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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짝 놀랄 일도 아니다. 양치기 소년처럼 자업자득이 된 박근혜 정부의 인사가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 내정자의 인사청문회로 정점을 찍었다. 인사가 만신창이가 된 박근혜 정부의 고위직 인사는 코미디 프로의 단골 메뉴가 됐고 인터넷 상에서는 온갖 패러디 물로 재탄생되고 있다. 윤 내정자의 인사청문회 동영상은 지난 주말 네티즌들의 화제 1순위였다. 이쯤 되면 윤 내정자는 '인사청문회 스타'로 손색이 없을 듯하다. 그런데 말이다, '몰라요' 후보가 어색한 웃음으로 고개를 돌리는 장면에서 국민들이 무엇을 읽었는지는 한번쯤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문제는 윤 내정자의 태도나 국민들의 반응이 아니다. 5년 만에 부활한 해수부의 수장을 코미디 주인공으로 만든 것은 인사청문회가 아니라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이야기다. 불통의 코드를 버리지 못하는 일방통행식 인사는 이제 심리분석가들의 원인 진단까지 따라다닐 정도로 이 정부의 불통 코드로 자리 잡았다. 딱한 것은 이 지점에서 여당이 가진 태도다. 윤 내정자의 청문 보고서 채택을 두고 새누리당 농해수위 간사 김재원 의원은 "사람은 좋은 만큼 채택되도록 의원들을 설득할 것"이라고 말한 장면이다. 다행히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의원들은 윤 내정자가 장관으로서 자격에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 많다는 뜻을 청와대에 전달할 것이라는 보도가 있지만 청와대는 여전히 임명 강행 의지를 굽히지 않는 모습이다.

 '몰라요 진숙'을 문제 삼는 것은 그가 청문회에서 보인 태도 때문이다. 적어도 해양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그가 해수부의 주요 업무나 과제에 문외한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필자가 알기로 윤 내정자는 박근혜 대통령과 지난 2008년 국회에서 열렸던 세미나가 인연이 돼 장관으로 발탁됐다. 윤 내정자는 당시 17대 대통령 인수위가 해수부 폐지 방침을 밝힌 뒤 열린 토론회에서 해수부 존치 필요성을 조리 있게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적어도 5년 전 해수부 존치 이유를 공개석상에서 당당하게 밝혔던 것이 그가 맞는다면 '무지'나 '몰라요'라는 단어는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유추해 보자면 그때 박근혜 대통령은 윤 내정자를 수첩에 기록해 뒀고 해수부 부활과 함께 1순위로 그를 찾았을 가능성이 높다. 적임자를 찾는 방법은 다양하다. 대통령이 모든 조직의 전문가를 알고 있을 수는 없다. 그래서 정부 조직의 인선은 한 사람의 생각 보다는 시스템의 평가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 맞다. 흠집내기나 중상모략이 아니라 객관적 평가와 보편적 잣대를 통한 인물 평가가 이뤄질 때 그 인물은 직무능력을 최상의 상태로 발휘할 수 있다. 바로 그 통로가 인사시스템이자 절차의 합리성이다. 대통령의 의중에 찍은 인물일지라도 그 시스템 속에 넣어놓고 검증의 절차를 거쳐야 하는 이유다. 물론 청와대에서 윤 내정자에 대한 객관적인 인사 검증 작업을 하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새 정부의 부활한 정부조직의 첫수장이기에 어느 누구보다 철저한 검증을 했다고 믿는다. 문제는 도덕성이 아니라 자질이다. 고위공직자들에 대한 인사 검증을 할 때마다 도덕성 문제가 트라우마로 작용한 탓에 자질 문제는 아예 논외로 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인수위 시절 윤창중 대변인이 발탁됐을 때 여론은 극단적으로 갈렸다. 수구보수세력들의 입장에서는 강경파인 윤창중 대변인 발탁이야말로 박근혜 정부의 색깔을 분명히 하는 탁월한 인선이라 했지만 반대 여론은 뜨거웠다. 굳이 야당이 기피하는 인물을 대변인으로 발탁해 새 정부의 입을 푸르다 못해 시퍼런 서릿발로 만들 필요가 있겠냐는 우려였다. 하지만 그런 여론에도 불구하고 청와대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윤창중은 청와대 대변인으로 자리를 한 단계 올렸다. 불통 인사의 대표적인 사례다. 그래도 그 정도는 호불호가 양극화되는 선택의 문제였다. 선택의 문제는 비판적 입장에 선 사람들의 이해를 구하는 절차로 갈등을 완화시킬 수 있다. 하지만 선택이 아닌 실패는 이해를 구할 문제가 아니다.

 자신의 거취 문제가 여론의 도마에 오르고 자진사퇴 압박이 거세지자 윤 내정자는 두 마디의 의미 있는 말을 남겼다. "청문회를 너무 쉽게 생각한 게 내 불찰"이라는 말과 "(거취는)저 혼자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는 말이다. 청문회를 쉽게 생각했다는 말에서 그가 가진 공직의 무게감을 읽을 수 있다. 돌 맞을 이야기지만 지극히 포장해서 이야기 하면 너무나 전문적인 지식이 가득하기에 국회의원들이 던진 질문을 함량 미달이라 생각해 몰라요와 웃음으로 넘겼다는 이야기일 수 있다. 혼자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는 임명자에 대한 책임감으로 읽을 수 있다. 김종훈처럼 여행 가방을 쌀 상황이 아닌데 훌쩍 떠날 수 없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윤 내정자의 선택은 오히려 간단하다. 떠난 뒤 이유를 물으면 '몰라요'라고 말해버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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