만 해도 누가 이메일 물어오면 아무 생각 없이 집 주소를 줄줄 읽어주고 담담해했으니 말이다.

 요즈음은 초등학생도 가지고 다니는 스마트폰이다. 그러나 내겐 덥석 손안에 들이기가 부담스럽고 두려운 기계다. 내가 기계치인 것도 문제지만, 매달 지불해야하는 사용요금 또한 만만치 않다. 아들이나 지인에게 간단한 문자와 연락만 하는 것이 전부인데 요금은 현재의 곱절이나 된다니 영 못마땅하다. 이런저런 것을 다 감수해가며 기능이 복잡한 기계를 굳이 지녀야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 지배적이다.

 아직은 스마트폰이 아니어도 살아가는데 불편한 것은 없다. 그렇지만 만나는 사람마다 스마트 폰을 소지하고 다니는 세월이니 기존의 기기를 들고 다니는 나는 자연 시대에 뒤떨어지는 이로 취급받기 십상이다. 가끔 지인들이 그럴싸한 동영상이나 좋은 글귀를 보낼 수 없다는 아쉬움을 표시하며 당장 바꿀 것을 권한다. 하물며 어떤 이는 대놓고 "잠복 씨 바보"라며 원시인 취급을 한 적도 있었다. 그 자리에서는 픽 웃어넘기긴 했어도 스쳐 듣기에는 뒤통수가 머쓱하기 짝이 없다.

 허나, 남편은 일찌감치 변화를 받아들였었다. 그러면서 내가 이런저런 핑계로 변화를 꺼리는 것을 남편은 익히 아는 터라 별로 권하지 않았다. 

 지난 연말 우연히 음악회 초청티켓이 생겼다. 마침 표가 두 장이어서 남편과 함께할 수 있었다. 그런데 좌석번호가 이어진 표가 아니어서 공연 내내 떨어진 자리에 앉아야 했다. 내 자리는 중간쯤이고 남편은 앞줄 맨 끝자리였다. 혹시 옆 사람에게 양해를 구하고 나란히 앉으면 좋을 테지만,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음악회는 대만원이었다. 귀한 음악회라서인지 방청석은 숨소리 하나 없이 조용했다. 테너가수의 감미로운 목소리에 매료되어 나는 느긋하게 의자에 등을 기대어 눈을 감았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편안한 감미로움이었다.

 "삐리릭, 삐리릭"
 갑자기 요란한 전화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주변을 살피며 속으로 욕이라도 하는 심정이었다. '어떤 무식한 사람이 전화기를 켜놓았나.' 싶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소리는 멈추지 않고 계속 가까이에서 울려대고 있었다. 주변이 술렁거렸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사람들의 눈이 모두 내 쪽으로 꼽히고 있지 않은가. 그때 옆 사람이 내 손가방을 가리켰다.

 " 아, 이럴 수가…." 범인은 나였다.
 남편이 스마트폰을 내 손가방 안에 넣어두었던 거였다. 급하게 스마트 폰을 꺼냈지만 어떻게 꺼야 할지를 몰랐다. 소리는 계속 울려대고, 남편은 멀리 떨어져 있고…. 옆 좌석의 젊은 남자에게 고개를 연방 숙이며 전화기를 내밀었다. 전화벨 소리를 멈추게 해 달라는 부탁을 하고 나니 온몸에 진땀이 흘렀다. 내 아둔함은 생각지 못하고 남편이 미웠다.

 저만치 남편과 눈이 마주쳤다. 서둘러 공연장을 나가자는 손짓을 보냈다. 뒤따라 나오는 남편은 짜증을 내어 왜 그러느냐면서 다시는 음악회는 오지 않겠다는 악담 아닌 악담을 했다. 이 시대에 야만인이라는 자괴감에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스마트폰 때문이라는 소리는 한참 후에나 할 수 있었다.

 음악회에서 망신을 당하고 나니 이참에 스마트폰으로 교체할까도 싶었다. 그러나 집 근처 가계에 들어갔다 나올 적에는 구형 전화기가 그대로 내 손에 쥐어져 있었다. 비록 주변으로부터 '바보' 취급을 받고 비웃음을 산다고 해도 내 방식대로 살겠다는 마음이 더 커졌다. 가수 싸이는 '강남스타일', 나는 '잠복 스타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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