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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에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동화같은 서재
숭의예전 신입생 때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자연에서 자란 유년의 감성 작품활동의 원동력
제3회 서덕출 문학상 선정 계기 전국적 유명세
최근 펴낸 '체리 코 할아버지의 선택' 가장 애착

아이들의 눈과 마음으로 세상을 들여다보는 아동문학가의 서재는 어떤 곳일까. 평소 이원수나 이오덕, 권정생 등 개인적으로 좋아했던 아동문학가들을 떠올리자 오늘의 서재를 찾는 마음이 한껏 부풀었다. 그리고 지난 3일 설렘 반 기대 반 부푼 마음으로 찾은 정임조 아동문학가의 서재.

   
▲ 정임조 아동문학가의 서재엔 그가 지난 20년간 써내려간 동화와 같은 아이들을 위한 책들이 많다.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그의 일터이자 작업실인 이 서재의 책들은 그에게 영향을 줬듯, 꿈을 펼쳐갈 아이들에게도 자양분이다.


 
그의 서재는 현재 그가 운영하고 있는 남구 신정동의 한 논술학원에 마련돼 있었다. 하얀 벽 사이 창가로 들어오는 봄 햇살이 그의 작품처럼 밝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에겐 일터이자 작업실이기도 한 이곳에는 어린이 서적이 교실마다 군데군데 마련돼 있었는데 어릴적 추억이 새록새록 돋아나는 전래동화 시리즈부터 최근 인기있는 학습시리즈물과 동화책, 글쓰기를 위한 논술서적까지 다양한 어린이 책이 구비돼 있었다.
 
곧이어 마주앉은 정임조 작가. 책 얘기를 어떻게 꺼내야 할까 생각했다는 그가 우선 내민 책은 정채봉 시인의 <생각하는 동화 시리즈>였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문학소녀로서 글쓰기를 좋아했다는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생업전선으로 뛰어들었다. 삼성계열의 한 회사였는데 그곳에서 이 책을 운명처럼 맞닥뜨렸다고 했다.
 
"우연히 서점에서 이 책을 보게 됐는데 간결한 그림과 문장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어요. 어찌나 감명을 했는지 일일이 필사를 해서 회사 동료들한테 나눠주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저자인 정채봉 시인에게 편지까지 썼는데.. 그게 인연이 되서 대학에서 문학을 접하게 됐고 이렇게 20년이 넘도록 동화밥을 먹고 있지요."
 
이전부터 독서를 좋아했겠다는 얘기에 그는 반색하며 얘기를 꺼냈다.
 
"사실 저는 고향이 촌이었던 울산 상북면이었어요. 책이 어디 있었겠어요. 책을 제대로 접한 건 중고등학교 시절 학급문고가 다였고 그전에 제가 만난 세상은 자연 그 자체였던 것 같아요.
 
저는 어린 시절 논과 풀밭을 뛰어다니며 놀았고 사계절이, 아니 365일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다 지켜보며 자랐습니다. 아침이면 민들레가 피어오르는 표정부터 해질녘 민들레가 다소곳이 짓는 표정까지 그 모두를 세세하게 보고 느꼈고 오동나무에 꽃이 피고 잎이 떨어지는 것도 다 지켜볼 수 있었죠. 그 때 자연을 경험하고 교감하면서 길렀던 세밀한 감성이나 서정성이 지금 동화를 쓰는 데 무엇보다 큰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해요"

   
▲ 정 작가에게 깊은 감명을 준 책들


 
그래서인지 26살, 늦깎이로 숭의예전에 들어간 그는 남다른 감성과 삶의 경험탓에 신입생 신분임에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다.
 
정채봉 시인의 영향으로 동시를 써서 당선된 그의 소식은 당시 바늘 귀 보다 뚫고 들어가기 어려웠던 신춘문예의 인기에 힘입어 울산 뿐 아니라 전국적인 뉴스가 됐다. 그렇게 점차 문학성을 인정받으면서 그는 당시 이쁘고 세련된 학과 동료들에 비해 사투리를 쓰고 촌스러웠던 자신이 더 이상 부끄럽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게 이곳에서 그는 처음으로 제대로 된 문학공부를 시작했다. 그제서야 제대로 세계문학이나 한국대표 문학을 숙독했고 문예창작과다보니 학과공부로 다양한 희곡집이나 문학이론도 공부하게 됐다. 그는 특히 당시 읽은 이강백 희곡집이나 강정규, 김병균 작가의 동화가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러다 결혼을 하면서 울산대 국문학과 대학원에 진학해 좀 더 깊이있는 공부를 한 뒤 점차 세상에 자신의 작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제3회 서덕출 문학상의 수상자이기도 한 그의 작품들은 그만의 독창적인 주제와 내용으로 지역 뿐 아니라 전국에도 알려져 있다. 특히 작품 한편이 수년간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리면서 신뢰도를 얻기 시작했다.
 
그가 생각하는 좋은 동화작가, 작품은 어떤 모습일까. 나이가 들수록 동화쓰기가 점점 어려워진다는 그는 "아마 나이가 들고 세상을 겪다보면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견지하는 힘이 부족해지기 때문인지 동심을 가지기가 어려워져요. 아동문학가에는 뭐랄까, 단순히 순수라고 하긴 그렇지만 세상을 뒤틀림없이 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근데 아무래도 나이가 들다보면 그런게 잘 생기니까 최대한 나이가 들기 전에 많은 작품을 내놓고 싶어요"라고 했다. 아이로서의 순수성을 견지하면서도 아이들이나 어른들이 읽었을 때 생각거리를 남기는 동화, 그러나 강요는 하지 않는 작품이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는 그는 그래서인지 주제가 있는 동화를 자주 선보인다.
 
특히 최근 펴낸 <체리 코 할아버지의 선택>은 산타클로스와 루돌프란 소재를 지구 온난화 문제와 엮어낸 동화로 그만의 동화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15년 전 신문 귀퉁이 하나에 난 기사를 마음속에 품고 있다 이제야 세상에 내놓았다는 이 작품은 그가 자신의 작품중에서도 가장 아끼는 작품이란다.
 
앞으로는 어떤 작품을 내놓고 싶냐는 얘기에 그는 한 마디로 '수채화'같은 동화라고 답했다.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처럼 크게 꾸며내지 않았음에도 한국적인 정서가 살아있고 누구에게나 감동과 울림을 주는 동화를 쓰고 싶어요. 그동안 동화에 힘을 줄만큼 줬으니 뭐랄까 붓에 힘을 빼고 담담히 그려내는 수채화처럼 맑고 고운 마음이 살아있는 작품을 쓸 수 있다면 바랄게 없겠어요. 제가 쓸 수 있을까요?"
 
눈망울을 올려다보며 조심스레 질문하는 소녀같은 모습에서 절로 고개가 주억거려졌다. 그를 보며 아 이런 사람이 동화를 쓸 수 있구나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수필가 피천득 선생은 구순에 낸 <어린 벗에게>란 책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사람이 나이가 들수록 어린이와 똑같아진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참으로 진실이다. 한해 한해 나이를 먹으며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생각하다보면, 순수한 아이 같은 마음으로 살면 된다는 해답을 얻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순수함을 닮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아이처럼 살려고 노력하는 것 그게 제대로 사는 것 아닐까."
 
아이와 같은 눈을 견지하고 싶다는 그의 마음은 그래서 단순히 동화작가로서 좋은 작품을 쓰고 싶기 때문이라기 보단, 어쩌면 우리 누구나가 평생을 고민하는 '제대로 행복한 삶을 살고 싶은 마음' 때문은 아닐까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정임조 아동문학가가 꼽은 내 인생의 책 - '참 맑고 좋은 생각'(정채봉·샘터)

20여 년 전 어느 봄날, 다니던 회사 구내 서점에서 우연히 만난 책이다. 철학적인 내용에 썩 잘 어울리는 간결한 그림이 한 셋트였다.
 
잘생긴 남자에게 혼이 나가듯, 순식간에 이 책에 매료되었다. 직원 휴게실에 글과 그림을 베껴 붙여 놓고 비슷한 글을 지어보는 것을 낙으로 지내다가 더는 참을 수 없어 저자인 정채봉 선생님께 편지를 썼다.
 
몇 주 뒤 선생님께서 보내신 책과 답장이 왔다. 글씨도 동글동글 귀엽고 내용도 정다웠다. 다시 편지를 보내고, 다시 답장이 오고.. 그렇게 일년을 났다. 선생님께선 대학에 진학해서 작가가 돼보라고 하셨고 남들 시집 갈 나이에 서울에서 문창과 대학생이 되었다.
 
외삼촌댁이 있었던 3호선 장충동역과 학교가 있는 4호선 명동역을 오가며 문학을 공부하다 1학년 때 동시 <대왕암>으로 신춘문예에 당선이 됐다. 신문에서 내 이름 석자를 본 선생님이 학교로 후리지아를 들고 오셨다. 한 마디로 이 책은 내 인생을 바꾼 책이다. 책장을 넘길때면 하늘에 계신 정채봉 선생님이 보고싶다. 김주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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